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아빠 / 박경대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끌려 신천 변으로 산보를 나갔다. 개나리가 활짝 핀 길을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젊은 부부가 다정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부부 중 남자의 덩치는 무척 커 보였다. 멀리서 봐도 뒤뚱거리며 걷는 남자의 배 둘레가 대단했다.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나왔나하며 지나치는데 웬걸, 남자의 배 앞에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아기를 앞으로 메고 추울까봐 머리를 천으로 감싸니 불룩 나온 배 인줄 착각 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일을 하기 위해서인지 아기를 등 뒤로 업고 다녔다. 그러나 요즘은 아기를 보호하기가 쉽고 얼굴도 보기위해 앞으로 메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부부가 외출을 할 때면 어린아이는 대부분 남편이 챙긴다. 아내를 위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그러나 남자가 요리를 하고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에는 역할분담이 하나씩 바뀌는 것 같아 조금은 혼돈스럽다.
아이를 안듯이 메고 가는 모습이 마치 새끼를 육아 낭에 넣어 돌보는 캥거루 같이 보인다. 오래 전 호주의 동물들을 촬영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시드니의 캥거루 동물원에서 사진을 찍던 중 원하는 포즈가 나오지 않아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캥거루의 배 앞에서 조그마한 새끼 한 마리가 고개를 살그머니 내밀었다. 얼마나 귀여웠던지 나도 모르게 새끼를 만지려 했다. 그 순간 어미 캥거루로부터 강력한 원투 스트레이트가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몸을 피했지만 많이 놀랐었다. 동물이 새끼와 같이 있을 때는 조심하여야 된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2세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새끼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버리는 동물들도 있다. 어미가 새끼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을 때는 바로 자신의 뱃속에 있을 때이다. 거기에 더하여 탄생한 새끼를 독립할 때까지 뱃속에 넣고 다니며 애지중지 키우는 동물이 ‘캥거루’이다.
캥거루가 처음 탄생하면 몸무게가 2g도 채 되지 않는다. 어미는 이 새끼를 약 7개월에 걸쳐 젖을 먹여 키우며 그 후 6개월가량 육아 낭에 무상출입시키고 독립을 위한 실습을 시킨다. 이 시기의 새끼는 풀과 어미젖을 번갈아 먹는 이유기이다. 이즈음에 어미는 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놀랍게도 갓 태어난 새끼와 이유기의 새끼가 먹는 젖의 영양가와 내용물이 다르다. 결국 어미는 두 종류의 젖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바깥출입을 하는 큰 새끼도 어미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보살펴 주며 새끼에게 가장 위협적인 야생 개나 독수리가 나타나면 어미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육아 낭을 벌려 새끼의 피신을 도와준다. 어느 동물이나 새끼를 보호한다는 본능은 다 갖고 있지만 캥거루처럼 새끼를 보호하는 특별난 몸의 구조를 갖춘 동물은 없다. 캥거루는 가히 자식사랑의 대표적인 동물인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언론에서 캥거루족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 뜻은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젊은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어려운 경제상황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 아이를 많이 낳지 않고 한두 명을 애지중지 키우다보니 부모의 어긋난 자식사랑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 현상을 캥거루족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캥거루는 새끼의 독립시기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육아 낭을 느슨하게 하여 새끼를 내려놓는다. 어미의 판단으로 한번 내려진 새끼는 다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도록 한다. 그 행동이 새끼를 위하는 것임을 캥거루는 알고 있다.
힘든 세상을 살아온 부모는 자식들이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바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아를 발견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먼 장래 부모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독립심을 키워 주는 것이 진정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한참을 걸었더니 피곤하여 벤치에 앉았다. 쉬면서 옆 벤치를 보니 그곳에도 캥거루아빠가 아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가제수건으로 입가를 닦아주며 우유를 먹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부모의 깊은 자식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수유를 마치고 떠나는 젊은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우리나라의 큰 일꾼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