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탄핵, 탄핵….
취임 후 채 반년도 안된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169석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의 무차별적 탄핵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한동훈 법무장관, 이상민 행전안전부 장관에 이어 이제 타겟이 윤석열 대통령으로 맞춰졌다. 민주당의 탄핵 주장 남발에 “습관성 탄핵 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신율 명지대 교수)는 말까지 나온다.
보름 전 한동훈ㆍ이상민 탄핵 꺼낸 野, 이번엔 “尹 퇴진”
민주당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 소속이자, 직전 수석 최고위원이었던 김용민은 8일 ‘윤석열 퇴진 촛불시위’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가 5년을 채우지 못하게 하고 빨리 퇴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인사 참사를 일으키더니 그 다음엔 외교 참사를 일으켰다. 이제는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고등학생과 싸우는 정부가 되고 말았다”는 이유를 댔다.
지난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촛불 시위'에 참석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이 이튿날인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현역 의원의 첫 퇴진 주장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즉각 “명백한 대선 불복”(김기현 의원)이라 반발했지만, 김용민은 11일 “우리 헌정질서는 대통령답지 못한 사람을 결국 국민이 바꿀 수 있게 열어뒀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또 썼다. 그는 “반헌법적 선동을 한다”고 비판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선 “가소롭다”는 글도 썼다.
지난달엔 민주당에서 한동훈ㆍ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을 단행한 한 장관과 행안부 내 경찰국을 신설한 이 장관에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이유였다.
문재인 정부 때 법무장관을 지낸 박범계가 “한동훈 장관 탄핵은 가능한 일”이라고 선봉에 섰고, 친이재명계 최고위원인 서영교 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상민 장관이 만약 사퇴하지 않고 버틴다면 탄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5일 국회 정치ㆍ외교ㆍ통일ㆍ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달 27일 의원총회에서는 한 장관 탄핵소추안 발의 논의가 진지하게 논의될 예정이었다”(당 고위 관계자)고 한다.
다만 윤 대통령의 외교 순방 중 비속어 논란이 터지면서, 민주당은 박진 외교부 장관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이날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은 이틀 후 국회 본회의에서 거야의 힘으로 가뿐히 단독 처리했다.
尹 지지율 고전하자 강경파 득세, “되레 尹 지지율 올려줄 수도”
민주당에서 탄핵 주장이 최근 잇따라 터져나온 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전하며 강경파의 입김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 교체를 해본 경험과, 거야의 강력한 힘을 충분히 쓰길 바라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도 맞물렸다. 해임건의안 의결과 마찬가지로 장관 탄핵소추안도 국회 재적의원 과반(150명 이상) 찬성이면 의결된다. 대통령 탄핵안(3분의 2 이상 찬성)만 제외하곤 언제든 민주당 마음대로 실력 행사가 가능하다.
다만 당내에선 “강경파의 득세는 되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려줄 것”(수도권 중진)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과거 검수완박 국면 등 강경파가 당을 장악할 때 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반사이익을 얻곤 했다. 박 장관 해임건의안 강행 처리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169석이 있다고 함부로 의회권력을 휘두르다 국민들로부터 심판받고도 제대로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강경파의 목적이 사심을 채우기 위한 것”(수도권 초선)이란 의심도 있다.
김용민이 참석한 ‘윤석열 퇴진 촛불시위’는 강성 진보 인사인 우희종ㆍ안진걸이 공동대표를 맡은 시민단체 ‘촛불행동’이 주도한 시위다.
당 관계자는 “김용민이 강성 지지층에 인기몰이를 하러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동훈 장관 탄핵 주장을 주도한 박범계 역시, 지난 정부 때부터 사사건건 한 장관과 악연을 이어온 터라 “개인적 악감정으로 탄핵을 주장하냐”(서울 초선)는 비판도 있었다.
제어 장치 풀린 강경파, “초가삼간 다 태운다” 우려도
당내에선 강경파들이 다음 총선이 다가올 수록 목소리를 더 키울 거란 관측이 적지 않다.
“지난 대선ㆍ지방선거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 입지가 좁아진 강경파들이 강성 지지층 포섭으로 생존 전략을 짤 것”(신율 교수)이란 전망이다. 이미 클리앙 등 친야 성향 커뮤니티엔 윤석열 정부 인사에 대한 탄핵 요구가 겉잡을 수 없이 분출되고 있다. 민주당 당원청원시스템에도 현재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5082명)이 1위를 달리고 있다.
한때 민생 노선을 강조하던 이재명 조차 최근 ‘친일 국방’ 공세로 강공 대열에 합류하면서, 강경파를 억제할 인사도 사라졌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협소한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며 “당 전체가 소수 목소리에 끌려다니면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진 의원은 “민주당의 시간이 아직 안왔는데, 강경파들이 초가삼간을 다 태우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