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와 로고의 전쟁]
로마 군단기 ‘벡실럼’
 
천하무적 상징
헤라클레스, 神보다 더 인기
 
헤라클레스 군단
39년 칼리굴라 황제 22군단 이어 105년 이집트 2군단서 깃발 사용
머리 아홉 달린 ‘히드라’ 쥐락펴락, 별자리는 흉상만 새긴 군단기와 달라
사자 군단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16군단 등 채택
헤라클레스 용맹 군대 상징으로 반인반마 ‘궁수자리’도 널리 보급
헤라클레스 자리. 필자 제공 |
로마 군단을 대표하는 여러 깃발 가운데 독수리기(아퀼라)를 제외하면 가장 서열이 높은 깃발이 ‘벡실럼’이다. 군단의 상징(문양·숫자·지역·구호 등)을 새겨 넣은 직사각형의 천을 창끝에 매단 것으로 우리말로는 ‘군단기’가 가장 적절하다. 오늘날 ‘부대기’의 먼 조상쯤 된다. 그리스 방패에 버금간다.
지난 회까지 군단의 수호신이나 군단을 만든 황제의 별자리를 사용한 사례를 알아보았다. 여기까지가 그 출처를 알 수 있는 것들이고, 나머지는 그저 짐작할 뿐 명문화된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신을 포함해 그 어떤 존재보다 더 인기 있었던 대상이 있었다.
신보다 더 인기 많았던 영웅
‘헤라클레스’는 당연히 수호신 깃발에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제우스와 인간의 아들로 반신반인(半神半人)이었기 때문에 좀 다르고, 무엇보다 로마시대는 명분은 그리스 계승이었지만 실제로는 황제를 포함한 인간의 위상이 진일보하며 상대적으로 신의 위상이 축소됐다는 측면에서 별도의 영역으로 다루고자 했다. 다음에 소개한 이야기들은 고대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사례다.
궁수자리. |
①헤라클레스 군단
헤라클레스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모두 특별한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헤라는 그가 자기 자식이 아니란 이유로 온갖 저주를 퍼부었고, 마침내 헤라클레스는 미쳐서 아내와 자식까지 죽이는 실수를 범한다. 그러나 신탁에 따라 12과업을 수행하고 최고의 영웅이 되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가 강을 건너면서 네수스라는 켄타우로스에게 아내(데자니라)를 건네줄 것을 부탁했는데, 네수스는 그녀를 태운 채 도망치려 했다. 이를 목격한 헤라클레스는 화살 한 발로 네수스를 죽였다. 네수스는 죽기 직전 자신의 피를 데자니라에게 주면서 그것이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고 했다. 언제든 그의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 옷에 피를 묻히면 영원한 사랑을 얻는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후 데자니라는 헤라클레스가 하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의심이 들어 네수스의 피를 그의 옷에 발랐는데 피의 독이 헤라클레스를 죽이고 말았다. 이를 본 그의 아버지 제우스는 아들의 주검을 하늘로 옮겨 최고의 영웅을 영원히 기억토록 했다.
헤라클레스를 깃발로 사용한 군단은 둘이다. 하나는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39년 독일에서 창설된 22군단이고, 다른 하나는 트리야누스 황제에 의해 10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창설된 2군단이다. 하늘의 별자리는 사자 가죽을 쓰고 아르고스의 머리 아홉 달린 괴물 히드라를 움켜쥔 채, 곤봉으로 내리치려는 모습이어서 흉상만 새긴 군단기와는 차이가 있다.
사자자리. |
②사자 군단
황도 12궁의 별자리에는 백수의 왕 ‘사자’ 자리도 있다. 네 번이나 등장하니 적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황소는 그렇다 해도, 염소보다도 적으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황금사자 모습으로 네메아의 골짜기에 떨어졌다. 유성이 변해 만들어진 이 괴물은 보통의 사자와는 달리 훨씬 크고, 강력했으며 성질도 포악해 사람들을 괴롭혔다. 헤라의 미움을 사 12가지 모험을 해야 했던 헤라클레스의 첫 과업은 이 사자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활과 창, 곤봉 등을 써봤지만 그 어떤 무기도 사자의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무기를 포기하고, 레슬링의 그라운드 기술을 사용해 사자를 제압했다. 헤라클레스가 레슬링의 창시자가 된 사건이었다. 그 후로 네메아는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고, 헤라클레스는 어떠한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사자 가죽을 갑옷과 투구처럼 쓰고 다니며 천하무적이 됐다. 제우스는 아들 헤라클레스의 용맹을 기리기 위해 사자를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
사자 군단은 카이사르가 8군단,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16군단(Gallica)을 창설했고, 후대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6군단과 16군단(Flavia Firma) 창설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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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궁수 군단
반인반마(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는 활을 가지고 야산을 돌아다니는 거칠고 야만적인 종족인데, 그중 유독 케이론만은 달랐다. 그는 크로노스와 님프 사이에서 태어났다. 크로노스 아내의 복수를 두려워해 스스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택했다 한다. 그는 기품 있고 착하며 현명하여,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음악·의술·수렵·예언술을 전수받아 페리온 산에 살면서 이런 재능을 신과 영웅들에게 가르쳤다. 신과 영웅들의 스승이었던 셈. 헤라클레스는 천문학을, 아킬레우스는 무술을 배웠다고 한다. 한번은 헤라클레스가 켄타우로스와 싸우다가 화살로 케이론의 발목을 맞히는 실수를 했다. 그런데 그 화살엔 최고의 고통을 수반하는 치명적인 히드라 독이 묻어 있었는지라, 불사의 몸인 케이론은 죽지도 못하고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불사의 몸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양보하고는 죽음을 택했다. 이를 본 제우스가 케이론을 불쌍히 여겨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삼았는데 그 모습이 활을 쏘는 켄타우로스여서 ‘사수자리’ 또는 ‘궁수자리’라 부른다. 다른 전승에는 케이론이 아르고호를 타고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제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별자리로 만들었다고도 한다.
켄타우로스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군단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197년 창설돼 파르티아와 전쟁하기 위해 동부전선에 투입된 1군단(Parthica1)과 2군단(Parthica2)뿐이다. 파르티카(Parthica)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가장 후기에 창설된 1·2·3군단의 이름으로 세 군단은 모두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파르티카는 파르티아 정벌과 메소포타미아 복속을 위해 조직됐고 이 중 1·2군단은 ‘켄타우로스’를, 3군단은 ‘황소’를 상징으로 사용했다.
여기서 소개한 세 가지 깃발의 공통점은 헤라클레스다. 그에게 군단의 명운을 맡겼다면, 최소한 상징의 빈도로는 다른 상징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우스가 청혼을 위해 잠깐 몸을 빌렸던 황소가 이후 괴물이 되자, 헤라클레스가 처치했다는 것까지 더하면 군단기 중 단연 으뜸이다, 그림·사진=필자 제공
<윤동일 육사 북극성연구소 책임연구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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