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단상
팔월 첫째 일요일은 입추였다. 전날은 함양 인산가와 상림을 둘러 온 1박2일 대학 동기 모임의 여정이 있었다. 부부가 동행한 시간이었으나 나는 혼자 걸음을 하게 되어 끼니마다 반주를 즐겼다. 심지어 숙소서 아침을 든 호텔 조식에서도 맑은 술을 잔에 채워 속을 풀고 점심 자리 어탕 맛집에서도 운전대를 잡지 않아 잔은 여전히 비웠다. 귀가해 한밤중 깨어 생활 속 글을 남겼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며 약차를 끓이면서 산행 행선지를 물색해 봤다. 올여름 막바지 영지버섯을 채집하러 길을 나서 볼까 싶었다. 엊그제 다녀온 용제봉이나 불모산 기슭으로 가봐도 되고 의림사를 찾아 활엽수림을 누비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가 더위를 잊고 와도 될 듯했다. 그런데 한낮은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더위가 절정이라 산행은 후일로 미루고 집에 머물렀다.
마침 아내는 평소 다니는 도심 참선 도량에서 법회가 있는 날이라 혼자 지내 누구로부터 간섭이나 통제가 따르지 않았다. 집에는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둔 책이 쌓여 있어 시간이 무료하지도 않을 듯했다. 아내가 집을 비운 아침나절은 독서삼매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때를 맞았다. 국수를 끓여 요기를 때우려다 번거로워 아침에 남긴 식은 밥을 데워 비빔밥을 해 먹었다.
점심 설거지를 마쳐 놓고 북쪽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니 정병산은 창원대학을 둘러싸고 여름 하늘엔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거리의 높이 자란 메타스퀘어 가로수에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쪽 베란다에는 올여름 내가 산행에서 채집한 영지버섯들이 말라가는 중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여름 산행에서 매번 찾아낸 영지버섯의 양은 상당해 한약방 건재를 방불하게 했다.
영지버섯을 채집하면서 땀을 흘리기도 했지만 부수적으로 따른 삼림욕을 절로 누렸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몸을 담가 더위를 잊고 숲을 빠져나왔다. 찾아낸 영지버섯은 잘게 조각내어 말려서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건네질 테다. 형제가 우선순위고 주변 지기들 가운데 지병이 있는 분이 그다음 차례가 되지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봉사와 베풀 수 있는 일거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입추로부터 보름 뒤 다가올 절기가 처서다. 내가 올봄에 예상하지 않은 텃밭을 경작하는데 그즈음이면 마음도 몸도 바빠질 듯하다. 여름 채소와 농사는 거의 끝물이 되어 간다. 이제 가을 푸성귀를 준비해야 할 때다. 씨앗을 준비함과 동시에 거름을 마련해 뿌려 땅을 일구어야 한다. 전 경작자 할아버지가 고령으로 옮기지 못한 거름 포대를 둘러메 언덕을 올라 밭에 뿌릴 작정이다.
할아버지로부터 경작을 의뢰받은 밭뙈기가 세 구역인데 고구마와 콩은 잘 자라고 있다. 맨 아래 채소를 심어둔 밭에서 열무 농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콩밭이랑 사이짓기로 심은 열무는 잘 자랐으나 그 밖의 열무는 싹이 잘 텄으나 두 차례나 벌레에게 보시하고 말았다. 파종 후 부직포를 덮든지 약을 뿌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았으니 거둘 열무가 없어 이웃과 나누지 못했다.
가을에 심을 채소는 몇 가지 구상해 놓았다.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담그지 않아도 무와 배추는 기본으로 심을 요량이다. 무는 뿌리보다 무청으로 시래기를 말려 먹을 셈이다. 배추는 키워 결구시킨 김장용이 아닌 겉절이나 풋나물로 쓸 참이다. 알타리도 심어 농사가 잘되면 이웃과 나누고 싶다. 쪽파와 아욱도 몇 이랑 심어 찬거리로 삼고 싶고 가을에 심을 씨감자도 마련해 놓았다.
말복과 겹친 광복절 무렵까지 더위는 열흘 안팎 누그러지지 않고 맹위를 떨쳐갈 테다. 그새 못다 다녀온 영지 채집 산행도 마저 하고 임도나 강둑을 걸어볼 생각이다. 산모롱이를 돌아간 어디쯤이나 강둑 언저리에서 가을이 오는 낌새를 느낄 수 있지 싶다. 순환하는 절기는 입추에서 말복이 지나면 처서가 다가올 테다. 텃밭 농사도 농사지만 내 마음의 밭도 부지런히 일구어야겠다. 22.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