부처님 탄생 연대와 설화
2천 6백여 년전 사바세계에 태어나
온갖 고통을 몸소 겪으면서
진리를 깨달아
인류의 큰 등불이 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역사상으로 실제로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지구상에서 태어나 80세를 살다가
열반하신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의 실존 여부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실제로 이 세상에 살다 가셨다는 점이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다른 종교는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종교인데 반하여
우리 불교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신본주의 이므로 신을 위해
인간은 봉사하는 것을 최선의 미덕으로 삼지만
불교는 인본주의 종교이므로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협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역사상에
실제 인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비록 탄생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사학자ㆍ고고학자들이 여러 가지 증거에 의해 인정하고 있고,
부처님이 생존하셨던 인도에 가면
그 유적을 통해 이를 확실이 증명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연대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신빙성이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에서 발견된 돌기둥이 이쇼카왕 비문과 중국의 돈황 석굴에서 발견된<중성점기衆聖點記>라고 하는 책입니다.
돌기둥은 인도대륙의을 통일했던 아쇼카왕이 부처님 멸도 후 약 100년경에 세운 둥근 기둥 모양의 기념비를 말합니다.
이 돌기둥은
1896년에 프랑스의 고고학자인 븰러가 룸비니 공원에 있던 룸민디라는
마을의 유적을 발굴하다가 반쯤 부러진 채 땅 속에 묻혀있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었습니다.
"천애희견왕이 즉위 20년 되는 해 친히 이곳에 이르러 공양을 드리다.
여기가 붓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상(馬像)이 있는 돌을 깍아 석주를 세우는 것은
세존이 이곳에서 탄생했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돌기둥에 써 있는 친애희견왕은 곧 아쇼카왕을 말하며
한문으로는 아육왕, 무우왕이라고도 합니다.
이 왕은 최초로 인도를 통일했던 왕인데 처음에는 성질이 포악해서
골육상쟁으로 많은 친척들은 죽이고 전쟁으로 십만의 인명을 학살했으나, 그 일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불교에 귀의하여 여러 가지 불사를 많이 한 분입니다.
돌기둥이 발견됨으로써 부처님의 탄생연대가 금석문에 의해 밝혀진 셈인데 중국 당나라 현장 스님이
기원전 630년경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벼락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고 하였으므로 현장 스님과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봉축하면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많은 설법을 들었고 또 탄생에 얽힌 설화를 들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위인이 출현하게 되면 그 탄생 설화에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무엇이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면 믿지 않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면서 여러 가지의 신화적인 요소가 해명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모순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계실 때는 호명보살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도솔천에서 일생보처보살로 계시면서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태어날때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하생할 때가 다가오자 그 시기와 태어날 대륙과 나라와 집안에 대하서 살피셨습니다.
시기라 함은
인간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있으면 종교심이 일어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타락한 세상에는
종교를 돌아 볼 여유가 없으므로 그 중간의 알맞은 시기를 가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륙이라 함은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 의한 네 개의 주(洲)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잠브드바이파,
한자로 염부주라고 하는 곳은 인도를 중심으로 한 우리들의 인간 사회를 말한 것인데
부처님의 출현에는 이곳이 가장 적당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인도 중에서 변두리 지방이 아닌 중앙부가 좋다고 선택됩니다.
또 인도 사회의 계급은 세습종교가인 바라문과 무사 귀족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상위에 있는데 그때와 같은 세상에서는 크샤트리아 쪽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 신들이 어느 나라를 고를까 의논하여 열여섯 큰 나라를 하나씩 살펴봤지만 호명보살이 태어나기에 적당한 곳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이 호명보살에게 그 조건을 물으니 호명보살은
국토에는 예순네 가지의 조건과 어머니가 되실 분에 대해서는
서른두 가지의 조건을 내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을 들은 여러 보살과 신들은 석가족의 슛도다나 왕과 마야 왕비야말로 그 조건을 갖춘 분이라는 데 일치를 보고 호명보살의 부모로 정하기로 결정 하게 됩니다.
석가족은 오늘의 네팔 남쪽 국경 가까이 카투만두의 서쪽 200km 지점에 카필라바뚜라는 도시국가가 있었는데 이곳이 석가족이 살던 서울이었습니다.
호명보살은
도솔천에서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시고
미륵 보살을 후임자로 정하였습니다.
미륵 보살은 도솔천에서 법을 설하다가 언젠가는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이 지상에 내려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도솔천에 모인 신들은
호명보살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지상에서 보살을 수호할 소임을 정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
범천, 제석천, 사천왕 등은
보살의 입태로부터
탄생, 어린시절, 소년시절, 출가, 고행, 보리좌, 항마, 성도, 전법륜을 거쳐
입멸에 이르기까지 그 신변을 보호하기로 서약을 합니다.
겨울도 지나고 봄빛이 무르녹을 때 이 날을 인도의 달력으로는
바이샤카 달의 보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양력으로 치면 4월 그믐쯤됩니다.
이 날 프샤성(별의 이름)에 달이 뜬 것을 보고 호명보살은 도솔천에서 자취를 감추고
여섯 개의 상아를 단 흰 코끼리가 되어
마야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를 거쳐 태에 들어갔습니다.
마야 부인은
조용히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이 일을 보게 됩니다.
마야 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왕은 점치는 사람을 불러 해몽을 했던 봐,
앞으로 태어날 왕자는 전륜성왕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출가하여 부처가 되어 세상 사람들을 널리 구제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입태한 지 열 달이 되니
카필라의 안팎에서는 기이한 상서로운 징조가 몇 가지 나타나게 되었는데
왕비는 아기가 태어날 것을 알고
왕에게 아뢰어 룸비니 동산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왕비는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아름다운 꽃들이 미풍에 살랑거리는
룸비니 동산을 거닐다가 한 나무의 동쪽 가지를 잡고 가만히 멈추어 섰습니다.
이때 수많은 신과 천녀들은
왕비 곁에 다가가서 출산을 맞이할 채비를 학게 됩니다.
이 순간 열 달 동안 태 안에 있는 호명보살은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태어나게 됩니다.
보살은 태어나자마자
천안으로 사방을 돌아보고 모든 국토와 온갖 생물을 모두 살펴보시고
동서남북의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으시자 그 걸음마다 마다에는 연꽃이 피어났는데,
태자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시면서
"하늘 위 하늘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다" 라고 사자후를 토히셨습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슛도다나 왕은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 라고 지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탄생 설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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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공부 하엿네요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