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197장 (구 178장) / 고린도전서 14 : 1 - 1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197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14장 1절 – 12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아멘!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된다는 것은, 성령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믿고,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변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끊어지지 않던 악습에서 해방되고 기도를 통하여 질병이 물러가는데, 이것이 바로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이러한 초자연적인 성령님의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나타나심, 특별히 방언과 예언에 관하여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교회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는 은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는 은사가 정말로 강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을 보면, 고린도교회에는 사도, 예언자, 교사, 기적을 행하는 사람, 병 고치는 사람,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소그룹에서도 예언, 방언, 통역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교회에서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은 물론 성령의 은사가 무시되고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세대주의 신학 때문입니다. 성경이 완성되고 사도들이 세상을 떠남으로 인하여 오직 성경만이 권위의 기준이 되고, 사도의 세대가 끝나면서 성령의 은사도 그쳤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이론입니다. 단지 성령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시며, 성령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을 체험할 수 있고, 은사를 받아 은사 사역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성령님의 은사가 임하여 은사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은사 가운데 방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방언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방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방언입니다. 이 방언은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필요할 때에 성령님께서 이러한 은사를 주신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천사의 말이라고 표현한 방언입니다. 대부분 방언이 이에 속합니다.
방언은 이웃을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또 방언은 성령님께서 우리 영을 움직여서 기도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내용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의 내용을 알려면 방언 통역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방언은 이웃도, 자신도 내용을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4절 상).
그래서 방언의 은사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방언을 받은 후부터 기도가 쉬워지고, 기도를 더 오래, 자주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방언은 자신을 위한 것임으로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에만 사용하고, 공적인 예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통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성도들의 모임에서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방언을 받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기도가 길어지고, 기도가 깊어지고, 그래서 기도가 살아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음으로 예언의 은사인데, 예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점쟁이들처럼 장래의 있을 사생활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보면, 예언의 목적은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분의 마음 아픈 얘기를 들으면서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알고 계시므로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 마세요.” -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느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그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실 때에 그 안타까움을 느끼고, 하나님이 분노하실 때에 그 분노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의 어려움을 들을 때에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느끼게 하시고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예언을 주십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가짜 예언도 있는데, 가끔 가다가 “하나님께서 당신보고 이러라고 합니다.” 식의 예언은 거의 대부분 가짜입니다. 본인은 전연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당신은 목회자로 부르셨다느니, 어떤 사업을 해야 축복을 받을 것이라느니, 약혼 중인 여자와 헤어지라느니 하는 식의 말은 다 가짜로 보면 됩니다. 자신이 영적인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어 하거나, 남의 삶을 컨트럴(control)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장난입니다. 구원받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시키시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먼저 본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방언보다 예언을 권하는 것은 방언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예언은 이웃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5절) 그렇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역 없이 은사와 체험만 사모하니까 은사를 못 받든지 이상한 영을 받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기를 원하면 사역부터 시작하여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그룹 셀 목장을 맡아서 섬김의 은사를 사모하면 섬기는 은사를 주십니다. 주일학교를 맡아서 열심히 사역하게 되면 가르침의 은사를 주십니다. 모든 교회 사역을 맡아서 열심히 사역하면 감당할 은사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고, 사역을 하시면서 성령의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셔서 우리 교회에서도 수많은 성령님의 은사가 나타나서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영혼을 건져내는 은사사역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