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94장 (구 102장) / 고린도전서 14 : 26 - 4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9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14장 26절 – 40절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아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까지 신령한 은사에 대해 말씀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방언과 예언에 대하여 계속 말씀하시면서,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신령한 은사를, 질서를 따라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질서대로 하라." " 제재하라." 는 말씀으로, 생각나는 대로 말해서는 안 되고, 마음에 느끼는 대로 행동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 26절 – 33절에서 예배드릴 때에 질서를 지킬 것을 상세히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면서 교회의 건덕과 불신자의 전도를 위하여 예언,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장려하시는데 교회의 건덕을 위해서 하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라도 교회의 덕을 위하여,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그 성령의 은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과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은 덕을 세우기 위하여하라."
다시 말씀드리면 예배는 순서와 질서가 있게 드려져야 함을 강조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살피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순서와 질서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유익하도록 하기 위해서 순서와 질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는 설교의 은사가 개발되기 전 이었기에, 주된 은사가 방언이 아니면 예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은 반드시 통역을 하게 함으로, 결국 예배드릴 때는 예언의 은사만을 인정한 것입니다. 예언이 무엇입니까? 예배 인도자 – 설교자가 성령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 바로 예언입니다. 이는 복음의 내용과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언을 하여도, 설교를 하여도, 그것을 질서 있게 잘 조절하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성령님께서 감동하셨을 때에도 무례하게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하고, 얼마든지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면서 은혜를 나누며,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3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의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여기서 무질서는 악한 운동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일도 그 일을 법대로 하지 않을 때에 오는 것이 바로 무질서입니다.
또한 무질서는 사람들의 무례함에서 오기도 합니다. 무례란? 사람이 자기 지위를 법대로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어지러움, 즉 질서가 없다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지러움과 혼란은 무법, 무질서와 대립이 아닌 화평 - 준법, 질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혼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일치와 질서를 유지하시면서, 그의 지으신 세계와 교회를 일정한 목적과 질서에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는 무질서 상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무질서하여 혼란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 교회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 34절, 35절 말씀에서 교회에서의 여자의 위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특별히 예배에서 여성들의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공식예배에서 여성은 말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입니다. 공식 설교에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묻는 것조차 교회에서 묻지 말고,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영적으로 뒤떨어져서가 아닙니다. 그 당시 특수한 고린도의 사회 상황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고린도라고 하는 도시에는 수많은 이방신전들이 있었는데 그 신전의 사제들이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제들이 고급 창녀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만일 교회에서 이방신전에서 하듯이 여자가 나가서 예배를 인도하거나 혹은 사람들을 가르치면, 교회도 이교 집단처럼 음란한 곳이라는 의혹을 받기 쉽기 때문에 여성들이 앞에 나서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 오늘의 상황에서 적용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 말씀에 "여자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모든 규례가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면 성도들은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됨을 당시의 율법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 37절 – 40절에서 모든 일을 질서대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 사도 바울은 방언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체험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더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은사를 다른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적당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언은 적극적으로 사모하고, 방언은 소극적으로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방언을 금한 것이 아니고, 방언의 폐단을 들어 경계한 것뿐입니다. 절제와 질서는 신령한 세계에서 구비할 요소입니다. 이런 절제와 질서를 통해 교회의 건덕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직분을 잘 감당하고, 예배를 잘 드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역을 감당할 때에도 물론이거니와 성령의 은사생활을 하는 모든 일까지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교회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함으로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