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美 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범죄
1994년 6월13일 새벽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고급주택가 브렌트우드에서 백인 남녀가 흉기에 난자당한 사체로 발견됐다.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O J 심슨 사건’의 시작이었다.
스포츠 스타의 복잡한 사생활과 가정폭력이 낳은 이 끔찍한 범죄는 사법당국의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과정에서 돈과 권력, 인종문제, 미국 사법체계의 문제점, 황색 언론의 광기가 어우러져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체로 발견된 피해자는 여배우 니콜 브라운과 그의 애인 론 골드먼이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곧바로 니콜 브라운의 남편인 전설적 풋볼 스타 O J 심슨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현장에서 심슨의 혈흔이 나왔고 심슨의 집에서 피해자의 혈액이 묻은 장갑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튿날 심슨 체포에 나섰다. 심슨은 차를 몰고 무작정 고속도로를 달렸다. 경찰차와 헬기가 그 뒤를 쫓아 100㎞의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이 장면은 전 미국에 생중계됐고 도로에 늘어선 시민들은 “O J 고”를 외쳤다. 마치 현역 선수 시절 심슨의 질주에 열광하던 모습과 흡사했다. 시민들은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심슨의 변호를 맡은 이른바 ‘드림팀’ 변호인단은 372일간의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불가능해보이던 심슨의 무죄 평결을 이끌어냈다. 변호인단은 피묻은 장갑이 심슨의 손에 맞지 않는다는 점, 현장에서 발견된 심슨의 혈액에 대한 보존상태와 채취 경위, 혈액이 남겨진 시점 등을 문제삼았다. 또한 수사 경찰이 인종차별주의자임을 집중 부각시켰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에 매수당한 가짜 목격자가 나타났고 범행에 사용된 칼을 팔았다는 입증되지 않은 참고인 주장도 언론에 소개됐다. 재판은 혼란에 빠졌고 결국 배심원단은 심슨이 유죄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심슨 사건이 남긴 후유증은 컸다. 미국을 흑백으로 나눠놓았고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과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인식을 강하게 남겼다. 심슨은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피해자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해 배상금 850만달러와 함께 징벌적 배상금으로 2500만달러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산했다.
심슨은 지난해 12월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무장강도 사건과 관련, 납치·강도 혐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최고 33년형을 선고받았다. <유신모기자 simon@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