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1.12.30.목요일 성탄8일 축제 내 제6일 1요한2,12-17 루카2,36-40
한결같고 초연한 정주의 삶
-사랑, 신뢰, 지혜, 가난, 겸손-
겨울은 춥지만 맑고 깨끗해서 좋습니다.
잠깨어 일어나면 우선 집무실 앞 수도원 정원을 거닐며 하늘의 별들을 봅니다.
겨울 하늘의 별들도 좋고 본질로 서 있는 가난한 겨울나무들도 좋습니다.
밤마다 바라보는 늘 거기 그 자리 밤하늘의 카시오페아 별자리와 북두칠성입니다.
맑고 깨끗한 겨울 하늘도 좋지만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간 침묵과 고독의 겨울산도 겨울나무도 좋습니다.
계절마다 좋고 배우는 바 다 다르지만 겨울에는 무욕의 초연한 삶을 배웁니다.
어제는 참된 정주 영성의 한결같은 삶에 대해 나눴지만 오늘은 초연한 삶에 대해 나눕니다.
역시 참된 정주 영성의 열매가 초연한 삶입니다.
가난하나 한결같은 삶, 초연한 삶이 그대로 품위있는 아나뷤의 삶입니다.
어제 복음의 주인공이었던 시메온과 오늘 복음의 주인공 한나가 그 아나뷤의 전형적 모습니다.
하느님께 희망과 신뢰를 둔, 하느님 사랑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아나뷤입니다.
사랑, 신뢰, 지혜, 가난, 겸손으로 요약되는 한결같고 초연한 정주 영성 삶의 모범이 한나입니다.
참으로 겨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한나의 영혼입니다.
새삼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한 영혼에 있음을 봅니다.
이런 순수한 마음에서 샘솟은 깨끗한 열정입니다.
깨끗한 마음, 깨어 있는 삶, 깨달음은 셋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직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해를 살고서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정말 가난하나 아름다운, 참으로 영육으로 건강한 한나입니다.
오로지 일편단심 한결같이 초연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겨온 정주 영성의 한나입니다.
참으로 한결같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하여 섬길 때 저절로 가난하고 겸손하며 지혜로운 정주의 삶이겠습니다.
오래 전에 써놓은 겨울나무에 대한 시 두편이 생각납니다.
모두가 오늘 복음의 한나를 연상케 합니다.
“누가
겨울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
나무마다
푸른 하늘
가득하고
가지마다
빛나는 별들
가득 달린 나무들인데
누가
겨울나무들
가난하다 하는가!“-1998.12.
역설적으로 가난한 듯 하나 텅빈 충만의 부유한 겨울나무들 같습니다.
동안거중의 겨울 배나무 밭을 산책할 때마다 갖는 느낌도 역설적으로 텅빈 충만의 부요와 행복입니다.
이어지는 ‘겨울나무’라는 시입니다.
복음의 한나 여인 앞에서 느끼는 마음도 아마 이러할 겁니다.
“떠나자
떠나 보내자
미련없이 아름답게
나 늘 푸른 사철나무보다
잎들 다 떠나 보낸 겨울나무가 좋다
가난한 겨울나무들 앞에서 서면
왜 이리 부끄럽고 부러워질까
왜 이리 가슴이 저릴까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무수한 나뭇가지들
참 간절한 그리움의, 기다림의 촉수들
볼품은 따질 게 아니다
그대로 그리움 덩어리, 침묵의 기도로 구나
흡사 봄꿈을 꾸는 나무들 같다
하느님 향해 쭉쭉 뻗은
무수한 내 깨어 있는 영혼의, 그리움의, 기다림의 촉수觸手들!
나도 한 그루 겨울나무로구나
그대로 한 그리움 덩어리 침묵의 기도로구나
나도
겨울나무가 되고 싶다!-2000.12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공감과 감동을 선물합니다.
겨울나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입니다.
겨울 속의 봄이듯 이런 기다림중에 맞이하는 주님입니다.
참으로 겨울나무같이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매일이 주님의 대림이요 주님의 성탄입니다.
이런 깨어 주님을 기다리던 가난한 한나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이시니 바로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런데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또 한결같은 초연한 정주 영성의 본보기가, 참된 아나뷤의 본보기가 예수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예수 아기의 성장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부모의 인품이 환히 드러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요셉, 마리아 부모님의 인품을 그대로 거울처럼 보여 주는 예수님의 성장과정 모습입니다.
한없이 기다리며 무집착의 이탈의 초연한 사랑과 지혜로 예수 아기의 넓고 깊은 따뜻한 품이 되어 준
요셉, 마리아 부부임이 분명합니다.
칼리 지브란의 시집 ‘예언자’에 나오는 ‘아이들에 대하여’ 라는 시의 진실을 이미 꿰뚫어 살았던 부부임이 분명합니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나왔을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 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 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마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한나와 시메온, 요셉과 마리아, 모두가 가난하나 참으로 한결같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섬겼던
겸손하고 지혜로운 아나뷤이었습니다.
바로 요한 사도가 우리 모두 육신의 세상적 욕망에 초연하여 한결같은 정주의 참 삶을 살도록 간곡히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랑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냥 놔두면 미풍으로 끝날 지나가는 것들에 유혹되어 어리석게도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며 분별력의 지혜를 잘 발휘하여
세상을 잘 보살피고 선용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맛’이 아니라 ‘하느님 맛’으로 살라는 것이며, 무지의 탐욕이나 질투, 분노에서 벗어나 초연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과 사랑을 둔, 겸손하고 지혜로운 아나뷤으로
한결같고 초연한 정주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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