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신기남 의장이 아버지의 헌병복무 사실을 인정했고 이어 이미경 의원 역시 뒤를 따랐다. 이러한 여권의 친일행적은 인터넷의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규명에 따라 점차 밝혀지고 있다.
아직도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김희선 의원의 독립군 가계 사칭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서로 정보를 더해가며 서서히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김희선 의원이 여권의 과거사 규명의 총대를 메고 있다는 점에서 만약 그가 독립군 가문을 사칭했다면, 이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사를 규명하겠다는 사람의 과거사 역시 투명해야 그 소임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김희선 의원의 독립군 가문 사칭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벌써 수개월 이상, 수많은 네티즌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분석한 내용을 총정리한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옮겨지고 있다. 브레이크뉴스 편집진이 판단하기에, 정확히 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짚어준 글이라 가감없이 게재한다.
특히 김희선 의원이 자신의 작은 할아버지라 주장한 김학규 장군의 자서전에 모친 재가 사실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는 등, 김의원의 주장과 다른 내용이 많은 점은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다.
1. 김희선의원의 본관은 김해김씨인가 의성김씨인가.
각종자료에는 김 의원의 본관이 김해 김씨(열린우리당 총선후보 검색란) 혹은 의성 김씨(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인물검색 난)로 기재되어 있는데 둘 중 어느 하나는 거짓말일 뿐만 아니라 둘 모두 거짓말일 수도 있다.
김희선 본인은 의성김씨가 진짜 자신의 본관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의 조부, 부친, 오빠, 김희선 본인 어느 누구도 의성김씨 족보에 나타나있지 않다고 알려져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2. 김희선의 출생지는 평남평원인가 만주봉천인가.
거의 모든 자료, 거의 모든 인터뷰 기사에서 김희선의 출생지는 평남평원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온 가족이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자신의 출생에 관한 주장과 상반된다.
이에 대해 김 희선은 ‘본적은 평남 평원이고, 태어난 곳이 만주 봉천’이라고 주장하며 평남 평원은 김희선의 ‘본적지를 근거로 하여 보좌진들의 착오에 의해 기재된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희선이야기에서 자신은 ‘아주 극히 작은 일이라도 틀렸으면 제 자리에 놓는 일, 하다못해 이정표 영어 스펠링이 틀렸으면 반드시 전화해서 고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김희선의 성격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변명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특히 인터뷰기사에서는 예외없이 평남평원을 출생지로 밝히고 있다. 김희선 의원의 경우는 인터뷰를 보좌진이 한다면 몰라도 김희선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한다면 모든 인터뷰기사에서 예외없이 평남평원이 출생지로 기록된 것은 보좌진의 착오라는 변명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3. 김희선 의원은 김학규 장군의 손녀 혹은 종손녀인가.
김 의원이 자신의 할아버지 혹은 작은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김학규 광복군 제3지대장의 본관과 김의원 자신의 본관이 다르다. 김 의원은 김해 김씨 혹은 의성 김씨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비해 김학규선생은 안동 김씨(야후, 네이버, 드림위즈)라고 알려져 있다.
김학규 장군은 일제시대 광복군 제 3 지대장으로서 독립투쟁의 선봉에서 활약하였던 유명 독립운동가로 김희선의원이 본인과 혈연적으로 무관한 이분을 자신의 조상으로 사칭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혹이 있다.
김희선의 주장에 의하면 김희선의 증조할아버지(김순옥-의성 김씨)와 증조할머니(선우순) 사이에 김성범과 김학규형제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김성범은 의성 김씨 호적에 올라가 있었고 김학규는 나이가 너무 어려 아직 호적에 올라가지 않은 상태에서 증조할아버지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증조할머니는 곧 두 아들을 데리고 안동 김씨 집안으로 재혼을 하였으며 김학규는 이후 안동김씨 호적에 올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학규 장군 역시 ‘안동 김씨’ 족보에 올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어 이 주장을 신뢰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4. 김학규 장군의 손녀라고 칭하다니..
김희선의 홈피 '살아온 길'을 비롯한 많은 인터넷 자료와 적지않은 인터뷰기사에서 김희선 본인을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장군 손녀'라고 밝히고 있다..
김희선 자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작은 할아버지일 뿐인 김학규 장군을 자신의 조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손녀'라고 하면 직계를 생각하는데 '작은 할아버지의 손녀'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웃어넘기기도 어려운 황당한 일이다.
이에 대하여 김희선은 자신이 “김학규의 병수발을 드는 등 친조부나 다름없었다”고 설명했다.
친조부나 다름없다고 생각되면 친조부라고 말하여도 된다고 믿는 것인지, 잘못된 것 인줄 알면서 무턱대고 우겨보는 것인지 의문이다.
5. 당숙을 삼촌이라 칭하다니..
김희선은 독립군 조상 사칭의혹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자리에서 "언론보도를 보고 삼촌(김일진씨)과 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다. 자신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5촌 당숙되는 김일진씨를 ‘삼촌’이라 칭한 것이다.
이는 김희선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작은 할아버지되는 김학규 장군을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칭한 것과 엇물려 의문을 낳고 있다.
이러한 김희선의 호칭법이 김희선 가족 고유, 특유의 호칭법인지, 아니면 계촌에 대한 무지의 소치인지가 궁금하다.
6. 김희선의 할아버지라는 김성범과 작은 할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김학규의 항렬이 다른 이유는..
친형제라는 김성범과 김학규의 이름은 돌림자로 되어있지 않다. 증조할머니가 김학규의 이름을 짓기도 전에 재가를 하여 안동김씨인 의붓아버지가 이름을 지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관습이나 오늘날의 관행에 비추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름은 태어나기도 전에 혹은 태어난 직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7. 조선말에 애 둘 딸린 증조할머니가 재가를 하였다..
김희선의 주장에 의하면 김희선의 증조할머니 선우순은 남편 김순옥이 사망하자 둘 사이의 소생 김성범과 김학규 형제를 데리고 같은 동네의 안동 김씨에게 재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과부의 개가가 처음으로 허용된 갑오개혁(1894년)으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애 둘 딸린 30대 후반의 과부의 개가가 이루어 졌다니..
그것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 양반가문인 의성김씨와 안동김씨 사이에 애 둘 딸린 과부의 개가가 이루어 졌다니..
그것도 같은 동네의 의성김씨와 안동김씨 사이의 개가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세대만 하여도 결혼 한 달 만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유복자를 낳아 기르며 평생을 수절하였다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남편이 사망하여 3년 상도 치르지 않은 30대 후반의 과부가 같은 동네에서 재가를 하였다니..
당시 시대상황에 비추어 ‘돌쌍놈, 돌쌍년’ 소리를 들어 마땅한 이러한 재가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 양반가문인 의성김씨와 안동김씨 두 집안 모두 용인하였단 말인가..
또 그 시절에 재가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집의 씨는 그대로 두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애 둘을 데리고 개가를 하다니. 의성김씨 집안의 시댁식구들은 무었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는 이로부터 50여년 후 김희선의 어머니 조인숙이 김희선은 작은 아버지 댁에 맡기고 동생 광희는 큰아버지호적에 올리고선 장씨 성을 가진 남자에게 재가하였다는 김희선의 ‘부끄러운 고백’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김희선의 다소 황당한 이런 주장을 사실로 받아 들이고 김학규의 자서전과 조화하여 볼때, 증조모가 재가한 안동김씨 김기섭은 의사로서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양가집 규수를 들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지위와 부를 지녔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도 애 둘 딸린 과부를 들여 한 애는 의성김씨로 두고 다른 애는 안동김씨로 호적에 올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8. 백파자서전의 내용과 맞지 않으니..
증조부가 사망하자 증조할머니가 둘 사이의 소생 김성범과 김학규 형제를 데리고 같은 동네의 안동 김씨에게 재가하였다는 김희선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백파의 자서전과 조화하여 추론하여 보면, 김성범(1894년생)이 7살에서 10살 사이, 김학규(1900년생)가 1살에서 4살 사이에 증조부 의성김씨 김순옥이 사망하자 당시 35세에서 38세 사이였던 증조모 김순옥은 같은 동네의 안동김씨 김기섭에게 재가한다.
당시 김기섭의 나이는 50세와 53세 사이였으며 김기섭은 당시 16세에서 19세 사이이던 장남을 비롯한 전처소생의 3남 2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의붓아버지 김기섭 마져 5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당시 선우순은 39세, 김성범은 11세, 김학규는 5세, 김기섭의 전처소생 장남은 20세였다.
그런데 백파의 자서전에는 자신의 탄생시 부모의 나이, 가족관계, 부친의 직업, 부친 타계 후 장형의 호주 승계 등 자신의 탄생 배경과 가족사를 비교적 자세히 기술하고 있으나 모친의 재가사실은 빠져있다.
또 과거 김학규 장군이 직접 쓴 백파의 일대기를 접한 바 있던 칼럼니스트 손충무씨 또한 김학규의 자서전 원고 속에도 어머니가 안동 김씨 집안으로 재혼하여 왔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또 김학규장군의 부인이자 열혈 광복군 출신 여걸이었던 오광심 여사 역시 손충무와 몇차례 만났을 때, 남편 김학규와 함께 중국에서 모시고 살던 시어머니의 재혼 사실이나 시아버지가 남편의 의붓 아버지라는 사실을 증언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백파가 너무 어린 시절의 일이라 의붓아버지를 친부로 잘못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자신의 2대 방계 후손이라는 김희선도 알고 있는 사실을 백파만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 양반가의 가풍에 비추어 부끄러운 모친의 재가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려 했을 가능성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죽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는 것과 대인물접(對人物接)에 성실(誠實)을 다하는 데 주력’하는 철학으로 생을 일관한 백파의 인품과 기개에 비추어 타당한 추론은 아닌 듯하다.
결국 백파자서전의 내용과 김희선의 주장 가운데 하나는 거짓이라는 결론이 타당 한 듯 한데..
누구의 주장이 거짓인지는 의문이다.
9. 임산부가 재가를 하였다..
처음 조상사칭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김희선 의원의 보좌관은 도깨비뉴스와의 인터뷰(2004년 7월 22일 오후 3시 경)에서 김학규 장군과 김 의원의 본관이 다른 이유에 대해 "김 의원의 증조할아버지 김순옥(의성 김씨)이 사망하고 증조할머니 선우순이 재가하면서 큰 아들 김성범과 작은 아들 김학규를 데리고 갔다"며 "재가한 곳이 안동 김씨 집안이었으며, 확인한 바로는 그 당시 김학규는 (증조할아버지의)유복자였다.” 해명하였다고 한다. 재가후에 김학규가 태어났으니 김학규는 자연스럽게 안동김씨로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 하나 있는 30대 후반의 과부가 사별한 남편의 씨를 배에 잉태하고서 같은 동네의 다른 집안으로 재가하였다는 주장은 너무나 엽기적이어서 의혹을 더욱 부채질 하였다.
이 경우 김희선의 증조모는 화냥년 이라는 비난도 과분한, 인간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연의 질서를 깨트리는 패륜을 저지른 것이 되는 것이다.
또 이 경우 재가할 때 뱃속에 든 애(김학규)가 안동 김씨의 혈육인지 의성 김씨의 혈육인지는 선우순 말고는 아무도 알수 없는 일인데 김희선이 알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유교의 전통이 아직 강하였던 구한말에 임신부가 재가를 하였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그게 무슨 가문의 자랑이라고 대대손손 자손에게 구전되어 증손녀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궤변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것이다.
아마도 재가할 때 유복이었다고 주장하면 백파가 안동김씨로 된 점이 자연스럽게(?) 해명된다고 믿고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궤변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해명이 의문을 더욱 부채질하자 김의원의 보좌관 정창수씨는 2004년 7월 23일 도깨비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는 "(22일 자)도깨비 뉴스의 기사 가운데 김의원의 증조모가 김학규 장군을 임신한 상태에서 재가를 했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며, 자신이 “22일 통화에서 그렇게 말했다면 이는 자신이 의미 전달을 잘못했거나 도깨비 뉴스측이 잘못 받아 들인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선 의원도 해명기자회견에 나서 “김학규 장군과 내가 본관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증조할머니가 재가 하면서 비롯된 것”이라며, 증조할머니가 재가를 하면서 친할아버지 김성범과 김학규 장군을 함께 데리고 갔는데, 김성범은 이미 김씨로 호적에 올라 있는 상태였고, 동생인 김학규 장군은 나중에 의붓아버지인 안동김씨로 호적에 올랐다고 주장하였다.
임신상태에서 재가를 하였든 애를 놓고 나서 재가를 하였든 당시 시대상황에 비추어 믿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10. 김학규의 친아버지는 누구인가.
김희선의 주장에 의하면 김학규의 친아버지는 김순옥(의성 김씨)이 되고, 김학규의 자서전에 의하면 김기섭(안동 김씨)이 된다. 유복상태에서 재가를 하였는가 아닌가와 관련하여서도 김학규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런데 김희선이 직접 쓴 글들을 읽어보면 다른 집안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일어나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김희선 가에서는 반복하여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김학규가 김희선의 증조부 김순옥의 유복자라고 하는가 하면 김희선의 여동생 광희도 김희선의 아버지 김일련의 유복자라고 주장한다.
애 둘 딸린 증조모가 증조부 사후 곧 재가하였다고 하는가 하면, 김희선의 모친 조인숙 역시 애 둘을 버려두고 찢어지게 가난한 장씨 성을 가진 남자에게 재가를 한다. 김구선생에 의해 중국에 밀파되어 행방불명되어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김희선의 아버지 김일련을 별로 기다려 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나중에라도 귀국하면 어찌하려고 몇 년 기다려 보거나 행방을 수소문하여 보지도 않고 미련없이, 애들을 버리고 재가하였는지 의문이다.
또 김희선의 할아버지라는 김성범은 독립군 ‘비밀’자금책이었고 아버지라는 김일련은 김구선생의 ‘비밀’결사대였다고 주장한다. 남달리 비밀이 많은 것에 집안의 어떤 말못할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그 처럼 남달리 비밀이 많게된 비밀을 밝혀주면 좋으련만.
혹 김희선은 한번들은 개념이나 용어를 반복하여 써먹는 습관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희선아~ 차라리 선우순 증조할머니가 김순옥증조 할아버지 몰래 ,김기섭 동네 아저씨랑 바람피워서 김학규를 임신했다고 해라 .그러면 딱 맞네..앞 뒤가....차마 그렇게는 말 못하겠지? 그러면 니가 고짓말 했다고 이실직고해라...불쌍한 것...쯧쯧쯧...니가 살라고 웃대 어른들을 다 똥칠하고 자빠졌냐?....끌끌끌..
첫댓글 이걸 퍼 나르는 게 더 재미있는 결과를 낳을 것 같군요. ^^
김희선 자수하여 광명찿자!! 그런데 당숙한테 삼촌이라고 불러주는 호칭은 그럴수도있습니다. 친근감을 표시하는 호칭으로써 지금도 당숙을 3촌이라부르고 당고모를 고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만쉐이 님 , 수고 많아요. 희대의 사기꾼 희선의 정체가 명명 백백하게 들어 나는군요. 끝까지 추적하여 사기꾼을 추방합시다.
희선아~~거짓말도 자꾸하면 습관된다...이쯤해서 사실고백하고 사죄할 용기는 없냐?
지금도 50 대 이상에게는 이혼 개가가 부자연 스러운데, 100년 전 증조모, 50 년전 모친의 개가를 떠 벌리는 희선이는 정신 착란 증 환자라고 판정. 사기 행각이 탄로 나니까 증상이 더 심해지고 발악까지 하고 있군요
요즘들어 브레이크 뉴스의 활약이 눈부시네요..
희선아~ 차라리 선우순 증조할머니가 김순옥증조 할아버지 몰래 ,김기섭 동네 아저씨랑 바람피워서 김학규를 임신했다고 해라 .그러면 딱 맞네..앞 뒤가....차마 그렇게는 말 못하겠지? 그러면 니가 고짓말 했다고 이실직고해라...불쌍한 것...쯧쯧쯧...니가 살라고 웃대 어른들을 다 똥칠하고 자빠졌냐?....끌끌끌..
정말 어이 없는 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