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연구팀이 사상 최초로 말기 암 환자를 유전자요법으로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CNN방송 등 미국 언론은 “암 정복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
미 국립암연구소(NCI) 로젠버그(Rosenberg) 박사 연구팀은 31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악성 피부암 흑색종(melanoma) 환자 17명으로부터 유전적 결함이 있는 면역세포를 떼어낸 뒤, 정상으로 교정된 세포를 이식해 2명의 환자를 완치했다고 밝혔다.
'
이번 연구 결과는 흑색종 외에 여러 다른 암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정보는 미국 국립암센터 홈페이지(www.cancer. gov)에 실려 있다.
'
이 환자들은 암 세포와 싸우는 면역세포인 T 킬러세포는 갖고 있지만, 면역세포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T세포 수용체가 없어 종양을 치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연구팀은 환자의 백혈구(T림프구)에 T세포 수용체 생산 유전자를 주입한 뒤 운반수단인 바이러스에 실어 다시 환자에게 투입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는 ‘스마트 폭탄’으로도 불린다.
'
그 결과 53세 남성 환자는 겨드랑이의 종양이 눈 녹듯 사라졌고, 간에 있던 골프공 크기의 종양도 89% 줄었다. 의료진으로부터 “폐 한쪽을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던 41세 남성은, 폐에 전이된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 두 환자는 시술한 뒤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재발없이 완치단계에 이르렀다.
'
로젠버그 박사는 유전자요법의 선두주자로, 면역체계 이상으로 인한 암 연구에 유전자 치료를 접목하는 방법을 추구해왔다. 1985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결장암 수술을 집도한 바 있다.
|
1975년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데이비드 볼티모어 교수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로젠버그팀의 연구는 기존 치료법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말기 암 환자에게 유전자 치료의 길을 연 것”이라며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한 획기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
하지만 이 치료법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치료를 받은 흑색종 환자 17명 가운데 2명만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효과를 본 2명 조차도 현재까진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수년 후 폐렴 등 심각한 부작용을 보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연구팀은 나머지 15명의 환자들에게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교정된 면역세포의 면역기능이 당초 예상보다 약했거나 이식된 T킬러세포가 체내 다른 수용체와 마찰을 일으켰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치료율과 안전성을 높이는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유방암과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확대할 계획이다.
2006.09.02 00:00 12'
천지산으로 ‘항암제시장’ 제패 자신
곧 세계 癌학계에 공식보고할 것”
‘돌팔이’ 판결에서 韓·美·日 3국 특허 받기까지
天地散 발명가 배일주씨의 명예회복 선언
천지산의 새로운 이름 테트라스.
199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적의 암치료제’ 天地散. 중졸 학력이 전부인 배일주(42)씨가 발명한 천지산의 약효를 놓고 1년여에 걸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무면허 의료행위로 기소된 그에게 법원은 가차없이 ‘유죄’를 선고, 천지산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배씨는 천지산에 대한 국제특허로 무장하고 다시금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1. 법정에서 유죄선고 받은 ‘천지산’
지난 1996년 10월1일 서울지법 519호 법정. 재판장은 보건범죄단속에대한특별조치법 위반죄로 기소된 피고 배일주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이례적으로 법정최고액인 1,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검찰의 구형량(징역 1년, 벌금 100만원)을 훨씬 뛰어넘는 의외의 중형(重刑)이었다.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배씨가 개발한 ‘천지산’(天地散)이 대학연구소의 분석 결과 약효가 없는 것으로 입증됐을 뿐만 아니라 배씨가 말기암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영리를 추구하고도 특허를 출원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2. 한·미·일 특허 획득한 천지산 발명가
그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흐른 2001년 8월. 배씨는 자신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 책상에 앉아 미국에서 날아온 편지를 조심스레 개봉했다. ‘지난 5월 미국 특허청에 신청했던 6산화비소에 대한 특허 심사가 통과됐으니 등록비용을 송금하라’며 현지 법률대리인이 보낸 낭보였다.
이로써 배씨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6산화비소 화합물에 대해 일본(1999)과 한국(2000)에서 특허(항암제로서의 용도특허) 등록을 마친 데 이어 미국에서도 특허(물질특허)를 획득하게 됐다.
3. 천지산 소동의 시말
5년전 ‘엉터리 암치료제’로 법의 심판을 받은 천지산과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특허를 받아낸 ‘육산화비소(As4O6).’ 이 둘은 서로 무슨 관계가 있을까?
잠시 지난 1996년의 사건을 되짚어 보자. 배씨의 재판 당시 ‘사실상의 피고’는 암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암치료제’, 때로는 ‘신약’(神藥)으로까지 불리던 ‘천지산’이었다. 재판장이 굳이 대학 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인용하며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천지산 소동’은 그해 벽두에 배씨가 경찰청 특수대(사직동팀)에 전격연행돼 조사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나중에서야 배씨도 이유를 알게 됐지만 국내 모 제약사가 청와대에 진정서를 접수시켰던 것. 내사를 마친 사직동팀은 그를 ‘무허가 암치료제를 팔아 거액을 챙긴 돌팔이’로 결론짓고 검찰에 신병을 넘겼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사건이었다.
막상 검찰이 배씨를 구속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청와대 소속의 한 고급 공무원이 탄원서를 들고 검찰에 찾아왔다. 그는 “아내가 천지산을 복용하고 암이 나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어 전국에서 탄원서가 줄을 이었다. “천지산을 먹고 암이 완치되는 중인데 배선생이 구속되면 환자가 죽는다”는 절박한 호소도 있었다.
반신반의하던 검찰은 S병원의 암 전문의 Y박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임상실험 결과 치료 효과가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Y박사는 그동안 천지산의 약효를 검증해 볼 목적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산하 생명공학연구소 등 국내 유수의 연구소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테스트를 의뢰한 적이 있었다. 검찰은 이 연구원들에게도 사실을 확인했다. “무슨 물질인지 모르지만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 대답이었다. 고민 끝에 검찰은 일단 배씨를 석방하고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불구속기소했다.
이런 저간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온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검찰이 ‘구속까지 했던 돌팔이의 실력을 인정하고 풀어줬다’는 소식에 전국의 암환자와 가족들이 “배씨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며 담당검사 사무실로 전화를 퍼부었다. “어떻게 하면 천지산을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도 빗발쳤다.
‘천지산 소동’이 점점 확대되면서 한편으로는 천지산으로 암을 치료했다는 암환자들의 주장을 담은 특집기사들이 넘쳐 흘렀다. 석방 후 종적을 감춘 채 언론과의 접촉을 기피하던 배일주씨의 신비로운 경력에 대한 추적보도도 잇따랐다. 또 천지산의 항암효과가 다른 항암제보다 10∼1,000배나 높다는 한 연구결과가 특종 보도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일축하는 의학계의 주장이 계속 제기됐다. “청년의사”라는 의학전문신문에서는 배일주씨가 완치시켰다고 주장한 환자 8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대서특필했다. 3명은 사망했고 3명은 병원에서 수술 등 치료를 받았으며 나머지 2명은 병세가 더 악화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천지산에 대한 암환자들의 기대감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천지산의 약효 진위 여부가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오르자 재판부는 공판을 3개월이나 연기한 채 한동대 생의학연구소에 의뢰한 천지산 분석 결과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래서 세간에는 “진짜 피고는 천지산”이라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는 한동대측이 천지산의 효능에 대해 ‘생쥐를 이용한 생체실험에서 항암효과가 없었고 시험관실험에서 약간의 효과를 나타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한마디로 천지산은 아무런 효과도 없는 엉터리 약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천지산 성분분석을 담당했던 한동대 생의학연구소 김종배 소장은 ‘천지산에 대해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다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소견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의 유죄판결이 내려지자 배씨는 항소하지 않았고 사건은 그로써 종결됐다. 온 세상을 뒤흔들던 천지산 논쟁도 수그러들었다.
4. 천지산의 주성분은 육산화비소”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앞서 편지에서 언급된 ‘육산화비소’가 바로 그토록 떠들썩했던 ‘천지산’의 주성분이라는 점이다. 천지산의 주성분이 비소 화합물이라는 사실은 지난 1999년 6월 SBS-TV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 바 있다.
기자는 지난 7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배씨를 만나 취재하면서 ‘당시 왜 항소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배씨 자신이 판결 당시 재판장이 “쓸데없이 특허를 출원해 가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했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고 했기 때문이다. 배씨는 자신이 ‘돌팔이 사기꾼’으로 취급받는 것은 괜찮지만 천지산에 대한 모욕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입을 다물었을까.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천지산은 분명히 암을 치료하는 효과가 대단히 뛰어납니다. 물론 64종류(미국 NIH 분류)의 암 중에서 20여종에 잘 듣지만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천지산보다 뛰어난 약은 없어요. 재판 과정에서 가만히 있었던 것은 당시 사정으로는 천지산의 성분을 공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천지산의 주성분인 비소를 붙들고 씨름하던 당시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비소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에 비소는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있었다. 실제로 일반 비소는 쥐약이나 농약의 성분으로 맹독성 물질이다. 비소는 체내에 축적되어 신부전증을 일으키는데, 채소나 과일을 먹을 때 꼭 잔류농약을 씻어내고 먹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천지산의 제조 원리는 절대 비밀이지만 주성분이 육산화비소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반 비소는 화학식이 As2O3이지만 제가 만든 천지산의 화학식은 As4O6입니다. 미국에서도 비소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돼 현재 FDA의 공인을 받아 전골수성 백혈병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현재 As2O3와 As4O6의 비교실험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고요.”
전 세계적으로 비소가 항암제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 중국 상하이의료원이 미국 혈액학회저널에 ‘비소가 혈액암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최초로 발표한 것이다. 그해 8월에는 역시 암전문학회지인 “블러드”(BLOOD)지에 ‘비소 성분이 전골수성 백혈병(APL)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뒤이어 “사이언스” “캔서 리서치” 등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에 비소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1999년 6월 배씨는 드디어 “천지산의 주성분은 육산화비소”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SBS가 보도한 바로 그 내용이다. 이미 그해 4월 서울대 연구팀이 ‘비소를 이용한 백혈병 치료’ 논문으로 미국 암학회가 주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12월에는 천지산사건 때 배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었던 Y박사가 미국 암연구학회 공식 학술지인 “캔서 리서치”에 ‘천지산의 주요 성분인 비소가 폐암과 대장암 등 고형암 치료에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사건 직후 미국 헨리포드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Y박사는 계속해서 비소의 항암효과를 연구해왔다.
그는 지난해 10월 캐나다 벤프에서 열린 제11차 국제종양생리 및 암치료 세미나에서도 ‘삼산화비소(As2O3)가 뇌암이나 유방암·자궁암 말기환자에게 잘 듣는다’고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편 세계 최고의 암센터로 유명한 슬로언캐터링병원에서 FDA의 승인 하에 실시된 임상실험이 성공을 거둔 후 비소는 전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공인받았다.
배씨가 말한 대로 보통 일반적인 비소의 화학식은 As2O3이다. 천지산의 주성분인 육산화비소는 화학식이 As4O6로 마치 2개의 비소를 중합시킨 것처럼 보인다. 배씨는 이 육산화비소를 항암제로 만드는 제조방법과 그 약학적 조성물인 천지산에 대해 특허권을 갖고 있다.
맹독성인 비소의 독성을 제거하고 암세포를 공격하는 치료제로 만드는 제조방법의 비밀은 무려 50가지에 이르는 원재료의 법제(法製·약재의 효능과 특성이 가장 잘 발현되도록 가공하는 법)와 마지막 처리과정에 있다.
배일주씨는 1996년 당시 천지산으로 완치시킨 암환자 30명의 진료차트를 꼼꼼히 기록해 보관하고 있다. PC에 보관해둔 CT 필름을 보며 증상을 설명하는 배씨.
5. 독학으로 암치료제 개발
그는 1999년 일본에서 육산화비소에 대한 특허를 획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국내에서도 특허를 획득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까지 날아가 법률대리인과 함께 특허청 심사관 앞에서 2시간에 걸쳐 천지산(As4O6)에 대해 직접 브리핑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As4O6의 제조방법과 효능특허(항암제) 2건을 승인하겠다는 내락을 받았는데 마침내 지난 8월1일 최종결정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암약(癌藥) 연구가’ 배일주씨는 올해 마흔두살로, 강원도 정선 태생이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서울로 올라와 고학하며 검정고시를 통해 의대에 진학하려 했으나 낙방했다. 그가 제도권교육을 받은 것은 이것이 전부다.
서울에서 함께 재수하던 친구가 백혈병으로 죽고, 집안에서도 할아버지·할머니 두분 모두 암으로 사망하자 그는 평생을 암 연구에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세 때였다. 이때부터 그는 전국의 명의는 물론 민간비방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시골 농가의 머슴이 되어 일을 해주며 비방을 얻어낸 적도 있었다. 약에 대한 새 소식이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길을 나설 정도로 암약 연구에 미쳐 지낸 세월이었다.
그래서 사건 당시에는 배씨의 학력과 경력이 보잘 것 없었던 데다 천지산의 성분을 밝힐 수도 없었기에 그에 관해 신비화된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아다녔다. ‘신의 계시를 받아 천지산을 발명했다’ ‘떠돌이 고승인 해풍 스님이 천지산 제조법을 전수해 줬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배씨는 그런 신비적인 방법이 아니라 철저한 물질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 천지산을 만들었다고 잘라 말했다.
“한방 본초학에서 다루는 약재가 600가지 정도 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1,500가지 이상의 약초를 시험해봤어요. 우연히 기연(奇緣)을 만나 명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 없이 어떻게 세계적인 발명을 해내겠습니까.”
그는 비공식적이지만 서양의학도 상당한 수준까지 공부했다. 병원에 취직하거나 친분있는 의사들을 통해 새로운 의료지식을 습득하고, 암치료 기기가 새로 들어오면 의사들 틈에 끼어 어깨 너머로 공부했다. 그가 암환자의 CT필름이나 MRI 판독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도 이때의 공부 덕택이다. 그가 그동안 직접 만났거나 정보를 교류하는 암 전문가들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애초에 천지산이 한약으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사실은 완전히 새롭게 합성된 신물질입니다.
쉽게 설명한다면 아스피린의 원재료는 버드나무진입니다. 한방에서도 많이 쓰는 약재거든요.
그런데 이 원료를 합성한 것이 아스피린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지산도 많은 한약재와 약초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한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6. 암세포만 선별 공격하는 천지산
천지산 합성에 사용되는 생약제재는 50가지가 넘는다. 그는 홈페이지(www.chonjisan.com)에 천지산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배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As4O6는 하얀 백색 결정체였다. 이에 비해 천지산(캡슐형)의 형상은 약간 회색빛을 띤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배씨는 “마지막 처리 과정에서 As4O6의 독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별도의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만 밝혔다.
천지산은 정상세포는 손상시키지 않고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한다.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해 주는 혈관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탁월한 데다 기존의 혈관까지 차단해 암세포를 죽이는 원리다.
지금까지 기적의 항암제로 소개된 치료약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시험관 연구, 동물실험, 독성실험 등을 거치며 실제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천지산은 1997년 9월 서울대 수의대에 의뢰해 독성실험까지 마쳤다.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천지산의 독성은 설탕과 같은 수준’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미시간주 트레버시티에서 열린 미국암학회(AACR)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그동안 국내 유명 암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As4O6가 백혈병은 물론 다른 고형암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논문 내용에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특히 세계적인 암 권위자 포크만 박사가 정식으로 천지산에 관한 논문을 학회에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동안의 연구자료를 정리해 논문을 제출해 놓고 심사를 기다리는 상태.
“9월이나 10월쯤 논문이 발표될 것 같습니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학회지에 저희의 연구결과가 발표된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드디어 제가 20여년 동안 노력해온 일이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중졸 학력이 전부인 제가 세계적 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앞으로 국내 의학계에 큰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올가을 발표될 논문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자신이 개발한 천지산(As4O6)의 항암효과를 본격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문 내용의 공개를 요구하자 그는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논문이 정식으로 학회지에 게재되기 전에 언론에 보도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할 경우 논문 게재 자체가 취소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신약 개발을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제약회사 등이 연구결과의 내용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암학회의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취재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번에 발표될 논문의 주제는 천지산이 선택적으로 암세포에 작용하는 기전(메커니즘)과 암의 종류에 따른 유도체 연구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해 보인다. 이는 천지산을 이용해 각기 다른 암에 잘 듣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편 배씨는 자신과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진이 대략 30명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의 신상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1996년 사건 당시 천지산의 효능에 대해 긍정적인 증언을 해주었던 Y박사가 그후 국내 의학계에서 왕따 당해 미국으로 건너가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질문공세에 그가 이니셜로만 밝힌 연구진은 국내 유수의 암 전문병원과 권위있는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쟁쟁한 암 전문가들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대부분이 천지산을 복용하고 암을 치료한 환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국내 의학계의 풍토상 천지산 연구에 참여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이 배씨의 설명이었다.
항암제 같은 신약 개발에는 거액의 연구자금이 필요하다. 배씨가 그동안 천지산 발명과 효능시험, 특허등록 등에 드는 많은 비용을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독지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 천지산으로 가족의 암을 고친 이 독지가는 그동안 천지산 연구에 필요한 돈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7. “천지산, 삼성반도체와도 안 바꾼다”
배씨는 지난해 3월 (주)천지산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천지산에 대한 연구와 함께 상품화를 염두에 둔 장기구상의 일환이다. 회사 설립과 사무실 비용도 역시 독지가가 지원해 주었다. 그는 “차후 회사가 성공을 거둔다면 주식으로 갚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연구비는 매달 3,000만원 정도가 소요됐다. 그는 이를 자체적으로 충당하기 위해 ‘으랏차차’라는 국내 최초의 관절활성 천연차를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으랏차차도 관절염 치료약 못지않게 효과가 뛰어나지만 약품제조허가를 받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식품(음료)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시판에 앞서 한의원 등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음해본 결과 치료 효과는 물론 마시기에 편리하다는 반응이어서 본격적으로 전국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매달 2,000만원 정도의 수익은 천지산 연구에 들어간다.
배씨는 현재 As4O6의 샘플 물량을 확보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 가을 천지산의 뛰어난 효능을 증명하는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되면 연구용 샘플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체의학 중심지인 멕시코의 티화나 등지에 샘플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도 공급하죠. 샘플 1g에 1만달러를 받는데 앞으로 대략 10kg 이상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년 상반기 중에 국내와 미국에서 동시에 임상실험에 착수할 예정인데, 이 임상실험이 성공을 거두고 본격적인 제품화가 시작되면 천지산이 벌어들일 외화는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저는 천지산을 삼성반도체와 바꾸자고 해도 거절하겠습니다.”
시장전문조사기관인 ADL에 따르면 전세계 항암치료제시장은2007년까지 연간 1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시장규모는 연 900억원 정도. 항암치료제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는데 천지산이 상품화돼 일반 암환자들 앞에 선보이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배씨는 이것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신약 개발에 나섭니다.
가능성이 있는 것은 집중적으로 연구해 특허로 등록해 놓고 상품으로 내놓는 것까지 일사분란하게 처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천지산의 경우 저 혼자 겨우겨우 여기까지 왔습니다. 최근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은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이 하루 속히 복용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싸우고 있는 암환자의 입장에서 천지산도 하루빨리 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국가차원에서 지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오산업 육성이라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앞선 천지산부터 제대로 상품화해 승부수를 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 월간중앙 9월호 기사
[독점 취재] -신동아 |
세계 최초 무독성 砒素 항암제 ‘천지산’ 이 부활한다! |
23개국 특허, 식약청 승인 임상시험에서 종양감소 확인 |
● 서울아산병원 임상 1상시험 통과 임박 ● 국가공인 연구소에서 안전성·효능 입증 ●‘천지산’ 공동연구 의학자 6명 최초 공개 증언 ● ‘천지산 사건’ 수사비화 “복용환자 중 암 전문의도 있었다” ● 상품가치 2000억, 2상시험 중 코스닥 상장 계획 ● 2상시험 비용 마련 못해 세계 최고기술 死藏 위기 ● 이영순 전 식약청장, “천지산 개발, 국가가 지원해야” |
‘천지산(天地散)’을 기억하는가. 1996년 ‘가짜 항암제’ 소동을 일으키며 법정에 섰던 약. ‘하늘과 땅에 흩어진다’는 뜻을 지닌 이 약은 일부 암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암치료제’로 불렸으나 법원에서 가짜 판정을 받은 후 세상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울러 이 약을 제조한 배일주(46)씨는 사기꾼으로 몰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후 9년. 천지산이 돌아왔다. 몇 년 전부터 이따금씩 언론을 통해 재기의 움직임을 내비치던 천지산은 이제 완연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며 대중의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 일본에서 맨 먼저 특허 인정
천지산의 부활을 보증하는 것은 특허출원과 임상시험이다. 특허출원은 1998년부터 시작했는데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최근 유럽 14개국에서 특허가 나옴으로써 천지산 특허가 등록된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모두 23개국으로 늘었다. '
2003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승인을 받은 임상시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임상시험 허가가 났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1999년부터 3년간 원자력의학연구원, 바이오톡스텍 등에서 전(前)임상시험(동물시험, 시험관 시험, 독성시험)을 거친 천지산은 2005년 5월 중순 현재 임상 1상시험을 ‘거의’ 마치고 2상시험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거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험은 끝났지만 일부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이 미처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
1상시험을 주도한 서울아산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시험결과는 배일주씨를 비롯한 천지산 연구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상시험 보고서는 상반기 중 식약청에 제출될 예정인데, 지금까지의 진행경과에 비춰보면 돌발변수가 없는 한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따라서 천지산은 늦어도 올 하반기 초엔 2상시험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
1상시험은 약물의 체내 반응과 적정용량을 찾는 시험이다. 약의 효능, 즉 항암효과를 검증하는 것은 2상시험이다. 그런데 천지산의 항암 기능은 1상시험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입증된 것으로 알려져 2상시험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다. '
일반 의약품은 장기적인 부작용을 점검하는 3상시험을 거친 후에야 시판할 수 있다. 하지만 천지산처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암치료제는 2상시험을 통과하면 곧바로 판매가 허용된다. 천지산 연구진은 2상시험 기간을 1년으로 잡고 있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 천지산은 공인된 약품으로 일반에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
비소의 독성을 거꾸로 이용
‘신동아’는 천지산의 1상시험 완료에 맞춰 그간의 진행과정 전반에 대해 취재하면서 제조자인 배일주씨와 연구에 동참해온 의대교수들, 투자회사 대표, 식약청 관계자 등을 인터뷰했다. 배씨가 작심하고 인터뷰에 응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더욱 뜻 깊은 것은 그동안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던 의학자들의 등장이다. 이들의 연구는 민간요법 차원에 머물던 천지산을 현대의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
임상시험을 통과해 시판이 되면 천지산은 최초의 국산 항암제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선플라주’(SK케미칼) 등 기존 약물의 분자구조를 변형한 ‘응용 항암제’가 개발된 적은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자구조를 가진 국산 항암제로는 천지산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배일주씨는 “비소가 탁월한 항암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이미 FDA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인정됐기 때문에 비소화합물인 천지산이 실패할 확률은 0%”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
주사제가 아닌 경구제라는 점도 천지산의 상품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간 개발된 항암제는 대부분 주사제다. 주사제는 해당 부위에 직접 자극을 주는 효과는 있지만 입원을 해야 하는 등 사용이 불편한 점이 흠이다. 이에 비해 경구제는 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 천지산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세계 최초의 비소화합물(As4O6·육산화비소) 항암제라는 점이다. 비소(As)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독성을 갖고 있어 일반 의약품으로 쓰이는 것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천지산의 주성분인 육산화비소는 각종 실험을 통해 독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
비소의 암치료제 가능성은 1996년 중국 하얼빈 의대 연구팀이 삼산화비소(As2O3)가 백혈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 각종 논문을 통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삼산화비소로 만든 ‘트리세녹스’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아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APL)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 초에 이미 비소화합물 합성에 성공한 배씨는 이 방면에서 선구자라 할 만하다.
천지산이 비소화합물이라는 점은 약품명인 ‘테트라스(TetraAs)’에서도 드러난다.
‘테트라(Tetra)’는 4개의 원자를 뜻하고, As는 비소다. 즉 비소가 4개라는 뜻이다.
테트라스에 대한 임상 1상시험 책임연구원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강윤구 교수다. 강 교수는 2004년 2월부터 서울아산병원과 원자력병원 환자들 중 여러 차례 암수술을 받거나 각종 암치료제를 쓰고도 호전되지 않은 중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약을 복용케 한 후 일정 기간 체내반응을 관찰해야 하므로 3개월 미만의 시한부 환자는 제외했다. 암 부위별로 보면 자궁경부암, 두경부암, 방광암 환자가 많았고 위암, 폐암 환자도 일부 포함됐다.
'
적정용량 시험 끝나
'
1상시험의 주 목적은 2상시험에서 사용할 적정용량을 구하는 것이다.
적정용량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용량에서 부작용, 즉 독성반응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것을 용량제한독성(Dose Limiting Toxicity)이라 한다.
'
적정용량 시험은 통상 4단계까지 진행한다. 먼저 환자 3명에게 똑같은 양의 약을 쓴 다음 인체 내 부작용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것이 1단계 시험이다. 3명 모두에게서 용량제한독성이 발견되지 않으면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에서는 다시 3명을 대상으로 용량을 늘려 독성반응을 확인한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양을 늘려 4단계까지 진행해 별 문제가 없으면 그것을 적정용량으로 삼는다.
'
그런데 1단계에서 3명 중 1명이라도 이상반응을 보이면 2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같은 용량으로 또 다른 환자 3명에게 약을 사용해 본다. 여기서 또 1명이 거부 반응을 나타내면, 즉 6명 중 2명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면 위험하다고 보고, 그보다 한 단계 적은 양을 적정용량으로 삼는다. 만약 1단계에서 3명 중 2명에게서 용량제한독성이 나타나면 약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바로 실험을 멈춘다.
'
1단계 용량은 동물 독성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한다. 강 교수는 “1단계 용량을 결정해놓고 보니 공교롭게도 과거 배일주씨가 환자들에게 사용했던 양과 같았다”고 말했다. 배씨가 주먹구구식으로 약을 처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
테트라스의 경우 2단계 용량을 적정용량으로 삼아 2상시험에 들어가기로 결정됐다.
3단계 시험에서 일부 환자에게 이상반응이 나타난 까닭이다.
최적 용량을 찾는 것이 주요 목적이므로 1상시험을 통해 약의 효과까지 검증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종양표지자(암세포가 있는 것을 나타내주는 물질) 농도 측정을 통해 효능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 농도가 묽어지면 암세포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1상시험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에게서 종양표지자 농도 수치가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
1상시험의 또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은 약물의 체내반응, 곧 약을 쓴 후 흡수·분포·대사·배설 4가지 작용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를 약물역동학 검사라 하는데, 시간별로 피를 뽑거나 소변을 수거해 약의 주성분(테트라스의 경우 비소) 농도를 검사함으로써 약물에 대한 인체의 반응정도를 확인한다. 즉 약 성분이 얼마나 빨리 인체에 흡수돼 분포되는지, 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피 속에 약 성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
테트라스의 약물역동학 검사결과에 대한 분석작업은 서울아산병원의 의뢰를 받은 한국과학기술원이 진행하고 있다. 천지산 1상시험 보고서를 식약청에 제출하는 일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도 바로 약물역동학 검사결과를 분석해 통계 처리하는 작업이 늦어진 탓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은 혈액 샘플 등 약 2500개의 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
강 교수는 테트라스의 항암효과에 대해 “정확한 것은 2상시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비소가 항암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테트라스가 항암효과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면서 “다만 이를 (2상)시험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입증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2상시험은 특정 암세포를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제로 약효가 얼마나 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배일주씨는 “항암효과를 측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면서 “부작용이 없는 것도 효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항암제의 경우 효과가 적더라도 부작용만 없으면 다 허가해주는 추세다. FDA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이레사만 해도 치료효과가 3%밖에 없다. 그런데도 허가가 난 것은 부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간 실험을 통해 부작용이 거의 없고 상당한 치료효과를 나타낸 우리 약은 허가 받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
2상시험 통과하면 곧바로 시판
항암제의 성격에 대한 배씨의 주장은 식약청 관계자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약청 의약품안전국 관계자는 “완치가 아니라 암의 진행속도를 늦추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효과만 내더라도 항암치료제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
2상시험은 통상 6개월~1년이 걸린다. 하지만 탁월한 효과가 인정될 경우 2~3개월 안에 시험이 끝날 수도 있다. 2상시험을 마치면 다양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장기적 부작용을 검증하는 3상시험으로 들어간다. '
그런데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항암제, 에이즈 치료제 등 희귀병 의약품은 2상시험만 통과하면 바로 시판허가를 내준다. 당장 며칠 또는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환자에게 몇 년 후 머리가 빠지는 등의 부작용은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암환자처럼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나중에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나든 우선 약을 쓰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효과가 있다고 인정되는 약에 한해서다. '
이를 의약품의 ‘동정적 사용’이라 한다. 비록 안전성과 유효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임상시험단계 신약이지만, 기존 치료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마지막 치료기회를 준다는 뜻에서 주치의의 책임아래 환자의 동의를 거쳐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
우리나라 식약청도 항암제를 비롯한 몇 가지 희귀병 의약품의 경우 2상시험 결과가 좋으면 곧바로 시판을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동정적 사용’이 허용된 항암제로는 ‘글리벡’(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스위스), ‘이레사’(폐암 치료제·영국) 등을 꼽을 수 있다. ‘동정적 사용’이 인정된 의약품에 대한 3상시험은 시판 중에 이뤄진다. '
식약청 관계자에 따르면 임상 1상시험에서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상시험이 끝났더라도 그 결과가 식약청이 제시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2상시험 허가가 나지 않는다. 또 2상을 통과하더라도 3상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그만큼 신약개발이 어렵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테트라스에 대해 “임상시험 중이기 때문에 효능을 논하기엔 이르다”고 잘라 말했다. '
암세포의 혈관신생 억제
1상시험을 주도한 강윤구 교수나 전임상시험 단계에서 이 약을 연구해온 몇몇 의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테트라스의 2상시험 진입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2상시험에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드는 만큼 자금조달력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
강윤구 교수는 “최근 FDA에서 시판 허가가 난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의 경우 다른 항암제와 같이 쓰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추측이긴 하지만 테트라스도 다른 특성을 가진 기존의 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배일주씨에 따르면 테트라스는 혈관신생 억제(Angiogenesis Inhibitor), 암세포 사멸(Apoptosis), 방사선 치료효과 증대(Radiosensitization)라는 세 가지 항암효과를 갖고 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밝혀낸 사람이 한국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교수 이창훈 교수다. 배씨는 “이창훈 박사를 만나면서 천지산 효능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식약청에서 임상시험 허가를 받는 데도 이 박사의 공이 컸다”고 이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이 교수가 천지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6월 방영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씨는 천지산의 원료가 비소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방송을 보고 흥미를 느낀 이 교수가 수소문 끝에 배씨의 연락처를 알아냄으로써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배씨와 만난 후 천지산에 빠져든 이 교수는 연구에 동참, 이와 관련된 논문을 세 편이나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그의 논문은 민간요법 또는 한방 차원에서 거론되던 천지산의 물질구조와 효능을 현대의학 관점에서 설명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 교수는 또 암 관련 국제학술회의(미국 1회, 중국 2회)에 참석해 천지산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2002년 미국 암학회(AACR) 학술회의에는 배씨가 동행했다. |
이 교수는 논문 발표에 대해 “(비과학의 영역에 머물던) 천지산이 연구자를 통해 학문적 비판의 무대에 오른 것일 뿐”이라며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천지산의 효능 중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혈관신생 억제작용이다. 암세포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계속 자라면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차단해 더는 암세포가 확산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혈관신생 억제다.
'
이 교수는 천지산이 임상시험에 들어간 것에 대해 “동물시험에서 성공했으니 사람에 대한 시험을 해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라며 “임상시험 결과가 나와 봐야 (효능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
이창훈 교수와 더불어 천지산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동대 생의학연구소장인 김종배 교수다. 김 교수는 특허출원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김 교수가 천지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고등학교 동기인 Y교수(당시 강북삼성병원 암 전문의)의 제의를 받고서다. Y교수는 의사들 중에 가장 먼저 천지산의 의학적 효능을 인정하고 연구에 동참한 사람이다.
'
‘천지산 사건’이 나기 얼마 전인 1995년 어느 날 Y교수가 김 교수에게 연락을 해왔다. “(천지산 효능이) 임상적으로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실험적으로 이를 입증할 수 없겠느냐”는 일종의 공동연구 제의였다. Y교수의 설명을 듣고 귀가 솔깃해진 김 교수는 샘플을 얻어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
“당시 Y교수는 천지산을 복용한 암환자들의 상태를 조사한 자료를 갖고 있었는데, 자료에 따르면 상당한 항암효과가 있었다. 내 연구는 이미 사람한테 (천지산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자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다.”
'
이처럼 천지산은 정상적인 신약개발과정과는 반대로, 비공식이긴 하지만 먼저 임상시험을 거친 다음 시험관 시험과 독성시험 등 전임상시험에 들어간 셈이다. 시험관 시험은 동물과 사람의 암세포를 시험관에 넣고 다양한 농도로 약물, 곧 천지산을 집어넣어 암세포가 얼마나 죽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암세포 100개 중 50개를 죽이는 약물 농도를 ED(Effective Dose)50, 이른바 세포독성이라 한다.
ED50을 나타내는 수치가 낮을수록 항암성이 좋다.
'
한약재는 항암효과와 상관없어
시험결과 천지산의 ED50 수치는 기존에 개발된 항암제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시험관 시험결과만으로도 흥분할 만했다. 그런데 이미 사람한테 써서 효과를 봤다고 하니 계속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
그 다음 단계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독성시험이었다. 김 교수는 국내 독성시험의 권위자인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에게 독성시험을 의뢰했다. 통보받은 시험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독성시험은 치사량이 얼마인지 알아내는 것인데 천지산의 경우 치사량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마디로 독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
“동물에 대해서는 직접 독성시험을 할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해선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의 오줌이나 머리카락에 남아 있는 비소를 갖고 측정하는 간접적 시험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시 배씨는 이미 그런 작업을 해놓은 상태였다. 천지산에 함유된 비소는 일반 비소에 비해 독성이 매우 약하다. 배씨는 환자들에게 처방하기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이러한 시험과 별개로 김 교수는 포항공대 연구팀에 천지산의 물질구조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런 구조는 처음 봤다. 신물질이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김 교수에 따르면 신물질은 아니었다.
'
“당시 포항공대 연구팀은 As4O6라는 물질이 천지산을 통해 처음 발견된 줄 알았다. 나도 그렇게 알았는데, 뒷날 우연히 이미 1960년대에 As4O6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만 당시 발견자는 항암성이 있다는 건 몰랐다. 따라서 배씨가 제조한 As4O6는 엄밀하게 말해 물질특허가 아니라 용도특허에 해당한다. 항암작용이 있다는 건 배씨가 처음 발견했기 때문이다.”
'
김 교수가 한창 천지산 연구에 몰입할 때 배씨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구속되는 사건이 터졌다. 법원에서 천지산에 대해 가짜 판정을 내린 후에도 김 교수는 배씨 곁을 떠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다. 배씨가 1998년 한국을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특허를 출원하게 된 것도 김 교수 덕분이다.
'
배씨는 김 교수의 도움을 받아 특허출원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준비해 이를 이덕록 변리사(예일특허법률사무소 대표)에게 넘겼다. 이 변리사에 따르면 천지산에 대해 인정된 특허는 물질, 용도, 제법(製法), 조성물 특허 네 종류다. 물질특허는 비소화합물(As4O6)에 대한 특허로 일부 나라에서만 인정됐다. 용도특허는 항암 기능, 제법특허는 제조방법에 관한 것이고, 조성물특허는 비소화합물에 첨가되는 한약재 성분과 관련된 것이다.
배씨에 따르면 한약재 성분은 항암효과와는 관계가 없다. 배씨는 “초기에 (천지산을) 환으로 만드느라 한약재 성분을 약간 섞었지만, 지금 임상시험 중인 천지산은 비소화합물만으로 제조한 것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천지산을 한약재라고 말한다”며 “항암효과를 내는 것은 비소지, 한약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
김종배 교수와 비슷한 시기에 천지산 연구에 발을 내딛은 또 한 명의 의사는 부산 인제의대 대학원장을 역임한 은충기 교수(방사선과)다. 인제의대는 지방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가 지정 임상시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은교수와 천지산의 인연은 부산에 사는 어떤 암환자가 CT 사진을 들고 은 교수를 찾아온 데서 비롯됐다.
'
“처음엔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인 줄 몰랐다. 신장암 환자였는데, CT 사진을 보니 원래 주먹만한 크기였던 암세포가 손톱 크기로 줄어 있었다. 무슨 약을 썼냐니까 천지산이라는 걸 몇 개월째 먹었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부작용도 없고 힘이 나고 밥맛도 좋아졌다고 했다. 참 신기하다고 여겨 그때부터 천지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
은 교수는 그후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를 몇 명 더 진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개중엔 좋아졌다 나빠진 경우도 있었다. 나중엔 직접 CT를 찍어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암 뿌리가 뽑히지는 않았지만 천지산 복용 여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났다. 상태가 좋아져 약을 끊은 환자가 몇 개월 후 찍은 CT를 보니 암세포가 다시 커져 있었다.
'
은 교수는 “천지산을 복용하면 어떤 형태로든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나서 한번 과학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연구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
독성시험에서 기존 항암제와 큰 차이
바이오톡스텍은 식약청 인가를 받은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 전문업체다. 의약품에 대해 임상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독성시험 자료가 필요하다. 천지산의 독성을 시험한 곳이 바로 바이오톡스텍이다. 말하자면 김종배 교수가 서울대 수의학과 이영순 교수를 통해 실시한 독성시험은 비공식적인 것이고 바이오톡스텍 시험은 공식적인 것이다.
'
충북대 수의대학장이기도 한 바이오톡스텍 대표 강종구 교수는 “단회 독성시험, 3개월 투여 독성시험, 4주 회복시험 등 각종 독성시험 결과 독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천지산의 안정성을 높게 평가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어떤 항암제도 부작용이 있게 마련인데, 그 점에서 천지산은 기존 항암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국내에서 사용되는 항암제는 대부분 외국제이거나 외국제의 분자구조를 변형해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천지산은 한국인이 고유의 기술로 만든 독창성이 뛰어난 약”이라며 “임상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뛰어난 약은 빨리 상품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동대 김종배 교수의 의뢰를 받아 천지산 독성시험을 했던 서울대 수의학과 이영순 교수는 2002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식약청장을 지냈다. 식약청장에서 물러난 지 한 달쯤 후 대학 연구실로 수염이 더부룩한 40대 사내가 찾아왔다. 이 교수는 처음에 사기꾼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배일주씨였다.
'
배씨는 천지산에 대해 한참 설명한 후 식약청 임상시험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교수가 “뭘 보고 당신을 믿겠느냐. 학문적 증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자 “원자력병원 이창훈 박사의 연구논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독성시험은 예전에 교수님(이영순 교수)께서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
배씨의 얘기를 듣고 이 교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년 전 한동대 김종배 교수의 요청으로 독성시험을 한 일이 있었다. 김 교수가 따로 설명하지 않은 탓에 이 교수는 그것이 천지산인 줄도 모르고 독성시험을 했던 것이다. 그는 배씨에게 이창훈 교수의 논문을 보자고 했다. 다음날 배씨가 논문을 갖고 왔다.
“서울대 의대 출신이고 원자력병원에서 연구하는 의사의 논문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논문 내용은 천지산의 약리작용과 약효, 독성 등을 의학적으로 분석해놓은 것이었다. 이 교수에게 전화해 천지산의 효능에 대해 물어보니 ‘아주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몰미가 터졌다’
'
이영순 교수는 이창훈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서 천지산을 약으로 개발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미국에서도 비소가 주성분인 약에 대해 시판허가가 난 상태였다. 이 교수는 평소 ‘암 치료제는 일반 약과 달리 독성이 있어도 효과만 있다면 시판을 허가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터라 곧바로 식약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천지산의 임상시험 신청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했다.
'
그래도 일이 잘 진척되지 않자 이창훈 교수와 강윤구 교수를 동반해 식약청을 방문해 청장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식약청은 그해 8월 천지산의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이영순 교수는 “지금까지 드러난 연구성과에 비춰 천지산이 2상시험에 들어가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
이처럼 많은 의학자가 효능을 인정하는 천지산을 배일주씨는 어떻게 개발했을까. 강원도 삼척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난 배씨는 한약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어릴 적부터 약과 의술에 눈을 떴다. 할아버지는 돌이 막 지난 손자를 산으로 데리고 가 움막에서 함께 지내며 약초에 대해 가르쳤다.
'
배씨는 할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침을 놓을 줄 알았으며 웬만한 약초는 척 보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알아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배씨의 표현대로라면 어느 순간 ‘몰미가 터진’ 것이다. ‘몰미가 터졌다’는 말은 강원도 사투리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나의 원리에 통하면 나머지 모든 원리에 통한다는 것이다. 배씨는 또 한문 공부도 열심히 해 ‘동의보감’이나 ‘향약집성방’ 같은 의서에 통달했다.
'
배씨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각각 위암과 장암으로 돌아가신 후 현대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염증치료제로 사용하는 황하비소(As4S4)의 독성을 분석하면서 제대로 된 비소화합물 치료제를 만들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배씨가 천지산의 주성분인 비소 합성에 성공한 것은 1983년이다. 그후 분자구조에 관심을 갖고 어떤 상태에서 최상의 약효를 내는지 알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As4O6가 가장 많은 종류의 암에 듣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
배씨는 아무 환자에게나 다 약을 내주진 않았다. 수술을 받고 암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 중 ‘죽 한 공기 먹을 힘이 남아 있는’ 환자에게만 약을 지어줬다.
'
환자가 많이 몰리자 배씨는 1994년 한의사를 고용해 아예 한의원을 차렸다. 당시 천지산 약값은 한 달치에 200만원이었다. 배씨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과 10세 이하 아이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또 일정 기간 약을 먹은 후 효과를 본 환자에게는 약값을 절반으로 깎아줬다고 한다.
'
청와대 경호실 간부의 선처 호소
'
그 시절 배씨는 별의별 사건을 다 겪었다. 한번은 말기암 환자에게 처방을 해줬는데 몇 개월 후 그 환자가 죽었다. 가족들은 배씨를 그다지 원망하지 않았는데, 환자의 친척이라는 모 기자가 “사기꾼”이라며 난리를 쳤다. 배씨는 영안실로 불려가 상복을 입고 턱을 얻어맞는 수모를 겪었다.
'
암 환자를 낫게 해줬다는 ‘죄 아닌 죄’로 시달린 적도 있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던 암 환자의 아내가 “(남편이) 빨리 죽어야 하는데 낫게 하면 어떻게 하냐”며 배씨의 뺨을 올려 붙인 것. 이후 배씨는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이 일치한 경우에만 처방을 했다.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돈을 싸 짊어지고 찾아와도’ “못 준다”고 버텼다.
'
배씨는 처방을 하는 틈틈이 공부를 계속했다. 그의 공부 목표는 동양의학을 서양의학에 접목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을 알아야 했다. 독학으로 CT와 차트 보는 법을 배웠다.
'
1996년 1월 배씨는 한의원으로 출근하던 길에 경찰청 특수수사과 직원들에게 연행당했다. 3일간 집에 전화도 못하고 구타도 많이 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 제약회사가 청와대에 투서한 진정서에서 비롯된 수사였다.
'
“병원에서 못 고친 환자를 고쳐주는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겁대가리’가 없었던 것이다.”
'
배씨가 구속되자 그간 천지산을 복용하던 암 환자들의 가족 20여 명이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대부분 천지산으로 효험을 봤거나 약이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경찰청에서 서울지검으로 이첩된 이 사건은 권성동 검사(현 인천지검 특수부장)에게 배당됐다.
'
난소암 환자이던 부인이 천지산을 먹고 치유됐다는 청와대 경호실의 한 간부는 권 검사를 직접 찾아와 배씨를 선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따르면 그의 부인은 서울대병원에서도 포기한 3개월 시한부 환자였는데, 천지산을 석 달 복용한 후 깨끗이 나았다는 것. 병원에서 CT촬영을 한 결과 암세포 덩어리가 녹아 직장으로 빠져나간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판·검사도 의대교수도 생존 앞에선…”
'
검찰은 그동안 천지산을 복용한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해 그중 연락이 닿는 10명에게 전화를 걸어 약효를 확인했다. 효과를 봤다는 사람이 4명이었다. 천지산을 복용한 환자 중에는 모 대학병원의 암 전문의도 있었다.
'
배씨는 검찰조사에서 “천지산의 약효를 보증할 사람이 있다”며 강북삼성병원 암전문의 Y교수를 내세웠다. Y교수는 천지산 복용 후 병세가 호전된 환자들의 슬라이드 필름을 갖고 검찰에 출두했다. 그러잖아도 암환자들의 천지산 체험담과 선처 호소에 고민하던 권 검사는 Y교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배씨를 불구속기소하기로 결심하고 석방했다. 그가 비록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긴 했지만 사기를 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
배씨가 석방되자 청년의사회 등에서 “돌팔이를 풀어줬다”며 검찰에 진정을 넣는 등 일부에서 비난여론이 일었다. 권 검사의 사무실은 전국 각지의 암환자 가족들로부터 빗발치듯 걸려오는 문의전화로 며칠간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중에는 K대, S대 등 유명대학의 의대교수들도 있었고 판·검사와 장관도 있었다. 하나같이 배씨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권 검사는 “인간적으로 동정은 갔지만 검사 입장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사람을 소개해줄 수는 없었다”며 “생존 앞에서는 신분이고 체면이고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
1996년 10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배씨는 분노와 절망감에 항소를 포기했다. 천지산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의학계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은 Y교수는 강북삼성병원에서 사직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비소의 항암효과를 연구해 국제학술회의에서 논문까지 발표했다.
'
사건 이후 배씨는 더는 처방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찾아와 약을 부탁했다.
“생명이 먼저냐, 법이 먼저냐. 정말 고민 많이 했다. 환자 가족들이 찾아와 울부짖으며 호소할 때는 몹시 괴로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약을 버렸더니 그걸 주워가더라.”
'
그는 “지금도 몰래몰래 찾아와 약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씨는 2000년 3월 자본금 21억원으로 주식회사 천지산을 설립했다. 이로써 ‘천지산’은 회사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상 2상시험이 끝나기 전 코스닥 시장에 천지산을 상장할 계획인데, 그 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잡고 있다.
'
투자전문회사인 넥서스 민봉식 대표는 자신이 잘 아는 말기암 환자 2명이 예전에 천지산을 복용한 후 치유된 것이 계기가 되어 천지산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
둘 다 시한부 환자로 한 사람은 후두암, 다른 한 사람은 위암 환자였다. 민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 4년 반, 2년 동안 천지산을 복용했는데 치료효과가 좋아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다.
'
“1상 끝나면 천지산 가치 10배 뛸 것”
'
민 대표는 천지산의 투자가치에 대해 무엇보다 암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꼽았다. 전세계적으로 BT(생명공학)산업이 IT(정보기술)산업을 앞지르는 추세인데 천지산 같은 항암제는 어떤 바이오상품보다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
“모든 산업의 근간은 인간의 몸이다. 그런 점에서 BT 쪽은 한번 선점하면 IT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우월성을 유지한다. 우리나라가 사는 길도 BT에 있다. IT는 향후 2~3년 내에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다. 하지만 BT의 경우 천지산과 같은 세계적인 신약을 개발하면 중국과의 격차를 8년 이상 벌릴 수 있다.”
민 대표가 평가하는 천지산의 기업가치는 200억원대. 하지만 임상 1상시험이 끝나면 10배가 뛰고 2상시험을 통과하면 다시 10배가 상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미국의 바이오시장 투자 동향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한다.
'
민 대표는 “바이오산업 투자는 그야말로 미래를 보고 해야 한다”며 “지금 천지산에 투자하는 것은 모험이고 위험이 따르긴 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는 투자수익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천지산에 대한 투자를 권했다.
'
그가 천지산의 상품성을 특히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비공식’ 임상시험에서 이미 효능을 인정받았다는 점” 때문이다. 비록 불법행위로 처벌받긴 했지만 많은 암환자가 천지산을 복용해 효과를 본 만큼 임상시험을 거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또 암치료제로는 드물게 복용하기 편한 경구제이면서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점도 천지산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
민 대표에 따르면 임상 2상시험 진입을 눈앞에 둔 천지산은 현재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상 1상시험 비용으로 50억원이 들었는데, 2상시험에는 수백억원대, 시판 후 부작용을 검증하는 3상시험까지 마치는 데는 약 1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야…”
' 전 식약청장 서울대 이영순 교수는 “정부가 천지산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s2O3를 이용한 ‘트리세녹스’가 미국에서 백혈병 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는데, 천지산 성분인 As4O6는 그보다 훨씬 더 우수한 비소화합물이다. 국가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좋은 신약을 개발하고도 기술을 외국에 넘겨주게 된다. 임상 2상시험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한동대 김종배 교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펴면서 천지산 개발의 의미를 강조했다. ' “배일주씨의 천지산 제조는 제약산업에서 금기로 여기는 비소를 역으로 이용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임상시험 허가가 났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항암제는 대부분 주사제다. 천지산이 대단한 약품이라는 것은 경구제로 항암효과를 내면서 독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약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정부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 “천지산 개발엔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하는 배일주씨는 현재 임상 2상시험에 들어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제약회사들이 국내에서는 신약개발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를 안 한다”며 천지산에 대한 투자를 호소했다. ' 신약개발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의지는 천지산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그는 “천지산말고도 연구해놓은 약이 많다”며 “천지산 임상시험이 완전히 끝나는 대로 새로운 신약개발에 들어가겠다”고 의욕을 과시했다. 그가 제2의 천지산으로 준비하고 있는 약품은 항생제, 관절염약, 녹내장 치료제 등이다. '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질 때, 선해 보이는 눈빛과 더부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그가 특유의 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 “좀 도와주십시오.” (끝) |
[후속 취재]
임상 2상 진입하는 항암제 천지산
부작용 거의 없는 항암효과 입증, 백혈병 치료제로도 개발
● 시험대상 환자 15명 중 10명, 투약기간 중 암세포 진행 늦춰져
● 종양표지자 감소, 괴사(壞死) 발생으로 간접적 항암효과
● 2상시험 1차 대상은 말기 자궁경부암 환자
● 상반기 중 제약회사 인수, 다국적 제약회사와 합작계약 진행 중
● 백혈병 권위자 의정부성모병원 김동욱 교수, 천지산 연구팀 합류
● 개발자 배일주, “황우석 사태 교훈 새겨 연구에만 전념하겠다”
세계 최초 무독성 비소(砒素) 항암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천지산’(약품명·테트라스)의 임상 2상시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주)천지산은 천지산 임상 1상시험 결과가 첨부된 2상시험 계획서를 식약청에 제출했다. 식약청은 관련 규정에 따라 한 달 안에 2상시험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
1상시험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이 임상시험 성적서를 내놓은 것은 지난해 11월. 1상시험의 목적은 2상시험에서 사용할 적정 용량을 결정하고 체내반응(흡수·분포·대사·배설)을 살피는 것. 실제로 약효, 즉 항암효과가 있는지는 2상에서 판가름난다.
'
그런데 천지산의 경우 1상에서 암세포가 더 전이되거나 커지지 않고 종양표지자(암세포가 있음을 나타내는 물질로, 암세포가 만든 단백질을 뜻한다)가 감소하는 등 항암효과가 입증돼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
1상시험 책임자인 서울아산병원 종양혈액내과 강윤구 교수는 “1상은 적정 용량을 결정하는 것이고, 2상 승인이 곧 시판허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2상시험)계획서에 담긴 실험방법에 문제가 없는 한 천지산의 2상 진입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말대로 식약청은 관례적으로 1상시험 결과에서 실험방법 오류 등 특별한 하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2상시험을 승인해왔다.
'
따라서 규정대로라면 천지산은 늦어도 1월말엔 2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식약청이 자료 보완을 지시하거나 추가 자료를 요구할 경우, 또는 행정처리 지연 등의 변수에 따라 시일이 더 걸릴 가능성도 있다.
'
개발 중인 신약은 임상 3상시험까지 마쳐야 시판이 가능하다.
3상은 약의 장기적 부작용을 살피는 한편 2상에서 인정된 약효가 실제로 환자의 생명연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
다만 예외가 있다. 암이나 AIDS 등 희귀병 치료제에 대해선 2상에서 효능이 인정될 경우 ‘동정적 사용’이라고 해서 3상에 들어가기 전 조건부 시판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특례조치로, 비록 안전성과 유효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지만, 기존 치료법으로 더는 희망이 없는 환자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천지산은 2상에서 항암효과가 인정될 경우 ‘동정적 사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천지산 시판 시기는 훨씬 앞당겨진다.
'
식약청에 1상시험 성적서 제출
'
널리 알려졌다시피, 일부 암 환자들 사이에서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던 천지산은 한때 가짜 소동에 휘말리며 사장(死藏)될 뻔했다. 하지만 천지산의 비공식 임상효과에 주목한 일부 의대 교수들의 과학적 연구가 뒷받침되면서 극적으로 회생, 2003년 8월 식약청으로부터 임상시험을 승인받기에 이르렀다. (천지산의 의학적 연구과정과 성과에 대해서는 ‘신동아’ 2005년 6월호 참조).
'
서울아산병원이 임상 1상시험을 시작한 것은 2004년 2월. 적정 용량을 구하는 시험은 그해 7월 일찌감치 종료됐다. 1상시험 성적서 제출이 늦어진 것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약물역동학 검사결과를 분석해 통계처리하는 데 예정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 탓이다. 아울러 시험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물역동학 검사란, 일정 시간마다 환자의 피를 뽑거나 소변을 수거해 주성분(천지산의 경우 육산화비소·As4O6) 농도를 비교, 검사함으로써 약물에 대한 인체의 반응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
강 교수에 따르면 천지산 1상시험의 성과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존 항암제와 달리 독성에 따른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
둘째, 종양표지자 감소.
셋째는 병합 사용, 즉 다른 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경우 항암효과가 더욱 높을 것이라는 ‘추정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
천지산 1상시험 성적서에 따르면, 임상시험에 쓰인 의약품명은 테트라스 캡슐. 대상 질환은 ‘기존의 1차적 항암화학요법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표준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 고형암(固形癌)’이다. 고형암은 피에서 비롯된 혈액암(백혈병, 골수종 등)과 대조되는 것으로, 위나 폐 등 형체가 고정된 장기나 두경부(귀, 코, 목), 피부에서 발생하는 암이다. ' 임상시험 책임자는 서울아산병원 강윤구 교수이고, 임상시험 담당자는 서울아산병원 종양혈액내과 장흥문 조교수 외 5명이다. 임상시험 목적은 다음과 같다.
'
‘시험약물 투여시 용량제한독성(DLT=Dose Limiting Toxicity·특정 용량에서 나타나는 독성반응) 발현 여부 관찰을 통한 최대 내약용량(MTD=Maximum Tolerated Doses)을 추정하고, 시험약물의 약물동태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것을 1차 목적으로 했으며, 2차적으로는 해당 피험자에 대한 시험약물의 항종양 효과에 대해 탐색적으로 고찰했다. 본 연구로부터 얻어진 결과는 이후 실시될 임상시험의 설계시 적절한 투여 용법, 용량을 결정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
연구팀은 최대 내약용량을 찾기 위해 저용량(5㎎/day)을 개시 용량으로 삼아 해당 용량군에서 안전성이 확인되는 경우 단계적으로 용량을 늘려 투여하는 실험방식을 채택했다. 또 약물동태학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첫 용량 투여시엔 24시간까지, 반복 투여시엔 1주 단위로, 투여 종료시엔 72시간까지 시험대상 환자의 혈중 비소농도 변화와 소변으로 배출되는 비소 양을 확인했다. 아울러 탐색적 의미이긴 하지만, 투약 종료시점(4주)에 환자의 종양 상태가 투약 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관찰했다.
'
1상시험 대상 선정기준은
▲ 자의로 임상시험 참여에 동의한 자
▲ 조직학적으로나 세포진단학적으로 고형암으로 확진된 자
▲ 만 19세 이상, 70세 이하
▲ 임상시험 시작 후 12주 이상 생존 가능성이 예상되는 자로 정했다.
'
이 같은 기준에 따라 15명의 고형암 환자가 시험대상으로 선정됐다. 모두 수술이나 항암제 투여, 방사선 요법 등 표준적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암 환자였다. 공식 약물 투여기간은 4주. 하지만 상당수 환자는 공식 시험과 상관없이 치료 목적으로 천지산을 추가 복용했고, 그 결과 몇몇 환자에게서 종양표지자 감소 등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징후가 발견됐다.
'
강 교수팀은 적정 용량을 구하기 위해 먼저 이들 중 3명에게 하루에 15㎎, 즉 한 번에 5㎎(1캡슐)씩 식후 세 차례 투약했다. 아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자 용량을 늘려 하루에 30㎎을 투약했다. 역시 이상이 없었다. 3단계에선 더 늘려 하루에 45㎎을 투약했다. 그러자 1명에게서 용량제한독성이 관찰됐다. 다른 3명의 환자에게 같은 양을 투여하자 마찬가지로 1명이 이상반응을 나타냈다. 6명 중 2명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이 경우 한 단계 적은 양이 최대 내약용량이 된다. 그에 따라 천지산의 최대 내약용량은 2단계 용량, 즉 30㎎/day(6캡슐)로 결정됐다.
'
“소문에는 좀 못 미쳤지만…”
약물의 항암효과는 종양 크기 변화에 따라 ‘완전반응’ ‘부분반응’ ‘불변’ ‘진행’ 네 종류로 나뉜다.
‘완전반응’은 암세포가 완전히 죽거나 사라진 경우, ‘부분반응’은 종양 크기가 50% 이상 감소하거나 새로운 암 전이가 일어나지 않은 경우다. 이에 비해 ‘불변’은 종양 크기가 50% 미만 줄어들거나 25% 미만 증가한 경우를 일컫는다. ‘진행’은 투약 중에도 암세포가 25% 이상 커지거나 새로운 암 전이가 나타난 경우로 항암효과가 거의 없음을 뜻한다.
'
천지산의 경우 시험대상 환자 15명에게 4주간 투약한 결과 10명에게서 ‘불변’ 반응이 나타난 반면 5명에게서는 ‘진행’ 현상이 관찰됐다. 67%에 해당하는 10명에게서 암세포 발전 속도가 더딘 ‘불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의미 있는 성과이긴 하다. 하지만 암세포가 사멸되거나(‘완전반응’) 종양 크기가 반 이상 줄어든 것(‘부분반응’)이 아니라는 점에서 항암효과가 뛰어나다고 하기엔 미흡한 구석이 있다.
'
시험책임자인 강 교수도 “솔직히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친 면이 있다. 그간 천지산을 둘러싼 소문을 의식해 종양 크기가 반 이상 줄어드는 환자가 많이 나올 줄 내심 기대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1상시험은 적정 용량을 결정하고 부작용을 살피는 것인 만큼 항암효과를 논하기엔 이르다”며 “기존 항암제와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 인정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이와 관련, (주)천지산이 식약청에 제출한 2상시험 계획서에는 이런 설명이 담겨 있다.
‘본 임상 연구의 대상이 과거 수년간 외과적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요법 등을 실시했음에도 예후가 좋지 않았던 말기 진행성 악성종양 환자들이므로 15례(例) 중 10례에서 더 이상의 암 전이 및 종양 크기 증가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유의할 만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 그러나 본 연구의 투약·관찰 기간이 짧았고(4주), 회복기나 추가적인 투약·관찰기간을 설정하지 않았으므로 본 연구에서 관찰된 항종양 효과 검증 결과에 대해 임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재 상용되는 다른 항암제들의 치료기간을 고려할 때 최소 3개월 정도 투약·관찰했을 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어느 항암제를 쓰든 암 뿌리가 완전히 뽑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의약계의 정설이다. 항암제 시장의 현 추세는 병합요법이다. 암세포마다 잘 듣는 항암제가 다르고 항암제마다 고유 특성이 있으므로 함께 사용하면 약효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것. 강 교수는 “혈관신생억제 기능을 겸하고 있는 천지산을 기존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면 약효가 더욱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 식약청에서 천지산 임상 2상시험 계획서를 심사하는 부서는 항생항암의약품팀이다. 이 부서 관계자는 “현재 1상에서 도출한 적정 용량이 적절한지 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30일 이내에 승인하게 될 것” 이라면서도 “부족한 자료가 있으면 보완을 지시할 수도 있다” 고 토를 달았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식약청이 자체 심사로 끝내지 않고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자문을 구할 경우 시간이 더 걸린다. ' 의약품안전정책팀은 심사를 통과한 의약품에 대해 임상시험 승인서를 내주는 부서다. 이 부서 관계자는 “1상 결과가 제출됐다고 해서 무조건 2상 허가가 나는 게 아니다. 2상이나 3상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 폐기되는 경우도 많다”고 원론적인 견해를 밝혔다. 천지산의 ‘동정적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1, 2상 시험결과가 좋을 경우 조건부 시판허가가 날 수도 있다” 는 ‘모범답변’을 내놓았다. ' 2상시험 실시기관 및 책임연구자는 1상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아산병원 강윤구 교수다. 시험대상자는 자궁경부암 환자로 국한됐다. 그 이유에 대해 배일주씨는 “자궁경부암이 다른 암에 비해 진행상태가 쉽게 관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씨는 자궁경부암 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임상시험 대상을 다른 부위의 암 환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 그때마다 식약청에 2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위암 환자 따로, 폐암 환자 따로 계획서를 내야 하는 것이다. 배씨는 이와 관련해 “일단 서울아산병원에서 시작한 후 최소한 세군데 병원을 추가로 선정해 임상시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앞서 언급했듯 1상시험에서 확인된 최대 내약용량은 하루에 30㎎. 2상시험 적정 용량은 1상시험 결과와 안전성을 감안해 15㎎으로 산정했다. 이는 하루에 5㎎(1캡슐)씩 세 차례 복용하는 것으로, 배씨가 과거 ‘불법적’으로 약을 처방할 때 쓰인 용량과 같다. ' 예정 시험기간은 1년이고 전·후기로 나눠 진행될 예정이다. 전기에서는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투약하는데, ‘완전반응’이나 ‘부분반응’ 사례가 한 건도 관찰되지 않을 경우 연구를 중단하게 된다. 반면 한 명이라도 ‘완전반응’이나 ‘부분반응’을 나타내면 추가로 23명을 선정해 모두 35명에 대해 투약한다는 계획이다. ' 계획서에 따르면 이 35명 중 중도탈락자를 제외한 28명을 최종 분석하게 된다. 투약기간은 44주. 4주 연속 투여 후 1주 휴식하는 것을 한 주기로 삼아 환자 한 명당 4주기까지 투약하고, 종료 후 24주간 생존 여부나 종양 진행상태를 점검한다. 다만 기본 투여기간인 2주기(10주) 이후 암세포가 커지는 ‘진행’ 상태가 확인된 암환자에 대해서는 투약을 중단한다. ' 전 강북삼성병원 암 전문의 동참 ' (주)천지산은 장비와 시설, 인원을 보강하고 2상시험에 들어갈 채비를 마친 상태다. 경기도 과천에 분석실을 새로 만들고 ‘ICP-MS(유도결합 플라스마 분광계)’라는 초미량분석기 2대를 사들였다. 이는 KIST에도 1대밖에 없는 고가의 장비(대당 23만8000달러)인데, 향후 약물역동학 검사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목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천지산은 최근 KIST 연구원 2명을 영입했다. 이로써 이 회사 직원은 모두 14명으로 늘어났다. . 연구진도 강화됐다. 현재 천지산 연구에 동참한 의학자는 30명에 이른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연구비를 지급받는데, 2상시험이 시작되면 별도의 자문료도 받게 된다. 배일주씨는 “황우석 교수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연구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점”이라며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수들에게 철저하게 자문을 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최근 새로 합류한 의학자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유영석 전 강북삼성병원 내과교수. 암 전문의인 유씨는 과거 천지산이 ‘음지’에 있을 때 의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천지산의 의학적 효능을 인정했던 인물로, 1996년 배씨가 사기꾼으로 몰려 체포됐을 때 검사 앞에서 천지산 복용환자의 필름을 제시하며 배씨를 옹호하기도 했다. ' 그가 강북삼성병원을 그만둔 것은 ‘천지산 사건’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천지산의 주성분인 비소의 항암 효능을 연구,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라는 세계적인 암 전문학술지에 두 차례 관련 논문을 실을 정도로 비소 전문가가 됐다. ' 귀국 후 그는 서울 강남에 열린내과의원을 개업했다. 그의 합류로 천지산 연구는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가 천지산의 비공식 임상시험, 즉 강북삼성병원 재직 시절 천지산을 암 환자들에게 처방하고 그 상태를 관찰한 기록과 관련 자료를 고스란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천지산 관련 뉴스 중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천지산이 백혈병 치료에 도전한다는 사실이다. 이 얘기가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비소가 백혈병에 잘 듣는다는 것이 이미 세계 의학계에서 공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트리세녹스가 대표적인 비소 백혈병 치료제다. 트리세녹스의 주성분은 천지산(As4O6)과 화학구조가 비슷한 삼산화비소(As2O3)다. ' 백혈병에 대한 천지산 임상시험은 국내 백혈병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의정부성모병원 김동욱 교수가 맡기로 결정됐다. 식약청 항암제 분과 심사위원이기도 한 김 교수가 천지산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과거 천지산 임상시험 신청서가 접수됐을 때 동물시험 자료 미비 등을 이유로 두 차례 퇴짜를 놓으면서다. 그는 당시 일에 대해 “처음 천지산에 대한 항간의 소문을 접했을 때 솔직히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 다국적 제약회사와 합작계약 진행 중 ' 김 교수가 천지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백혈병에 잘 듣는 비소 때문이다. 현재 배씨로부터 천지산 원료를 건네받아 실험실에서 연구 중이라고 밝힌 그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백혈병에 대한 천지산 임상시험의 경우 1상과 2상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삼산화비소로 만든 트리세녹스가 시판허가를 받았으므로 백혈병에 대한 비소의 효능이 이미 확인됐다는 점이 그 근거다. ' 김 교수는 현재 백혈병 치료용 신약으로 개발중인 슈퍼글리벡과 다사티닙에 대한 국제적인 임상시험에 동참하고 있다. 이 임상시험은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김 교수가 몸담은 의정부성모병원이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 그는 “슈퍼글리벡과 다사티닙이 통하지 않는 백혈병 환자에게 암세포 사멸 기능을 가진 천지산을 병합 사용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고형암을 대상으로 한) 천지산 1상시험 결과를 정밀 분석한 후 백혈병에 대한 임상시험계획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 (주)천지산은 상반기 중 BGMP(원료의약품우수제조관리기준 시설설비)와 KGMP(대한민국 우수의약품 제조규격)를 갖춘 제약회사를 인수할 예정이다. 다분히 시판을 염두에 둔 포석인 셈이다. 의약품 생산시설과 판매 시스템이 갖춰진 제약회사를 인수할 경우 제조와 판매가 일원화돼 수익구조 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천지산 김모 기획이사에 따르면 현재 몇몇 후보 회사를 선정해놓고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진행속도가 매우 빨라 인수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또한 해외시장 개척과 정보 교류, 공동연구 목적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와 합작회사도 만들 예정이다. 다국적기업이 자금을 제공하고 (주)천지산이 기술을 대는 방식인데,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는 경우에만 계약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설립되면 한국과는 별개로 외국에서 천지산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있다. 현재 미국, 호주, 일본에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접촉하고 있는데, 그중 호주 회사와의 협상이 가장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 배씨는 인터뷰에서 황우석 교수 사태를 몇 차례 언급하며 “연구자의 기본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제약회사를 인수하게 되면 경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연구에만 전념할 생각이라고 다짐하듯 새해 포부를 밝혔다. 그의 새 연구내용 중엔 천지산 주사제 개발도 포함돼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