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이병화) 시인의 산문시<쥐구멍> 톺아보기/우병택
소화(이병화) 시인의 산문시<쥐구멍>을 鑑賞하면서 '로드 킬'이라는 강렬하고 처절한 주제를 다루던 시인의 이전 문법과는 사뭇 다른, 아주 내밀하고 일상적인 통증에서 시작된 시구들이 인상적이었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이 시에 대한 감상과 비평적 분석을 정리해보자.
시평: 상실의 공간을 메우는 혀의 서사
1. ‘몸의 기둥’이 무너지는 존재론적 비애
시의 시작은 단순한 치과 진료의 경험이지만, 시인은 이를 "몸의 기둥을 뿌리째 흔들어 대는" 사건으로 확장했다. 어금니 한 개를 뽑는 행위가 단순히 신체 일부의 제거가 아니라, 수십 년을 버텨온 '퇴역장군'의 은퇴식처럼 묘사한 탁월한 시적 감각이다.
비유의 묘미: 어금니를 '퇴역장군'에 비유한 대목은 시인이 자신의 신체를 대하는 정중한 태도를 보여준다. 군소리 없이 제 자리를 지키던 존재에 대한 예우와 고마움이 '감사패'라는 단어에 응축되어 있다.
2. ‘든 자리’보다 큰 ‘난 자리’의 철학
속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를 시적 리얼리티로 끌어왔다. 어금니가 빠진 뒤 찾아온 것은 시원함이 아니라 '상실감'이다.
균형의 붕괴: "갸우뚱해진 내 몸"이라는 표현은 흥미롭다. 아주 작은 치아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전신(全身)의 균형이 흔들리는 감각을 통해, 우리 삶의 평화가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3. ‘쥐구멍’ – 허무가 실체화되는 공간
제목이기도 한 '쥐구멍'은 이 시의 백미다.
언어의 누수: 텅 빈 잇몸 자리를 혀가 자꾸만 건드리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적인 허무를 메우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시적 결말: "바람이 새고 말도 샌다"는 마지막 구절은 물리적인 현상을 넘어, 이제 시인의 언어조차 그 빈틈(쥐구멍)을 통해 흩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로드 킬'의 거칠고 단단한 언어에서 벗어나,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소멸의 언어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읽힌다.
총평
이 시는 '통증의 개인사'를 '존재의 보편적 상실'로 치환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산문시 형식을 빌려 호흡을 길게 가져감으로써, 혀가 쥐구멍을 더듬듯 독자가 시인의 감각을 천천히 따라가게 만들었다.
거친 길 위(로드 킬)를 응시하던 시선이 이제 자신의 입안, 가장 어둡고 작은 구석인 '쥐구멍'으로 옮겨온 것은 시인의 감수성이 더욱 깊고 섬세한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 생각한다.
첫댓글 이렇게 해서 제 시가 재탄생을 하게 되는군요. 선생님의 시평은 언제나 좋은 공부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금 제 시를 독자의 입장에서 읊조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