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진섭(陳涉)과 우리나라 윤석렬 검찰 총장
기원에 가면 거의 매일 개근하는 분들이 몇 명 있다. 그 중에는 중학교 교원출신 선생님도 있다. 이분은 바둑을 둘 때 감정을 솔직하게 잘 드러낸다. 판세가 유리하면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고사성어로 빗대어 국면을 은둔적으로 잘 표현한다.
어제는 연작(燕雀)이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는가? 이렇게 말하니 주위 사람들이 연작이 무엇인데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제비와 참새다.’ 라고 답했다.
통감절요에는 이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져 있다.
이 이야기 원천은 사마천이 쓴 사기 ‘진섭세가(陳涉世家)’다.
사마천이 쓴 사기는 기전체(紀傳體) 형식이다. 기전체(紀傳體)에서 기(紀)는 본기(本紀) 즉 제왕의 사적 기록이다. 전(傳)은 열전(列傳) 즉 임금을 제외한 명사들의 전기를 기록함을 뜻한다.
세가(世家)는 비록 제왕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열전에 나오는 인물들보다는 한 단계 높은 인물의 사적 기록이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의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진(秦)나라의 반란 주모자 진섭(陳涉)이다. 진섭은 풍운아다.
통감절요에는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라 인용되어 있다. 이를테면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 는 뜻이다.
이 말과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이 여럿이 있다.
선부지설(蟬不知雪) 이른바 매미(蟬)는 눈(雪)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름 한철 사는 매미가 어떻게 겨울의 눈을 알 수 있을까. 견문이 좁다는 뜻이다.
하충어빙(夏蟲語氷) 즉, 여름 동안에만 사는 벌레가 어떻게 겨울의 얼음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
척택지예(尺澤之鯢)는 작은 못 안에 사는 송사리라는 뜻으로 소견이 좁은 경우를 가리킨다. 그 외에도 우물 안의 개구리를 뜻하는 정중지와(井中之蛙)나 정저와(井底蛙)가 있고, 우물 속에서 하늘이나 별을 본다는 정중관천(井中觀天), 정중시성(井中視星)도 있으며, ‘우물이 아닌 대롱을 통해 하늘을 엿본다.’는 관중규천(管中窺天)이나 ‘대롱 구멍을 통해 표범을 보니 표범 무늬의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관중규표(管中窺豹)도 비슷한 쓰임새의 말들이다.
사마천의 사기 진섭세가(陳涉世家)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陳勝者, 陽城人也, 字渉. 呉広者, 陽夏人也, 字叔. 陳渉少時, 嘗與人傭耕, 輟耕之壟上, 悵恨久之, 曰:「苟富貴, 無相忘.」庸者笑而應曰:「若為庸耕, 何富貴也?」陳渉太息曰:「嗟乎, 燕雀安知鴻鵠之志哉!」
진승(陳勝)은 양성(陽城) 사람으로 자(字)는 섭(涉)이다. 오광(吳廣)은 양하(陽夏)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다. 진섭(陳涉)은 젊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머슴살이를 했다.
어느 날 밭두둑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는데, 그는 불평과 원망을 하며, “만약 부귀하게 된다면 피차 모두 서로를 잊지 맙시다”라 했다. 머슴들은 웃으면서 이에 대꾸하기를 “당신은 고용당해 머슴살이를 하는데, 무슨 말할 만한 부귀가 있겠소?”라고 비웃자, 진승은 “오호!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리오!”라고 탄식했다.
二世元年七月, 発閭左適戍漁陽, 九百人屯大沢郷. 陳勝、呉広皆次當行, 為屯長. 会天大雨, 道不通, 度已失期. 失期, 法皆斬. 陳勝、呉広乃謀曰:「今亡亦死, 挙大計亦死, 等死, 死国可乎?」 陳勝曰:「天下苦秦久矣. 吾聞二世少子也, 不當立, 當立者乃公子扶蘇. 扶蘇以數諫故, 上使外将兵. 今或聞無罪, 二世殺之. 百姓多聞其賢, 未知其死也. 項燕為楚将, 數有功, 愛士卒, 楚人憐之. 或以為死, 或以為亡. 今誠以吾衆詐自称公子扶蘇、項燕, 為天下唱, 宜多應者.」呉広以為然. 乃行卜. 卜者知其指意, 曰:「足下事皆成, 有功. 然足下卜之鬼乎!」陳勝、呉広喜, 念鬼, 曰:「此教我先威衆耳.」乃丹書帛曰「陳勝王」, 置人所罾魚腹中. 卒買魚烹食, 得魚腹中書, 固以怪之矣. 又閒令呉広之次所旁叢祠中, 夜篝火, 狐鳴呼曰「大楚興, 陳勝王」. 卒皆夜驚恐. 旦日, 卒中往往語, 皆指目陳勝.
진(秦) 2세(二世) 황제 원년(元年) 7월, 조정에서는 이문(里門) 왼쪽에 거주하는 빈민들을 변경 근처인 어양(漁陽)으로 옮겨가도록 명령했다. 9백여 명이 가는 도중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했다. 진승과 오광은 모두 이 행렬 가운데 끼어들어 둔장(屯長)을 맡았다. 이때 마침 천하에 큰비가 내려 도로가 불통되었으므로 기한 내에 도착하기란 이미 어려웠다. 만약 기한을 어기면 모두 법률에 의거해 참수를 당해야만 했다. 이에 진승과 오광은 서로 상의하기를 “지금 도망을 해도 죽고 의거(義擧)를 일으켜도 또한 죽는다. 이왕 똑같이 죽을 바에는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 했다. 진승이 호응해 말했다.
“천하의 사람들이 진나라 통치의 가혹함에 고통 받은 것이 오래되었다. 나는 2세 황제가 막내아들이므로 제위를 계승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제위를 계승해야 하는 것은 장자인 부소(扶蘇)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부소가 여러 차례 간언을 했다는 까닭으로 진시황제(秦始皇帝)는 그가 병사를 이끌고 외지로 나가도록 했다. 지금 사람들이 그는 죄가 없다고 하자 2세(二世)가 그를 살해했다고 한다. 백성들은 모두 부소가 어질고 재능이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가 이미 죽었는지를 또 모른다. 항연(項燕)은 초(楚)나라의 장군으로 여러 차례 공을 세웠으며 병사들을 사랑해 초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를 우러러 받든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외지로 도망을 가서 숨었다고도 한다. 지금 만약 우리가 부소와 항연을 가장해 천하 사람들을 위해 앞장선다면 당연히 호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오광은 옳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곧 점을 치러 갔는데, 점쟁이는 그들이 온 의도를 알고는 “당신네들의 일이 성공한다면 커다란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귀신에게 점을 쳐야만 합니다.”라 했다.
진승과 오광은 매우 기뻐했으며, 마음속으로 귀신에게 점칠 일을 모두 생각해 두고는 이르기를 “이것은 우리들이 먼저 귀신인 척해서 사람들에게 위신을 얻으라는 뜻이다.”라 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주사(朱砂)로 비단 위에 ‘진승왕(陳勝王)’ 세 글자를 써서 몰래 남들이 그물로 잡아온 물고기의 뱃속에 쑤셔 넣었으며, 수졸(戍卒)들이 이 물고기를 사서 먹은 후 물고기 뱃속에서 비단에 쓴 글을 보게 했는데, 이것은 이미 기괴(奇怪)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진승은 또 오광에게 몰래 주둔지의 나무숲에 있는 신사(神祠)에 가서 야밤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여우로 위장을 해 큰소리로 “대흥초(大興楚), 진승왕(陳勝王)”을 외치도록 했다. 수졸들은 모두 심야에 무서워서 불안해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수졸들은 도처에서 이 일을 이야기했는데, 모두 진승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呉広素愛人, 士卒多為用者. 将尉酔, 広故數言欲亡, 忿恚尉, 令辱之, 以激怒其衆. 尉果笞広. 尉剣挺, 広起, 奪而殺尉. 陳勝佐之, 并殺両尉. 召令徒属曰:「公等遇雨, 皆已失期, 失期當斬. 藉弟令毋斬, 而戍死者固十六七. 且壮士不死即已, 死即挙大名耳, 王侯将相寧有種乎!」徒属皆曰:「敬受命.」乃詐称公子扶蘇、項燕, 従民欲也. 袒右, 称大楚. 為壇而盟, 祭以尉首. 陳勝自立為将軍, 呉広為都尉. 攻大沢郷, 収而攻蘄. 蘄下, 乃令符離人葛嬰将兵徇蘄以東. 攻銍、酇、苦、柘、譙皆下之. 行収兵. 比至陳, 車六七百乗, 騎千余, 卒數萬人. 攻陳, 陳守令皆不在, 独守丞與戦譙門中. 弗勝, 守丞死, 乃入拠陳. 數日, 号令召三老、豪傑與皆來会計事. 三老、豪傑皆曰:「将軍身被堅執鋭, 伐無道, 誅暴秦, 复立楚国之社稷, 功宜為王.」陳渉乃立為王, 号為張楚.
오광은 평소에 사람들을 자상하게 돌보아주었으므로 수졸들 대부분은 기꺼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수졸을 인솔하는 장위(將尉)가 술에 취하자 오광은 일부러 여러 차례 도망가자고 떠벌리어 장위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장위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오광 자신을 모욕하게 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과연 장위는 채찍으로 오광을 때렸다. 장위가 검을 빼어들려고 하자 오광은 후다닥 일어나서 검을 빼앗고 장위를 살해했다. 진승 또한 오광을 거들어주었으며 함께 두 명의 장위를 살해했다. 아울러 부하들을 불러 모아 호소했다.
“너희들은 비를 만났으므로 모두 기한을 어기게 되었다. 기한을 어기면 마땅히 모두 죽음을 당해야 한다. 만약 죽지 않는다고 해도 변경을 지키다 죽는 사람이 본래 열에 6~7명은 된다. 하물며 장사(壯士)는 죽지 않을 뿐인데, 만약 죽으려면 즉 세상에 커다란 명성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은 어디 하늘에서 나는 것이냐?”
부하들은 모두 “경건하게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 했다. 이리하여 곧 부소와 항연을 사칭해 의거를 일으켜 백성들의 욕구를 따랐다. 수졸들은 모두 오른쪽 팔을 드러내어 ‘대초(大楚)’라고 칭했다. 그들은 단을 높이 쌓고 맹서를 했는데, 장위의 머리를 제품(祭品)으로 사용했다. 진승은 장군, 오광은 도위(都尉)가 되었다. 그들은 대택향을 공격했으며, 병사를 모집하고 군비를 확장해 기현(蘄縣)으로 진공했다.
기현을 함락시킨 후 부리(符離) 사람 갈영(葛嬰)에게 병사들을 이끌고 기현 동쪽 지역을 공략하게 했다. 그들은 질(銍), 찬(酇), 고(苦), 자(柘), 초(譙) 현 등을 공격해 모두 함락시켰다. 공격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병사들을 모집하고 군비를 확장했다. 진(陳)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전차(戰車)가 6백~7백 량(輛), 기병(騎兵)이 1천여 명, 병사들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 진을 공격했을 때 수령(守令)은 모두 있지 않았으며, 단지 수승(守丞)만이 홀로 초문(譙門)에서 저항을 했지만 당해낼 수가 없었다. 수승은 전사했으며, 그들은 마침내 입성(入城)해 진현(陳縣)을 점령했다.
며칠이 지나 진승은 향관삼로(鄕官三老), 지방호걸(地方豪杰)을 모두 초대하라고 명해 의사(議事)를 소집했다. 삼로와 향신들은 모두 말하기를 “장군께서는 몸에는 갑옷을 걸치시고 손에는 예리한 무기를 드시고서 무도(無道)를 토벌(討伐)하고 폭진(暴秦)을 제거하시어 초 나라의 사직(社稷)을 중건하시려고 하시니, 공(功)을 논한다면 칭왕(稱王)하셔야 마땅합니다.”라 했다. 이리하여 진승은 왕이 되었으며, 국호를 장초(張楚)라 했다.
진섭은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만만했는데, 그의 몰락은 예상하지 않은 일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옛 친구를 자처하면서 진섭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나를 알아보시겠소? 지난날 같이 머슴살이를 하던 아무개올시다.” 그 사람은 함께 머슴살이를 할 때 진섭이 자청해서 한 말을 들먹이며 친분을 과시하려고 했다. 그러니 진섭으로서는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울컥 화가 치밀어 얼굴이 시뻘개져서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굴러온 미친놈이 임금의 위엄을 감히 손상시키고 있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여봐라! 이놈을 당장 끌어내다 참수하라!”
이 광경을 본 주위 사람들은 진섭의 인간성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자기 역시 나중에 같은 꼴을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옛 동지들은 한 사람 두 사람 그의 곁을 떠나 버렸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진섭은 참담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연작이 모르는 홍곡의 큰 뜻을 품기는 했으되 어떻게 해야만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몰랐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대 혈전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를 포함한 범 행정부와 검찰총장 한 사람 간에 벌어지는 제로섬 게임이 그것이다. 싸움 자체를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청와대가 골리앗이라면 윤석렬 검찰총장은 다윗처럼 보인다. 윤석렬 총장은 비록 전투수행은 혈혈단신처럼 보이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의 등 뒤에서 성원을 보내 주고 있기 때문에 의(義)나 명분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의지와 정도로 걸어가면 다윗이 될 개연성이 높다. 정치 입문도 안했는데 벌써 대통령 후보 지지율 면에서 2위로 부각되고 있음은 그가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성원을 받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진섭(陳涉)은 제왕이 될 기회를 잡고도 그의 무지로 인해 민심을 잃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를 범했다. 과연 윤석렬 총장은 어떻게 처신해 갈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윤총장이 진섭보다 낳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