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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호/ 일월청정, 사제공전의 사명과 서원
● 당체의초는 일체만법이 모두 묘법연화의 당체라는 것을 말씀하신 어서
일월청정님은 “불법 공부한 것을 서로 토론으로 저의 부족한 면을 채우고 싶고 공유했으면 해서 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저를 신뢰할 수 없어 그러신가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생각은 지난 번에 “문상과 문저”에 대해 말씀 드렸으니, 귀하의 생각을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
귀하께서 “당체의초 내용들 중에서 석존의 교상과 대성인의 관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체의초에는 일체만법이 모두 묘법연화의 당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니치렌 대성인의 제자 단나만이 당체연화를 실증할 수 있다는 취지가 설해져 있습니다.
니치칸 상인은 당체의초 문단에서 당체의초는 본존을 수지 함으로써 당체연화를 증득하고, 나의 몸이 묘법의 당체로 나타나는 것을 명시한 어서라고 하여, 교행증의 증(證)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하도 “교를 공부해서, 행 즉 실천을 하니, 증 무작삼신 증득을, 교행증 중에서 증득의 어서인 당체의초에 법화경의 체와 용 즉 구체구용을 석존의 교상과
그리고 당체의초 끝 부분에는 “대저 묘법의 오자는 말법유포의 대백법이며, 지용천계의 대사(大士)의 부촉이니라”(어서 519쪽)라고 있습니다. 묘법은 지용의 보살이 석존으로부터 부촉을 받은 말법유포의 대백법입니다.
● 지용보살이 등장한 용출품과 지용의 자각
여기서 “지용천계의 대사(大士)의 부촉”(어서 519쪽)에 대한 의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용보살이 등장한 용출품의 흐름을 확인해 두고자 합니다.
법화경의 본문은 부처의 멸후, 이 사바세계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넓히는 자가 누군가 하는 것을 밝히는 대목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적화(迹化)의 보살들이 결의합니다. 그런데 석존은 이 자청을 엄하게 물리치면서 “사실은 이 사바세계에 직제자인 육만항하사 등의 보살이 있다”고 밝힙니다.
그 말을 신호로 하듯 대지를 가르고 무수한 보살들이 출현합니다. 이 육만항하사의 보살은 모두 대중 창도의 상수이며 각기 “육만항하사 등의 권속을 거느렸느니라”라고 설합니다. 그 수는 지구상의 전 인구 정도가 아니라 실로 계산이 불가능한 천문학적인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용출(涌出)에 대해서는 한역의 사본이나 간본에 따르면 용출 즉 ‘춤추며 나오다’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지용보살의 출현에 따른 보살들은 동요하고 의문을 일으킵니다.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 보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이 무수한 제자를 교화한 스승(석존)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미륵보살이 모두를 대표하여 질문한 데 대한 석존의 대답이 앞에 나온 “나는 구원 이래 이들 중(衆)을 교화하였다”라는 말입니다.
● 석존의 발적현본과 학회의 발적현본
법화경에서는 다시 수량품에 이르러 석존은 시성정각이라는 적(迹: 임시의 모습)을 열어서 구원성도라는 본지를 나타냅니다. 이것이 석존의 발적현본(發赤顯本: 적을 열어서 본을 나타냄) 입니다.
여기서 학회의 원점은 ‘지용의 자각’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선사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선생님의 행동 그 자체가 지용보살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다 선생님이 “나는 지용의 보살이다”하며 패전 뒤의 황야에 혼자 일어서서 학회 내에 대성인의 말씀이 맥동하고 광선유포의 길이 열리고 바야흐로 전 세계에 지용의 대열을 구축하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군부정부의 탄압으로 체포, 투옥된 뒤 옥중에서도 취조담당관의 심문에 대해 “광선유포는 말법의 탁악한 시대사상을 묘법의 진리로써 정화하는 일이다”하며 엄연히 대답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광선유포를 창가의 사명으로 깊이 각오하셨던 것입니다.
그 마키구치 선생님이 체포되기 직전의 봄쯤부터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학회는 발적현본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학회의 발적현본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같은 옥중에 있으면서 그것을 몸으로 자각하신 분이 도다 선생님입니다.
● 교상면에서 우리는 지용보살, 신심에서는 니치렌 대성인의 문하
도다 선생님은 1951년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신 뒤 곧 논문<창가학회의 역사와 확신>을 발표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불멸의 학회정신이 씌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하다. 무시무종이다. 우리는 말법에 일곱 문자의 법화경을 유포해야 할 대임을 띠고 출현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였습니다. 이 경지에 따라 우리의 위계를 판단한다면 우리는 지용보살입니다” 이것은 1945년 7월 3일 순교하신 선사의 마음을 계승하여 출옥한 도다 선생님의 확신이었습니다.
제2대 회장에 취임하신 도다 선생님은 “교상면(敎相面: 경문에 설하는 가르침의 내용) 즉 외용(外用: 밖으로 나타나는 작용)의 모습에서는 우리는 지용보살이지만, 그 신심에서는 니치렌 대성인의 권속이며 말제자다”라는 확신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불석신명으로 끝까지 싸워나갈 각오라는 것을,
“이 확신이 학회의 중심사상이며 바야흐로 학회에 널리 퍼져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바로 발적현본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용보살이다! 광선유포는 우리의 손으로! 이 사제공전의 사명과 서원으로 전 학회가 일어섰습니다.
모두가 이 스승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 스승의 서원을 내 서원으로 하여 사자분신의 힘으로 맹렬하게 싸웠습니다. 몹시 어려운 싸움으로 광포의 길 없는 길을 개척했습니다.
● 맺음 말
때를 말하면 악세말법, 그 국토를 말하면 사바세계가 지용보살이 사명하는 무대입니다. 가장 힘든 조건을 골라서, 가장 괴로워하는 민중을 위해 지금 여기서 싸운다고 일어섰습니다.
불법은 원겸어업(願兼於業)을 설합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원해서 어려운 곳에 태어났다고 수동적인 인생에서 자발능동적인 인생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서원으로 ‘숙업(宿業)을 사명’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구원의 사명을 자각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발적현본으로 진정한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용의 생명을 자각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한다는 사명에 서면 용기도 나고 힘도 나옵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지용의 숙연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원겸어업의 서원입니다. 교행증의 증입니다.
참고문헌: 당체의 초, 제법실상초,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평화의 인간세기로! 지용의 사명과 창가 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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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호님!
짧은 시간에 정리하셔서 올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총별 두의를 모르면 성불은 없다 라고 하는 어서와
법화경을 모르고 말하는 자는 오로지 이전경의 이익이다 라는 어서를
올렸듯이 함께 공부한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 였읍니다
저도 당체의초 문단집을 가지고 있지만 님이 거론하신 학회와 관련된 글은 없읍니다
어찌 됐든 총에 측면에서는 맞을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토론이란 먼저 결론을 내버리면 토론이 안되지요
각자가 결론이라 내세워도 위에서 부처님께서 보시면
각자 부분관의 결론이다 할수도 있읍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테러범 빈라덴을 지명수배 한적이 있지요
그 사람이 한국에 있다 라면 미국에서 보면 총에서는 맞지요
그러나 다시 별에 측면에서는 한국 어디에 있는가
예를 들면 백지기기 살고 있는 부산 영도구 무슨동 번지까지
알아야 별의 츨면에서 맞듯이
위의 님의 글은 별에 측면에서 보면 제가 묻는 질의에 지용의 보살 부분만
비유로 들었고 나머지는 전혀 상관 없는 답이 됩니다
당체연화 비유연화 중에서 허공회 의식도 비유연화이지요
당체연화 답은 어문에 있는대로 구요
저는 당체의초의 교상과 관심에 대해서 논해 보려 했읍니다
석존의 교상으로는 신력품 21에서 상행보살에게 법을 부촉하는 것이지요
부처를 화광동진의 義로
교상으로는 석존 천태 전교 니찌렌으로 보는 것과
문저 즉 관심으로는
구원원초 자수용신께서 오백진점겁 제 1번 성도후에 연등불로 가섭불로
석존으로 천태로 전교로 말법에는 日蓮으로 직접 출현하셔서
대자비를 일으키시어 불성의 당체를 어본존으로 도현하시어
말대 유치한 우리들 범부 목에 걸어주심이지요
이렇게 보는 것이 관심이 아닐까요
우리 목에 걸어준 이 본존을 거울로 해서 보니 이 본존이 우리 생명속에 있는 것이고
이 본존을 연으로 해서 제목창제를 해서 내외상응 인연화합 감응도교로 무작삼신으로
나타 남을 당체연화불이라 고 결론내리고 있읍니다
주요한 것은 이 본존을 대부분 교상의 본존으로 생각한 다는 것입니다
즉 기원의 대상으로 여기면 안된 다는 것이지요
관심의 본존 즉 우리들 생명의 불성을 발아시키는 능생의 덕을 갖춘 본존이지요
아무리 부처가 우리들 범부를 제법실상의 부처라고 해도 냉정히 살펴보면
부처와 우리들이나 체가 같은 묘법의 당체이지 쉽게 말하면
부처가 될 불종(DNA)가 있다는 것이지
연화의 소현 즉 심성의 팔엽의 백연화로 개화 된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별의 측면에서 佛意에 맞는 수행이 아니면 성불은 없다는 것으로 됩니다
허공회 의식을 발씀하셨는데요
허공회 의식은 비유연화이지요
보탑품의 문을 삼변토전으로 해서 문을 여니 보탑안에 二佛竝座 하고 있는 것을
문저 관심으로는
보탑이란 우리들 몸 즉 십계삼천을 구족한 묘한 진리의 당체이고
삼변토전이란 제목 창제로 기죄필이로 육근청정하면
다보는 색법즉 境妙요
석가는 심법 즉 智妙이지요
결국 색심불이 경지명합의
우리들 묘경묘지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석존은 불계요
지용의 보살은 구계이지요
즉 구계즉 불계 불계즉 구계의 당체인 우리들 생명의
실상을 가르치는 것 아닌지요
부처는 종으로 자해불승이라 해서 願業이고
우리는 횡으로 業生이라서 본존을 緣으로 감응도교지요
당체의초의 법화경의 구체구용 즉 불성의 체에서 무작삼신으로 나타난다 라는 것을
석존의 교상으로는
체를 제법실상으로
用즉 현증을 보탑품의 三身과 용녀의 즉신성불과 지용의보살과
묘음 관음품의 33身 34身을 들고 있읍니다
그럼 대성인의 관심의 측명에서는 체와 用을 어떻게 이해 하신지요?
귀하는 “법화경을 모르고 말하는 자는 오로지 이전경의 이익이다 라는 어서를 올렸듯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자비에 뛰어난 부처가 출현하여 병든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은 중생을 의존의 인간으로 병들게 합니다. ―
혹은 중생은 어딘가 다른 국토에 살고 있다는 부처를 갈앙하며 오직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현실도피의 병든 인간을 만들게 됩니다.
근본적인 잘못은, 오로지 부처만이 자비로운 구제 주라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 석존이 유다원질의 말법시대의 광선유포를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한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굳지 지용의 보살에게 부촉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즉 절대적인 구제자와 구제받는 신도들이라는 고정적인 관계를 만들면 불법의 목적인 서로 자비를 베푸는 세계를 넓힐 수 없습니다. 승속차별의 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성인께서는 개목초에서 사지방법의 나라에서 수행하는 기본자세로 절복을 명시하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절복은 서로 ‘다투는 마음’이 아니라 악과 ‘싸우는 마음’이며, 따라서 수라도가 아니라 민중을 구제하는 보살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여래수량품의) 여래(如來)란 일체중생이요.”(어서 752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부처뿐 아니라 일체중생 생명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묘호렌게쿄가 바로 구원실성의 부처의 실체이며 석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는 묘법의 작용입니다.
묘법에 차별은 없습니다.
차명호님!
신심 수행은 자행화타이니 당연히 절복은 해야지요
먼저 자신의 미혹을 없애고 타인을 이익케 하는 것이지요
일체중생이 부처이지요 그것도 총에 측면입니다
별의 측면에서는 부처는 체와 용이 제대로 가동이 되고
우리들 중생은 체는 三如是 묘법의 당체이지만
七如是 用은 엉망이지요
저의 질문을 이해를 잘 못하신듯합니다
제가 묻는 것은 당체의초의 구체구용을 대성인의 관심의 측면에서 어떻게
이해를 하고 계신지를 묻는 것입니다
수십년동안 공부해서 정립한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것이지
이께다 회장의 지도를 듣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시지요?
이해를 잘 못한다고 하시니,
잘 알고 게신 귀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일월청정님은 어려운 말을 많이 아십니다. 청정님의 글을 보면 이조시대 선비를 대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타인이 모르면 가치를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분이 이해할 수 있게 토를 달아주시는 것은 어떨른지요?
귀하는 “당체연화불이라 고 결론내리고 있읍니다”라고 하셨는데, 어서를 근본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성인께서는 “의법불의인이라 하여 보현, 문수 등의 등각 이환의 대살타가 법문을 설하실지라도
경문을 손에 들지 않으면 쓰지 말라고 했느니라”(어서 481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십년동안 공부해서 정립한 본인의 생각을 듣고 싶었던 것이지 이께다 회장의 지도를 듣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는 정법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서로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이 공부하는데,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있고, 독학으로 공부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요즘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학군을 따라 이사하는 극성 엄마도 있다고 합니다.
대성인께서는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해도 선지식이라는 선연을 만나지 않으면 불성을 깨닫지도, 알지도, 나타내지도 못한다”(어서 574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범부가 자신에게 내재한 불성을 열기 위해서는 최고의 선지식이 중요합니다.
학회는 이케다 선생님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사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조직입니다.
귀하가 독학으로 불법을 배우는 것이야 자유이지만,
이곳 카페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사제의 마음을 평가하려는 말씀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명호님!
저는 님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부터 당체의초 구체구용을 석존의 교상과 대성인의 관심으로 어떻게 이해
하신지를 물었읍니다
구체구용의 기본적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신지 듣고서 저도 부족한 면을 채우고 싶어서였읍니다
그런데 제가 듣고 싶은 말씀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선지식의 緣에 대해서 총감문초 말미 부분을 거론하셨네요
저가 알기론 우리 생명의 십계가 因이요
이 因은 연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緣을 보고 因을 알라고 배웠고요
붇디쳐 오는 緣만 책하고 자신 내면의 因을 부정하면 연에 분동된다 라고 배웠읍니다
총감문초에서 말하는 연이란 어본존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들 생명에 불성 즉 삼인불성의 因은 있지만 삼인불성의 緣인 삼대비법의 어본존과
인연화합 감응도교로 성불 할수 있다 는 금언으로 알고 있읍니다
이자리는 정법을 논하는 자리라 하시면서 왜 어서 공부 한 것을 가지고 대화를 해야지
이께다 회장 지도 글로 대신 하시려 합니까
저는 종문 소속이지만 무슨 법주 말씀이니 그런 말 하지 않았읍니다
오로지 어서를 중심으로 서로 공부한 것을 가지고 토론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님께서는 자신의 견해는 없고 학회 서적에서 뽑은 회장 지도 글로 대변해 버리면
대화는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인내하면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솔직한 대화를 하고 싶읍니다
그런데 이조시대 선비 말 같다니 어려운 말이라니 하시면 저도 난처합니다
지엽적인 세법의 론리를 접고 부처님의 어금언을 공부한 것을 가지고 대화를 했으면
했읍니다
불교 교리를 어렵다 하시니 저도 좀 당황 스럽습니다
총감문초 어서 563 쪽에
팔만 사천의 법장도 한 사람의 일기 문서라고 합니다
결국 팔만사천의 법문도 별에서는 부처님 생명의 불성
총해서는우리들 중생의 생명의 불성 설명서 아닐까요
우리들의 생명의 불성을
어본불님께서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수 있게 어본존으로 도현하신 것이고요
님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어서를 증문으로 하면서 청정님의 논리를 펼치셔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일기문서에서
별에서 부처님생명의불성
총해서 중생의생명의불성
이라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백지기님
제가 원하는 것이 어서를 근본으로 법을 토론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한 것이지요
지엽적인 인사의 말은 배제하고요
백지기 질의는 한 마디로 본존이 무엇이냐 라고 물어야 됩니다
우선은 차명호님의 고견을 듣고서 차후에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