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 바다 (외 2편)
곽재구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 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과 음악
새벽이면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를 생각하며 2
라빈드라나트,
지금은 해가 졌다오
무거운 발걸음 끌며
불가촉천민의 마을을 지나는데
눈매 서늘한 한 아낙이
댓잎에 싼 탈리를 주고 가네
감자와 열대과일과 굳은 밥알이 함께 섞인
한 끼 식사를 외양간 곁에 서서 먹네
그대여, 그대 또한 감자 섞인
저녁 탈리 한술 드셨는지
드시고 서녘 하늘 별 많은 그 강마을을
천천히 산책도 하시는지
강 건너 마을의 저녁 불빛들 맑디맑은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 소년의 이름을 부르느라
엄마의 목소리는 챔파나무 숲을 크게 흔드는데
그대여, 길 걸으며 시를 쓰는 일 점점 외로워지는데
그대여, 길 걸으며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일 점점 쓸쓸해지는데
무화과
먹감색의
작은 호수 위로
여름 햇살
싱싱하다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엄마가 어디 가셨니?
엄마가 어디 가셨니?
별이 초롱초롱한 밤이면
그중의 한 나무가
배고픈 내게 물었다
—시집『와온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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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1954년 광주 출생. 1981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와온 바다』등이 있음.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