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댄스
2019.10.15.
석야 신웅순
작년 봄이었으니 일년도 훌쩍 넘었다. 정년 퇴임 후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는 것이 없을까 찾았다. 지인이 웰빙 댄스를 해보라고 했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까 망설이다 용기를 내었다. 출발은 좋았다. 열심히 스탭을 익혔다. 그러다 얼마 못가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두어 번 빠졌더니 더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몸치이기도 하거니와 평생 춤 한번 추어보지 못한 나였으니 춤이 어디 호락호락이나 했을것인가.
그날은 비싸게 맞춘 번쩍 번쩍 구두를 신고 나갔다. 두어 번 빠졌으니 춤은 저쪽으로 멀찌감치 달아나 뒷꼬리만 보였다. 더는 따라 잡을 수 없었다. 댄서들의 춤추는 멋진 모습을 보며 나는 멍 하니 서 있었다. 뒤통수가 뜨거워 내 배짱으로는 도저히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맞춘 새구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구두야, 미안하다.”
“그만 일회용이 되고 말았구나.”
그날부터 천덕꾸러기가 되어 일년 이상 캄캄한 신장 속에서 감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년이 넘었으니 구두에게는 더 이상 햇빛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이후 우리 아파트에 건강 동호회가 생겼다. 그 중 라인댄스도 있었다.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춤이라서 지체하지 않고 신청했다. 다시는 하차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아내를 물고 들어갔다. 두 달째이다. 세상에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몸치와 싸워야하고 두 번째이니 인내와도 대결해야한다. 운동 삼아 하는 것이니 못해도 좋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 아닌가. 아내와 함께 하니 그래도 힘이 되었다. 춤은 역시 벌 같은 남자보다는 나비 같은 여자가 더 부드럽고 날렵했다.
송나라 문인 소식은 글을 배우는 것은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급류를 거슬러 오르듯 진보가 느리고 조금만 게으르면 떠내려가는 것이 학문이라고 했다. 어디 학문만이랴. 매사가 다 그렇다.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는다면서 실패를 거듭한다. 이제 주저앉으면 더 이상 설 데가 없다. 나는 왜 춤만 추면 생각과 몸이 멀찌감치 떨어져 나갈까. 지금도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나는 천성적으로 운동에 둔하다. 그래도 운동은 건강이라 이번에는 중단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할 생각이다.
라인 댄스는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추는 춤을 말한다. 특별한 파트너 없이 대충 라인을 만들어 선무하면 된다. 웰빙 댄스인가는 상대방이 있어 손도 잡아야하고 스탭이 틀리면 상대방의 발을 밟기가 일쑤이다. 여간 신경써지는 것이 아니다. 라인 댄스는 혼자서 하니 라인이 안맞아도 좋고 상대방이 없으니 스탭이 틀려도 괜찮다. 나로서는 상대방이 있는 댄스보다는 실수가 많아 홀로 댄스가 더 적합할 것 같다. 이번에는 오래 출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구두와 다시 인연이 되었다. 물끄러미 구두를 바라보았다.
“구두야, 다시 만나게 되어 고맙다.”
늘그막 춤을 춘다는 것은 힘든 것이기는 하나 강 하나 건너고 산 하나 넘으면 그럴수록 건강도 좋아질 것이 아닌가. 춤에는 음악이 있어 재미있고 몸을 움직여서 즐겁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학처럼 춤을 추지 못해도 뒤뚱뒤뚱 오리 같은 춤이라도 추었으면 좋겠다.
올해도 두어달 남았다. 세월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아예 질러가버린다. 느린 오리 뒤뚱춤이라도 추면 세월을 좀더 늦출 수는 있을까. 그래 느긋하게, 뭐 춤을 못 추면 그게 무슨 대수랴. 그냥 따라하다보면 같이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
첫댓글 멋진 취미를 가지신 교수님... 파이팅 입니다. ^^
20주년 세계서예축전 오픈식에서 교수님의 특별무대를 감상할 수 있길 고대합니다.
어제 전시 철수를 마치고 오늘부터는 넷표구로 온라인 전시 준비를 하며 잠시 쉴틈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생많으시네요. 잘 계시지요?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검정 구두 멋 있습니다.
검정구두 보니까 또 옛 생각 ㅎ
교수님께서는 제 추억의 보물 창고
문을 열게 하십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맨발로 달음박질하는데 뭔
새 구두가 필요한지요?
필요로 해도 새로 구입할 형편도 아니었지요.
낡아서 하얗게 바랜 밤색 신발을 남포동 길거리에서 검정으로 염색해서 신었지요.
결혼 다음 날 비가 엄청 내렸답니다.
그 구두 염색이 남편 발에 인디언을 만들어
놓았지요 뭘 못 버리는 남편은 더구나 결혼식 때 신었던 신발을 버리지 못 한다고 신발장에 간직했답니다.
지금도 모르지요 남편은...
부산 바닷가 인접해 폭우 내리던 날 부엌에
바닷물이 가득 차던 날 바닷물에 떠내려갔다고
제가 몰래 버린 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