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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병매 (122회) 나그넷길 3
가서 거실 문을 열어보니,
바깥 어둠 속에 희끄무레하게 여자가 서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어느새 창문에서 저만큼 떨어진 곳에 저쪽으로 돌아서 있어서 누군지 알 수 가 없다.
"누구지? 응?"
오월랑은 마루로 나서며 약간 목소리를 돋우어 묻는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 대답도 없이
가만가만 걸음을 떼놓기 시작한다.
"아니, 누구냔 말이야. 안 들려?"
오월랑은 발끈해진다.
그래도 여전히 들은 척 만 척,
이쪽을 한번 돌아보는 일도 없이 여자는 회랑을 걸어간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도대체 어떤 년이지?"
마침내 오월랑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뒤따라가서 목덜미라도 낚아챌 듯이 잰걸음을 친다.
그러나 여자의 걸음도 빨라지더니, 회랑에서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에 이르자 얼른 그쪽으로 도망치듯 내려간다.
그 순간 오월랑은 머리끝이 쭈삣하게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주춤 걸음을 멈추고 만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보니 층계를 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위를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듯 하질 않는가.
그리고 흐늘거리는 치맛자락 밑으로는
다리도 발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붕 떠서 움직이는 듯했다.
"어머나!"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오월랑은 얼른 돌아서서 도망치듯 자기 방 쪽으로 후닥닥 되돌아간다. 거실 문을 들어서며 힐끗 한번 뒤돌아보니, 여자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거실로 들어선 오월랑은 촛불 때문에 생긴 자기의 그림자가 한쪽 벽에까지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어머, 어머"
그제야 아까 창문에 비쳤던 여자의 그림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불빛을 받으면 그 반대편에 저렇게 그림자가 생기는 법인데, 아무 불빛도 없는 어두운 회랑에 여자가 서있었는데 그 그림자가 창문에 비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유령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오월랑은 온몸에 소름이 좍 돋으며 와들와들 떨린다.
"아이고 무서워. 아이고 아이고-"
정신없이 침실로 뛰어 들어 가다가 경황 중에도 문득 생각이 나 되돌아 나와서 촛불을 훅 불어 끈다.
그리고 어둠 속에 황급히 다시 침실로 들어가 침상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치기도 하면서 후닥닥 기어올라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든다.
드르릉 드르릉...
서문경은 아까보다 한결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며 자고 있다.
오월랑은 남편의 몸뚱어리를 발끈 휘감듯이 끌어안으며 이불을 푹 뒤집어써 버린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나자 오월랑은 곧바로 나들이옷을 갖추어 입고 몸종인 옥소를 대동하고서 집을 나섰다.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얘기로만 듣던 때와는 달리 간밤에 자기가 직접 유령을 목격하고 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당의 말을 들어보고, 무슨 수를 써야 될 듯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집안에 어떤 불길한 일이 닥칠지 모르며, 당장 자기가 밤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어젯밤부터 불면증이 시작된 터이니 말이다.
어쩌면 자기도 서문경처럼 기가 허해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아침에 잠을 깨어 이부자리 속에서 남편에게 간밤에 자기가 겪은 유령 얘기를 하고, 무당을 찾아가 봐야겠다는 말을 하니,
서문경도 흔쾌히 동의를 하고서 조금 재미있다는 투로, "드디어 당신 차례인 모양이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오월랑은 서슴없이,
"그년이 나한테는 왜 나타나는지 모르겠어.
내가 저한테 뭘 어쨌는데... 썩을 년"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당신이 제일 미워했었잖아. 그래서 아마... 허허..."
"그럼 좋아한 당신에게는 왜 나타났죠?
아무 상관도 없는 월미한테는 뭣 때문에 나타나고..."
"나한텐 보고 싶어서 찾아왔을 게고,
월미에겐 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니까"
"흥, 당신은 좋겠수.
목을 매어 자살한 년이 보고 싶어서 귀신이 되어 찾아왔으니..."
오월랑은 아침부터
뒈진 그년 때문에 기분 잡친다는 듯이
훌렁 이불을 걷어붙이고 벌떡 일어나 버렸다.
'드디어 당신 차례'라는
남편의 말이 머리에서 떨어져나가질 않아
오월랑은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집을 나섰던 것이다.
무당을 찾아간 오월랑은 다른 말은 안하고, 그저 남편의 생년월일과 시(時)만 대고서 시름시름 몸이 아픈데
무슨 까닭인지 좀 점쳐 달라고 말했다.
유령얘기를 해버리면 대답이 뻔할 것 같아서,
무당이 얼마나 용한지 보려고 말이다.
무당의 말은 간단했다.
"집안에 근래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어서 그 원혼이 떠돌고 있구려"
오월랑은 어머나, 싶었다.
용하게 알아맞히질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억울하게 죽은 원혼'이라니,
죽고 싶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며 '원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싶었다.
조금 빗나갔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맞지요?"
무당의 물음에 오월랑은,
"예, 맞습니다"
하고 대답해 주었다.
자살도 제 명에 죽은 것은 아니니,
억울하다면 억울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 죽은 사람이 남잡니까, 여잡니까?"
오월랑은 무당을 한 번 더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무심히 물었다.
그러자 무당은 괴이하게 번질거리는 두 눈동자를 두어 번 굴렁거리고서 쏘아보듯이 오월랑을 똑바로 바라보며 약간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걸 몰라서 묻소?
근래에 죽은 사람이 여러 명 되는 것도 아닌데..."
무당의 얼굴에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그제야 오월랑은 속으로 아차 싶으며
살짝 시선을 내리깔 뿐 아무 말을 못한다.
"내가 보니까 죽은 사람이 한 사람뿐인걸. 맞지?"
"예, 맞아요"
"그럼 뻔히 알면서 묻기는 왜 물어"
늙은 무당은 마구 반말로 투덜거리듯이 말하고는 합장(合掌)을 하고서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가리고 주문을 외듯 입속에서 한참 중얼중얼하더니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넋두리를 하듯 말한다.
"치맛자락이 흔들리는 걸 보니 여자구먼. 혀를 빼물고 있다구, 억울하게 죽어도 이만저만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저승으로 못가고 이승을 떠돌고 있다구.
아하, 그렇구나.
당신 남편하고 좋아하던 여자라구.
그래서 밤마다 당신 남편을 찾아오고 있다구.
그러니 몸이 아플 수밖에..."
그리고 나서 무당은 합장을 풀고,
스르르 두 눈을 떠 오월랑을 넌지시 바라본다.
어떠냐, 맞지? 하는 그런 눈빛이다.
오월랑은 맞다는 듯이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묻는다.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은 어떻게 죽은 걸 말하는지요?"
"제 명에 못 죽은 걸 말하지.
당신 집 원혼은 그 형용을 보니까 억울하게 죽어도 보통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라구, 누군가가 목을 졸라서 죽인 것 같다니까"
"뭐라구요?"
오월랑은 깜짝 놀라는 기색이더니 곧 "하하하..."
"왜 웃소?"
"목이 졸려서 죽은 건 맞다구요.
그러나 남이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자기 목을 졸라 죽었지 뭐예요. 목을 매어 자살을 했으니까요"
"아하, 그렇구먼. 좌우간 목이 졸려서 혓바닥을 길게 빼물고 있는 형용이라니까"
"자살을 해도 억울해서 저승에 못 가나요?"
"그렇지요.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자살을 하겠소.
안 그렇소? 그 한을 풀어야 저승으로 가는 거지"
무당은 또 합장을 하며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중얼중얼 주문을 왼다.
그러면 마치 머리 속에 유계(幽界)가 보이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잠시 후 무당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눈을 감은 채 넋두리를 하듯 말한다.
"집안에 묻었구먼, 시신을... 보인다구.
저 봐. 집안에 조그마한 산이 있구먼.
거기 저렇게 묻혀서 누워 있다구"
그제야 오월랑은 이 무당이 정말 용하구나 싶으며
속으로 가만가만 혀를 내두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원혼의 한을 풀어주죠?"
무당은 눈을 뜨고 합장을 풀며 대답한다.
"굿을 해 줘야지요. 그리고 시신을 집안에 묻어둬서는 안 된다구요. 굿을 한 다음 파내어 화장을 해서 그 재를 강물에 뿌려줘야 돼요. 그래야 한이 풀려서 훨훨 저승으로 날아가지 뭐예요."
"알겠어요? 부인"
그 '부인'이라는 말과
끝판에 와서는 정중하게 경어를 쓰는 걸로 보아서
문득 오월랑은 혹시 이 무당이 자기가 서문경의 아내라는 것을 아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당한테는 처음 걸음인데 말이다.
만약 무당이 자기를 안다면 아마도 자기 집안에 있었던 일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을 터이니, 그래서 저렇게 용하게 알아맞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러나 자살한 걸 못 알아맞히고, 누가 죽인 것처럼 말하는 걸 보니 어쩌면 자기를 모르는 것 같이도 생각되어 아리송했다.
굿을 하도록 은근히 유도하느라
그렇게 정중하게 나오는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 결론은 뻔한 것이어서,
"예, 잘 알았어요.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집에 가서 남편과 상의해서 곧 연락을 드릴게요" 하고
오월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돌아가서 남편에게 무당이 한 말을 자세히 들려주었더니,
서문경은 시종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얘기가 끝나자,
"그 무당 용하다... 시키는 대로 해보지 뭐"
하고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지
혼자서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억울하게 죽어도 보통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라고?
음- 누군가 목을 졸라서 죽인 것 같다고 그래?"
"글세, 그러지 뭐예요. 다른 것은 다 알아맞히는데, 그 점은 틀리더라니까요"
"아니야, 틀리지 않는지도 몰라"
"뭐라구요?"
오월랑은 약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니까"
"당신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그럼 송혜련이가 자살을 한 게 아니고, 누가 죽였다는 거예요, 뭐예요?"
"글쎄, 그렇다니까"
"어머나"
오월랑은 어이가 없는 듯 입이 딱 벌어지기까지 하며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든다.
"나도 말이야 아무래도 미심쩍었다구.
송혜련이가 잔치를 하루 앞두고 자살을 할 이유가 없거든.
그런데 무당까지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그 말이 틀림없을 거야. 그리고 이제 내가 얘기하겠는데, 글쎄 춘매가 뭐라 그러는가 하면 월미가 의심스럽다는 거야"
"월미가요? 왜요?"
"송혜련이를 월미가 무척 미워했었다지 뭐야.
남편을 배반한 년이라고... 심지어 그런 년은 죽여 없애버려야 된다고까지 하더래"
"어머나, 월미 제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송혜련이를 미워했을까... 이상한데요"
"그래서 말이지, 내가 월미한테 직접 물어봤었다구.
혹시 네가 송혜련이를 죽인 게 아니냐고.
얼마 전에 유령이 월미한테 나타났다고 해서 내가 불러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잖아. 그때 당신이 바깥으로 나가버린 뒤에 캐물어 봤었지 뭐야"
"그랬더니 뭐래요?"
"절대로 자기는 안 죽였다는 거야.
조금 미워하기는 했지만 뭣 때문에 그런 무서운 일을 저지르겠느냐고 딱 잡아떼는데 보니까 거짓말이 아닌 것 같더라구. 말하는 투를 보면 알 수 있잖아"
"그렇죠. 월미가 설사 송혜련이를 미워했다 하더라도 죽이기까지야 하겠어요. 어림도 없는 일이죠"
"그리고 재미있는 게 월미는 뭐라 그러는가 하면 말이야, 춘매가 오히려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건 또 어째서요?"
"송혜련이에 대해서 가장 질투를 느낀 사람이 춘매라는 거야.
춘매가 내 일곱 번째 마누라가 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나.
허허허... 그런데 송혜련이한테 그 자리를 뺏기게 되어서 몹시 질투를 했다지 뭐야. 그러니까 만약 송혜련이가 자살을 한 게 아니라면 춘매가 죽였을 게 틀림없다고 하더라니까"
오월랑은 몹시 기분이 언짢은 듯 바짝 표정이 굳어들며,
"흥! 그년 분수도 모르고 제까짓 것이 입곱 번째로 들어앉겠다고? 나 참 같잖아서..." 하고 내뱉는다.
서문경은 좀 머쓱해진다.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지껄였다 싶은 것이다.
오월랑은 거침없이 말한다.
"춘매 그년이 범인에 틀림없을 것 같다구요. 내 생각에도..."
서문경은 아무 말이 없다.
"여보, 춘매를 다그쳐 봐야겠어요.
집안에 살인자가 있는데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구요"
"다그쳐 봐야지"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말투가 시들하다.
"내가 다그쳐 볼께요. 당신은 안되겠다구요. 적당히 봐줄 것 같다니까요"
오월랑의 말에 서문경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러라구"
하고 승낙을 한다.
* 계속 123회~~
첫댓글 어느 날,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강남에 나가게 되었다. 커피숍에서 친구
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 편 자리에 정말 야하게 옷을 입은 여자가 섹시한
포즈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평소 여자를 돌보듯 하는 나도 결코 눈을 돌
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여자가 피던 담배를 던지니 담배가
세로로 딱 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우연이겠지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
데 잠시 후 그 여자가 다시 담배를 물고는 몇 번 빨더니 담배를 던졌다. 그
러니 또 담배가 세로로 딱 서는 것이었다. 너무도 신기해 그녀에게로 다가가
서 물어 보았다
" 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요, 어떻게 하면 담배를 그렇게 세울 수 있
습니까? "
“ 내가 빨았는데 지 까짓 게 안 서고 배기겠어요?"
푸하하하하하하하
옛날 개그네...70이 넘은 노인네는 백약이 무효...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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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혜련귀신이나 잡아야지 ㅎㅎㅎ
푸닥거리를 할 모양이네요
근데,이제 불똥이 춘매한태로...
어찌 될지 아리송해 ?
추천을 꾸욱~
아직 뜨겁네요
감사합니다
추천 콕~~
감사합니다
콕
고맙습니다
월미는 토끼고
춘매가 뒤집어 써~
그럼 안되지요
추천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