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종종 출현하는 30대 지도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로부터 각별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남다른 다른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시퍼런 풋감같은 젊은 지도자가 꼰대질 하는 건 증말!
사람이 좀 겸손하면 덧나나.
사람은 죽는 날까지 미완성의 존재로 살다가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가는 인생 나그네.
결국 철이 다 들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인생은 미완성~!
사람은 한없이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다.
겸손은 영원한 인간의 미덕~!.
세상과 사람을 향해 누구나 언행은 늘 삼가하고 겸손해야 하는 것~!.
못다한 야그 <종편>
증말 할 일도 없고 심심한 횐님드를 위하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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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재<정신과 전문의,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님이 전하는 이바구~....
1960년 신상옥감독의 '로맨스빠빠' 영화
"로맨스 빠빠"
"저 산 너머 (Über den Bergen)“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멀리 찾아가면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아, 남들과 어울려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울면서 되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칼 붓세(Karl Busse).
1959년 말 신상옥 감독이 ’로멘스 빠빠‘라는 신작 영화의 주연 남자 배우를 공개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냈다.
강신영은 아직 초보 배우학원생이라 감히 원서 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분위기 구경이나 하겠다고 광화문의 조선일보 부근 면접 사무실로 갔다.
그는 수원 공군부대서 위관급 조종사로 근무하는 형 신구에게 빌붙어 살고 있었다.
그날은 한껏 멋을 부려 형이 가장 아끼는 빨간 티셔츠에다 공군 점퍼를 훔쳐 입고 그곳에 갔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데도 3,083명의 주연배우 지망생들이 모였다(다음날 조선일보 기사).
그들이 만든 길고 긴 행렬이 뱀처럼 돌고 돌아 ‘시민회관’과 ‘천마 교통’ 까지 감싸고 있었다.
신영은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서서 그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그를 툭툭 쳤다.구두닦이 애였다.
“아저씨 저기 ’취미 다방‘이란 간판 보이죠? ’라이반‘ 낀 어떤 사장님이 거기 좀 올라오래요.”
다방에 올라가니 배레모에 검은 선그라스를 낀 조폭 분위기의 한 사내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너도 배우될 생각 있나 보지? 아까부터 줄곳 밖에 서 있던데, 나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이야.
3시간 뒤 면접 사무실로 가. 거기서 신 감독님 만나.”라고 말하며 그가 적은 메모지를 주었다.
폼나는 그 사내는 나중에 한국 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린 이형표 감독이다.
“저가 왜 신 감독님을 만나는데요? 저는 신 감독님의 얼굴도 모르고요.”
조감독은 긴 설명을 하지 않았다.“야 인마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촌놈이. 까라면 까는 거지.
너 최은희는 알지? 그 옆에 앉은 사람이 신 감독이야. 나와 만난 이야기하고 이 메모 드리고 감독님 말씀 들어봐.”
3시간 동안 갈 곳이 없다.귀찮아서 수원의 자취방으로 가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배우될 사람이니 이럴 때 거물들과 얼굴이라도 익혀 놓자는 생각에 시간을 기다렸다.
명동을 갔다.다시 충무로를 거쳐 남산에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왔다.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을지로에서 종로로 마냥 걸어 다녔다. 광화문에 다시 돌아와 시계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제는 갈 곳도 없다.비 오는 골목길에 마냥 서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신상옥 감독을 만났다.그는 한동안 물끄러미 신영을 쳐다보았다.
“자네 나와 같이 일해볼 생각없나?” 라고 물었다.어리둥절한 촌뜨기를 보고 감독은 다시 말했다.
" '로멘스 빠빠‘의 주인공이 될 생각이 없냔 말이다. 계약은 삼 년이야.”
생각하지도 않던 소리에 깜짝 놀랐다. ‘조연도 아니고 주연이라니.’그 때를 회상하며 신성일은 말했다.
"지금이라면 환호작약하며 만세를 부르고 신 감독에 엎디어 수없이 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전차에 받힌 것처럼 머리가 하얗게 텅 비어 멍하게 앉아 있었다."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난로에 눈 녹듯 사라졌다.
지원하지도 않았던 한 인간이 새별로 탄생한 것이다.
애송이에게 신 감독은 몇 년 동안 알아 온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자네는 오늘부터 나의 성을 가져가 신가(申哥)가 되는 거야. 그리고 별 중에 최고의 별이 되어야지. 신성일(申星一)”
그 시각부터 강신영은 신성일이 되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옛날 유럽에나 있는 전설이 아니었다.
광화문에서도 호박이 마차 되는 광경이 재현되었다.
강신영은 신성일로 로멘스 빠빠에 데뷔하고 영화는 1960년 설날 개봉되어 공전의 대 히트를 치게 된다.화려한 데뷔였다.
이날부터 신성일은 일생 동안 506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19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 최고 스타로 자리잡았던 신성일
수원 공군관사로 돌아온 날 밤.
강신영 아니 신성일은 온갖 생각이 얽혀와 밤을 꼬박 세웠다.
행복을 찾아 아니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서울로 왔다.
기차표 살 돈이 없어 형 강신구 중위가 조종하는 공군 수송기 C-46을 타고 대구서 서울로 갔다.
추풍령 상공은 에어 포켓이 많이 생기는 곳이다. 신영이 가던 날도 그랬다.비행기가 떨어졌다, 올라갔다 그리고 좌우로 흔들려 그의 몸도 여기 박히고 저기에 박히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누군가가 비행장에 착륙했다며 그를 깨웠다. 눈떠보니 여자 공군 대위 누나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의 첫 여자는 군인이었다.
첫댓글 강신영은 운 좋게도 백마를 탄 왕자를 만났네요.
만약 그런 인연이 없었다면 그냥 3류인생으로 살았을 인생인데 천운으로 이형표 감독의 눈에 띄어 일약 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네요.
인생은 파란만장.... 성공도 가지가지.... 잘 읽고 갑니다.
단편 이약이 훨 재미 있으시나요.
맥주 한잔에 양념 통닭같은...
인생에서는 우연이 때로는 필연이 되며
순간이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는 요지경...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은 재목을 보는 눈을
가져 스타를 만들어주고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지난 추억 그렇게 만들어지면 자신을 알고 행동해야하는데 정치나 연예인이나
인기가 조금있다고 하는짓들이 눈꼴이 많이
시려운데 도운다는거 배려한다는것 인내란걸 조금씩 배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거들먹 피우면
세상은 사정없이 그 꼴 외면하지요.
조진건이 된 후에 후회한들
때는 늦으리.
겸손했었어야 ...때는 늦으리
들샘님~
카이져님~
좋아요님~
참 돈독하신
우정에 감동받아요.
끝말잇기방
활성화에 세분
중심 멤버님들의
지대한 공로에
제가 표창장을 드립니다. ^^
축하주라도 주거니 받거니
곁들이면 오죽 좋겠냐마는
세상이 이러니 저러니
핑계가 많습니다.
초여사님
별도 안 보이는 데
별이 삼형제?...
성은이 황공하여이다.
끝말방이 끝내주는 방이 되는 날
아마도 해방의 날이 되겠지요.
로기님이 들려주시고
즐겨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모습이 좋아서
사는 맛이 나고요 끝말방에 미련을 어이치 못할 테지요.
가로늦게 표창장도 받아보고
이 영광 어이 잊으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