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석
옛날 사대부고에 근무할 때 정문 초입에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안에는 소박한 정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정자의 이름은 세심정(洗心亭)이었죠. 출퇴근 길에 정자를 보면 "마음을 씻는다."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오곤 했습니다.
옛 선비들의 마당 한구석, 혹은 산사(山寺)의 입구의 바위에 세심석(洗心石)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곤 했습니다. '마음을 씻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이 바위는, 그곳을 지나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 없이 맑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우리는 외출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손을 씻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와 세균을 닦아내며 청결함을 유지하려 애쓰지요. 하지만 하루 동안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에 부딪히며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먼지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마음에도 세수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투명한 유리잔과 같아서, 가만히 두어도 시간이 흐르면 세상의 소란과 걱정이라는 먼지가 내려앉습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생긴 생채기, 남과 비교하며 느꼈던 초조함, 그리고 스스로 자책하며 만든 어두운 얼룩들…. 이런 것들을 씻어내지 않고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 우리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각자의 세심석이 필요합니다.
세심석은 거창한 바위가 아닙니다. 옛사람들은 돌에 글자를 새겨 마당에 두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심석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퇴근길 버스 창밖을 보며 생각하는 깊은 고뇌가 세심석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짓는 환한 미소가 마음을 닦는 물길이 되기도 합니다. 잠들기 전 일기장에 적는 짧은 한 문장이 단단한 세심석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씻는다는 것은 대단한 고행이 아닙니다. 그저 오늘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들을 붙잡지 않고, 흐르는 물에 낙엽을 띄워 보내듯 ‘그럴 수도 있지’하며 놓아주는 것입니다.
돌 위에 흐르는 물이 이끼를 씻어내듯, 마음을 닦아내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오늘 내가 일구어낸 작은 성취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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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지금 나의 세심석은 뭘까?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