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재회
강 문 석

팔순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라면 물으나마나 인생황혼에 이른 사람들이다. 서로 모르는 손님들 사이의 서먹함도 잠시 분위기는 곧바로 화기애애해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팔순 주인공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건배제의도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 축하연 참석자들은 고향의 죽마고우들과 동네 이웃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옛 직장에선 세 사람만이 참석하고 있었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주인공이지만 오늘은 완전히 달라보였다. 옛 직장 선배이기도 한 주인공은 지나온 세월에 맺힌 회포라도 풀고 싶었는지 적포도주를 연거푸 들이켜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물을 소개하겠다며 하객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신혼초부터 한 동네에 살아서 선배가 자랑코자하는 반려자에 관해선 나도 그 인품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골목길이 좁아 리어카가 못 다닐 때 연탄과 김장배추를 직접 머리에 이다가 나르면서 살림을 꾸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겸손하면서도 말없이 베푸는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 내빈들 중 상당수는 말하지 않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평생을 말없이 자신을 묵묵히 내조한 반려자가 선배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소녀처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짝지를 소개하다려다가 성에 차질 않았던지 선배는 갑자기 짝지에게 큰절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오늘 영광스러운 팔순잔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마님 덕분이라면서 큰절을 올렸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선배가 술김에 쏟아낸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까지 가슴이 아려왔다. 젊은 날 일찍 직장을 그만둔 선배는 나름대로 사업에 성공하여 부를 쌓은 재력가였지만 몸에 밴 근검절약은 여전했다. 10여 년째 와병중인 후배를 잊지 않고 문병하는 것만 봐도 선배가 인정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던 선배의 느닷없는 부음을 접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휴대폰이 울렸을 때 화면에 뜬 선배의 이름이 반가워 추석인사를 미리 하려는 줄 알았다. 내 쪽에서 먼저 흥분하여 너스레를 떨면서 반갑게 전화를 받았지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선배가 아니었다. 상주인 맏아들이었다. 목이 콱 메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연을 맺었다가 떠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선배는 달랐던 것이다.
30년 전 내가 어머니상을 당했을 때 본인이 직접 나서서 오룡산 묫자리까지 다녀오는 등 장례를 자기 일처럼 처리해주던 선배였다. 한 부락에 살기는 했지만 이미 그때 선배는 직장을 그만둔 뒤였는데도 그랬다. 10년 전 재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7백여 명 은퇴자단체를 덜렁 맡았을 때도 선배는 많은 걱정을 해주었다. 앞선 집행부 구성에 경합이 벌어졌을 때 반대편 캠프에 있던 나를 새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끌어넣은 게 그런 결과까지 낳고 말았다. 그때 30여 년 동안 사용해온 사무실 책걸상 두 세트는 내려앉기 직전이었지만 누구도 신경을 못 쓰는 형편이었다.
책걸상 상태가 그랬던 건 현직 사업소장들이 사용하고 나서 폐기하는 걸 받은 때문이었다. 선배가 좌천동 가구골목까지 직접 찾아가서 구입한 책걸상이 도착했을 때 그 정성을 길이 알리고자 기증자 이름을 새긴 철제명찰을 만들어 붙인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팔순잔치 다음날 전화를 받았을 때 지금 맡은 공사현장 감리업무가 너무 힘들어 직장을 옮기고 싶다며 선배는 새로운 곳을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러고 마땅한 곳이 생겨서 연락했더니 함께 옮기기로 한 멤버가 마음이 바뀌어서 못 가게 되었다면서 미안해했다.
건강을 위해서 그랬던지 선배는 이처럼 팔순인 지금까지 공사현장 감리업무를 계속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파크골프를 권한 사람도 선배였다. 젊은 날 골프를 시작했던 선배가 보기에도 파크골프는 매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노년에 체력단련과 여가활용에 좋다면서 직접 삼락공원과 가산공원 필드에서 파워골프를 가르쳐주었다. 언젠가 은퇴자단체 행사를 마친 후 몇이 어울려 행사장에서 가까운 선배의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직장에 입사하여 퇴직할 때까지 본인의 손길이 머물었던 사무용품과 공구 비품 그리고 월급봉투와 보직 명패들까지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소장하고 있었다.
돈을 들여 유리 진열장까지 만들어 2층의 방 하나를 작은 박물관처럼 꾸며놓고 있었다. 보통 정성을 들인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의 놀라운 집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순잔치 닷새 후 선배의 몸을 덮친 병마는 간질환이었다. 어떻게 몸속에 숨어있었기에 간은 미리 신호를 전혀 보내지 않았던 것일까. 침묵의 장기라면 흔히 췌장을 드는데 선배에겐 간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 처음엔 갑작스럽게 찾아온 극심한 복통을 체한 걸로 알고 치료했지만 증세가 호전될 리 만무했다. 간암 진단을 받고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을 찾아갔지만 환자가 밀려 돌아서야만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산삼성병원에서 겨우 수술에 임할 수 있었지만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병마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죽음을 선고받고 병원 문을 나서서 자신이 묻힐 유택을 찾아가는 선배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렇게 다급한 상황에서도 반려자에게는 완강하게 아들들을 부르지 못하게 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자신의 장지를 답사하러 직접 찾아가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선배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봉사 기회였는데도 놓쳐서 안타깝다. 빈소에서 선배의 생전 모습을 대하고 마주서는 순간 울컥했다. 혹시라도 옆에 선 아내가 울음을 터뜨릴까봐 망자에게 올리는 술잔을 잡고서 시간을 지체하며 감정을 수습했다.
영안실엔 부산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조화도 보였다. 선배는 부산시가 취급하는 위생분야 청소용역업을 오래도록 해온 인연이 있어서 보내온 것 같았다. 그러고 맏사위가 현재 경기도청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밤이 지나고나면 선배는 어려서 떠나온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아니 하늘나라로 떠나는 것이다. 이제 선배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쪽 세상에서 만나자는 인사뿐이다.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있으니 그렇게 조우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난 알고 있다. ‘천상재회’ 노랫말처럼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못다 한 얘기 나누면서 지상에서 선배에게 입은 은혜 보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첫댓글 누구나 다 한 번 가고야 말 것이면서도 왜 그리 서글픈지---98세 南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