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탄생] 밥 말리 '노 우먼, 노 크라이'
오광수 경향플러스 콘텐츠팀장
레게는 여름의 음악이다. 그리고 자메이카와 밥 말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밥 말리의 대표곡 ‘안돼요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는 마음이 답답할 때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노래다.
No, woman, no cry X3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Yes,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a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그래요, 우리가 트렌치타운의 정부
땅에 앉아 있던 게 기억나요
Observing the hypocrites mingle
with the good people we meet
그때 우린 만났던 좋은 사람들과 섞여 있던 위선자들을 관찰하고 있었죠
Good friends we have had,
good friends we have lost
좋은 친구를 얻기도, 잃기도 했죠
Along the way in this bright future,
you can't forget your past
이 길을 따라오는 밝은 미래에
당신은 과거를 잊을 수 없어요
So dry your tears, I say
그러니 눈물을 닦아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Here little darlin', don't shed no tear
여기 어린 달링, 눈물을 흘리지 마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 Yes,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a government yard in Trenchtown
그래요, 우리가 트렌치타운의 정부
땅에 앉아 있던 게 기억나요
And Georgie would make the fire light
조지가 불을 붙였고
As it were log wood burnin'
through the nights
긴 통나무로 밤새도록 불태울 것처럼
Then we would cook corn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그리고 우린 당신들과 나눠먹을
옥수수죽을 만들었어요
And my feet is my only carriage
그리고 두 발이 나의 유일한 운송수단
So I've got to push on through
그러니 난 힘차게 헤쳐 나아가야 해요
But while I'm gone
하지만 내가 가더라도
Everything 's gonna be alright X8
모든 게 다 잘될 거예요
S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그러니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Come on little darlin', don't shed no tear
컴온 어린 자매여, 눈물을 흘리지 마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
S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그러니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Come on little darlin', don't shed no tear
컴온 어린 달링, 눈물을 흘리지 마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여인이여, 울지 마요. 안돼요, 울지 마요
Hey little sister, don't shed no tear
여기 어린 자매여, 눈물을 흘리지 마요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레게음악의 전도사로 불렸던 밥 말리는 이 노래 속에서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울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노래한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곡 같지만 사실은 그의 조국 자메이카를 위한 노래다. 1962년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나아가서는 백인들에게 탄압받아온 흑인들을 절규하듯이 위로하고 있다.
밥 말리는 언젠가 모든 흑인이 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에 모여서 이상향을 건설할 것이라는 라스파타리아니즘의 추종자였다. 1세기 전 흑인 인권운동가 마르쿠스 가비는 에티오피아가 흑인들을 구원할 약속의 땅이 될 것이라면서 라스파타리아니즘을 주도했다.
그러나 메시아로 추종했던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에티오피아 황제가 쿠데타로 물러나면서 시들해졌다. 그러나 카리브해의 레게 뮤지션들은 라스파타리아니즘을 종교로 신봉했으며 레게머리를 고수하면서 명상을 위해 마리화나를 피웠다.
밥 말리는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로 그의 친구 빈센트 포드의 이름을 올렸다. 포드는 밥 말리와 1950년대 트렌치타운의 빈민가에 살던 시절의 친구였다. 당뇨로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었지만 의협심이 강했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여 빈민구제에도 앞장섰다.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절에 함께 정을 나눴던 친구에게 재정적 보탬을 주기 위해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노래는 1981년 5월 밥 말리가 뇌종양으로 사망한 뒤 발매된 베스트앨범에 수록된 라이브 버전이 더욱 큰 인기를 누렸다.
첫댓글 요즘 코로나시대에 어울리느 노래같아요
레게 음악하면 빕 머레이 생각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