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4:1~12 / 시들어버린 꽃과 같은 인생
(욥 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욥 14:2)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그림자같이 지나가며 머물지 아니하거늘
(욥 14:3) 이와 같은 자를 주께서 눈여겨보시나이까 나를 주 앞으로 이끌어서 재판하시나이까
(욥 14: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에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욥 14:5)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욥 14:6)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가 품꾼같이 그의 날을 마칠 때까지 그를 홀로 있게 하옵소서
(욥 14:7)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욥 14: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욥 14:9) 물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욥 14:10)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
(욥 14:11) 물이 바다에서 줄어들고 강물이 잦아서 마름 같이
(욥 14:12)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면 죽음을 생각합니다. 질병의 고통이 크고 오래될수록 더욱 죽음을 가까이 인식합니다. 14장의 욥은 그런 죽음을 인식하며,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현재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1~3 욥은 시든 꽃과 같은 인생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에 관한 질문을 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3인칭으로 바꾸어 간접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욥은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이 죄의 결과로 죽게 되고 이 세상 가운데서 사는 동안에도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고생하며 근심하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애가 3:33) 인간의 타락으로 자초 된 바입니다. 사람은 짧은 생애 속에서 살면서 걱정이 가득합니다. 인간은 꽃과 같고 그림자같이 빨리 지나갑니다. 인간이 꽃과 같이 피었다가 쉽게 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욥은 이런 일시적인 인간을 왜 재판하여 죄를 들추어 내시냐고 질문합니다. 욥은 욥 자신과 같이 헛되고 무상한 존재(1, 2절)를 그토록 심각한 눈으로 주시하시며 살피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하소연합니다. 일시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4-6) 더러운 데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깨끗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욥은 모든 인간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에게서 난 자 또한 깨끗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합니다.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여기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보편적인 인간의 죄악성과 연약성을 들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죄악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왜 재판하느냐고 묻습니다. 인생의 날은 정해진 것인데 그날이 마칠 때까지 만이라도 편히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한계적인 인간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연약한 인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욥은 품꾼같이 그의 날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일꾼으로 고용된 품꾼이 하루해가 지나고 일을 마친 후 그 일한 삯을 받고 즐거워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를 감시하시거나 죄악으로 인해 징계하지 마시고 연약한 그를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짧은 인생을(5절)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7-12) 나무는 찍혀도 싹이 나고 뿌리에서 움이 돋아나는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나무를 자를지라도 그 그루터기 밑줄기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납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오래된 나뭇가지를 자르고 새 가지 싹이 나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주로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등입니다.
요단 동부 지역, 특히 다메섹 지역 등에서는 다 죽어가는 나무라 할지라도 그 줄기의 밑둥지를 자르면 그다음 해에는 그 그루터기에서 많은 새싹이 돋아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무와 달리 죽으면 소멸됩니다. 사람은 숨을 거두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장정은 용사, 용감한 사람을 뜻하는데 용감한 사람도 죽으면 소멸됩니다.
일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용감하고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소멸되어 버리는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인생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의 몸은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전도서 3:20~21) 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나무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11~12에서 욥은 바닷물이 증발하여 사라지듯, 강물이 말라 없어지듯, 사람이 드러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질 때까지 깨어나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눕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시편 13:3 예레미야 51:39).
결코 하늘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이 한번 죽으면 결코 깨지 못함을 강조합니다.
하늘이 없어지지 않을 때까지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일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하늘을 없어지게 하시는 때에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다시 소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밑둥지에서 새싹이 나는 나무보다 낫습니다.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는 곳에서 부활의 새 몸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오늘도 부활의 소망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