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촌院村, 왜 원촌일까? 혹시 사리원이나 장호원, 혹은 이태원처럼 나그네가 쉬어가던 원집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오래 전에 한글학회에서 나온 <한국지명총람>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원촌을 찾아보니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
”옛날 진안현감이 부임할 때 이 마을에 숙소를 정하였다고 함“ 원님이 하룻밤 자고나서 원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말, 오죽했으면 진안에 인물이 안나서 ”정승에 사돈에 팔촌하나 없다“라는 말들이 회자되었을까?
어린시절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초등학교 시절을 원촌에서 보낸 터라 익산바우가 있던 곳을 보니 샘은 보이지 않고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의 단풍잎만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 그 익산바우 아래에서 나온 샘물에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서려 있지,
“얘야. 조금 있다가 익산바우밑 진담샘에 가서 물 좀 떠오너라.” 이 날은 아버지가 밭에서 처음으로 붉게 익은 빨간 고추를 따오신 날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큰 주전자를 들고 백운 지서 옆을 지나면 보이는 익산 바우는 그 모양이 익산(우산)을 닮았다는데 백운 초등학교의 아랫녘에 있다. 그 바위 아래에 진담샘이라는 샘이 있다. 물이 맑고 깨끗하며 더구나 차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여름이면 그 샘물 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그 차디찬 익산바우 샘물을 먼저 마시고 주전자에 가득 채운다. 이렇게 시원한 물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일까? 솟아나는 의문점을 가슴에 담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이미 밥 먹을 준비를 맞추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보기만 해도 가슴까지 붉어 질 듯한 붉은 고추와 빨간 고추장 잘 익은 된장에 보리밥이 전부지만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다.
“얘야, 여름철에 맛볼 수 있는 맛 중에 별미가 바로 맨 처음에 익은 고추란다. 너도 한 번 먹어 봐라” 아버지가 건네주는 작고 귀여운 장난감 같은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한 잎 깨물면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그 달보드레한 맛, 맵지도 쓰지도 않고 달착지근한 그 맛을 뭐라고 표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추와 함께 먹는 보리밥의 맛을 잊은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어쩌다 보리밥집에 들어가 열무를 넣어 비벼 먹는 게 고작이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의 산천을 수놓았던 재래종 고추가 사라지고 개량종으로 부피가 큰 고추들만 나라의 산천을 수놓고 있다. 어쩌다 그 고추가 그리워서 작은 고추만 보면 한입 깨물어보지만 그 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맵고 톡 쏘는 맛만 살아 있으니,
사라지고 찾을 길 없는 그 추억들을 떠올리는 일들이 많아진 것은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곰삭은 것들이 하나둘씩 고구마줄기에서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아니면 실꾸리에서 실들이 풀려나오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