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명(孔明)의 공성지계(空城之計) -
〔공성지계(空城之計)란?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혼란에 빠뜨리는 계책〕
공명(孔明)은 성루(城樓)에서 내려와, 군사(軍士)들에게 명을 내린다.
"모든 군사(軍士)들은 들으라. 지금(只今)부터 성(城)에 꽂혀 있는 모든 깃발을 내려라. 그리고 모든 군사는 소리없이 숨어 있으라. 만일에 명(命)을 거역(拒逆)하고 함부로 나다니는 자가 있게 되면 참형(斬刑)으로 다스리겠다."
"........"
"그리고 성문(城門)을 활짝 열어 놓고 먼지가 일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깨끗이 쓸어 놓도록 하여라!" 명령 지하(命令 之下)에 서성(西城)의 모든 깃발이 거두고, 촉(蜀)의 군사(軍事)는 자취도 없이 숨어버렸다.
이번에는 장수(將帥)들을 불러 이렇게 명(命)한다.
"사문(四門)을 활짝 열어 놓고 깨끗이 쓴 뒤에 물을 뿌리고 똑똑한 군사 열 명을 골라 뽑아 민간인(民間人)으로 옷을 갈아 입혀 성문(城門) 앞을 지키게 하라. 만약(萬若) 위병(魏兵)이 눈앞에까지 다가오더라도 놀라거나 겁(怯)내지 말고 태연(泰然)히 서 있게 하라."
모든 군사들이 공명(孔明)의 분부(分付)대로 거행(擧行)하자, 공명(孔明) 자신(自身)은 학창의(鶴氅衣)를 입은 채로 머리에는 윤건(綸巾)을 쓰고 성루(城樓)에 올라가며 거문고를 가져오라 명하였다.
잠시 후, 서성(西城)의 성문(城門) 앞에는 벌판을 가득 메운 십오만(十五萬)의 위군(魏軍)이 나타났다.
위군(魏軍)이 서성(西城)에 이르러 동향(動向)을 살펴 보니,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앞에서는 양민(良民)이 빗자루로 성문(城門) 앞을 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찾던 공명(孔明)은 성루(城樓)에 높이 올라 앉아 홀로 거문고를 뜯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예사(例事)스러운 일이 아닌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서성(西城)을 바라보고 짓쳐 들어오던 위군(魏軍)들은 유유자적(悠悠自適)한 공명(孔明)의 거문고 소리에 놀라 행군(行軍)을 멈추었다.
"앗!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성루(城樓)에 홀로 앉아 거문고를 타고 있다니...!"
위군들은 너무도 의외의 사실에 놀라, 곧 사마의(司馬懿)에게 알렸다.
"뭐? 제갈량(諸葛亮)이 성루(城樓)에서 홀로 거문고를 타고 있더라고?" 사마의(司馬懿)는 너무도 의외(意外)의 말에 자기 귀를 의심(疑心)하며 곧 앞으로 나와 자기(自己) 눈으로 확인(確認)하였다.
사마의(司馬懿)가 서성(西城) 성루(城樓)를 바라보니,
과연(果然) 공명(孔明)은 다락 위에 높이 앉아 태연(泰然)하게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십오만(十五万) 적군(敵軍)이 눈앞에 닥쳐와 있음을 공명이 모를 리 없건만 그는 무아(無我)의 경지(境地)에서 거문고의 줄만 튕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 제갈량(諸葛亮)이 무슨 계교(計巧)가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앞에서 저렇듯 태연자약(泰然自若)할 수가 있을까?) 사마의(司馬懿)는 홀연(忽然)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전신(全身)에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명(孔明)이 뜯는 청아(淸雅)한 거문고 소리에 자신(自身)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음...! 저 곡(曲)은 청산유수(靑山流水)가 아닌가...?) 사마의(司馬懿)는 자신(自身)도 즐겨 타는 곡(曲)을 공명(孔明)이 타고 있기에 편안(便安)한 얼굴로 거문고 소리를 마냥 듣고 있었다.
아들 사마소(司馬昭)가 정신(精神)없이 거문고 소리에 심취(心醉)한 아버지에게 말한다.
"빈 성(城)처럼 보입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거문고 소리에 눈을 감고 있던 사마의(司馬懿)가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한다.
"명(命)이다. 군사(軍事)를 뒤로 돌려 철수(撤收)하라."
"네? 군량(軍糧이 저기 있는데 어찌 철수(撤收)하라 하십니까?" 사마소(司馬昭)가 불평(不平)을 말한다.
그러자 마상(馬上)의 사마의(司馬懿)가 성루(城樓)의 공명(孔明)을 향(向)하여 불현듯 소리친다.
"재갈량(諸葛亮)! 매복(埋伏)을 해 놓은 것이냐, 응?"
그러나 공명(孔明)은 대답(對答)도 하지 아니하고 거문고만 계속(繼續)해 타고 있었다.
"이런 성(城)이면 매복(埋伏)을 해놔도 얼마 안 됩니다. 명해 주십시오.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마소(司馬昭)가 자원(自願)하며 아버지를 졸랐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성(城) 안에는 얼마 없겠지. 하나, 성(城) 밖의 양쪽 산(山)을 보아라. 제갈량(諸葛亮)은 신중(愼重)한 자라 모험(冒險)은 안 한다. 그런 자가 저리 성문(城門)을 열어놓고 거문고나 타고 있겠느냐. 철수(撤收)해! 지체(遲滯)하면 산 중(山中) 복병(伏兵)들이 나타날 것이야. 철수(撤收)! 어서!"
사마의(司馬懿)는 불현듯 공포(恐怖)가 엄습(掩襲)하여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심상(尋常)치 않은 아버지의 행동거지(行動擧止)를 보고 사마소(司馬昭)가 뒤로 돌아서서 병사(兵士)들에게 명(命)한다.
"철수(撤收)하라! 철수!"
명(命)이 떨어지자 서성(西城) 성문 앞까지 몰려 들었던 위군(魏軍)은 습격(襲擊)에 경계(警戒)하면서 서서히 철수(撤收)를 하기 시작하였다.
공명(孔明)은 다락에서 거문고를 계속(繼續)해 뜯으면서 철수(撤收)하는 위군(魏軍)을 고요한 눈으로 바라본다.
위군(魏軍)이 물러 가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 휘하(麾下) 장수(將帥)가 성루(城樓)로 올라와,
"승상(丞相)! 사마의(司馬懿)가 십오만(十五万) 대군(大軍)을 이끌고 왔다가 승상께서 거문고 뜯는 모습을 보고 황망(慌忙)히 쫓겨가 버렸으니, 이게 웬일이옵니까?" 하고, 말하니,
공명(孔明)이 그제서야 거문고 연주(演奏)를 멈추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입을 열었다.
"하늘이 도왔구나. 사마의(司馬懿)는 신중(愼重)한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내가 거문고를 태연(泰然)하게 타고 있는 것을 보고 필시(必是) 복병(伏兵)이 있을 것으로 알고 물러간 것이다. 내 워낙 위험(危險)한 짓은 극력(極力) 삼가는 편이나, 이번만은 만부득이(萬不得已) 모험(冒險)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공명(孔明)이 성루(城樓)에서 내려오니 촉병(蜀兵)들은 저마다 탄복(歎服)을 마지 않았다.
공명(孔明)은 다시 이렇게 명(命)하였다.
"다시 남은 군량(軍糧)과 무기를 챙겨서 속히 여길 떠나자. 그리고 사마의(司馬懿)의 군사는 이제부터 북산(北山)으로 진군(進軍)하리니, 그곳에는 관흥(關興)과 장포(張苞)가 매복(埋伏)해 있어서 위군(魏軍)은 적지않은 피해 입게 될 것이며 철수(撤收)하는 우리의 뒤를 쫓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果然) 공명(孔明)의 예상(豫想)대로 사마의(司馬懿)는 북산(北山)으로 방향을 바꾸어 철수하였다. 그러다가 관흥(關興), 장포(張苞)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하며 후퇴하였다.
관흥(關興)과 장포(張苞)는 장령을 굳게 지켜, 패퇴(敗退)하는 적을 쫓지는 아니하고 노획한 무기와 식량을 한중으로 후송하였다.
한편, 조진(曺眞)은 공명(孔明)이 사마의(司馬懿)의 대군을 물리치고 한중(漢中) 방면(方面)으로 철수한다는 소식(消息)을 듣고 군사를 몰고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도중(途中)에서 마대(馬岱)와 강유(姜維)의 복병(伏兵)에게 기습(奇襲)을 받아 크게 패(敗)하고 후퇴(後退)하였다.
공명(孔明)은 한중(漢中)으로 무사히 회군(回軍)하자 장수(將帥)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위연(魏延)은 거문고로 십오만(十五万) 적군(敵軍)을 물리치고 돌아온 공명(孔明)의 지략(智略)에 감탄(感歎)하며 말한다.
"승상(丞相)의 귀신(鬼神)같은 계략(計略)에 감탄(感歎)을 금(禁)치 못 하옵니다. 또 소장(小將)도 승상의 말씀대로 양평관(陽平關)에서 화살로 적군(敵軍)을 맞아 수천(數千)의 적(敵)을 사살(射殺)했습니다. 듣기론 조위(曺魏)의 삼대(三代)를 섬겨온 상장군(上將軍) 서황(徐晃)도 맞았다 하니, 죽었을 겁니다. 하하하하!" 위연(魏延)은 역시 무장(武將)답게 호탕(浩蕩)하였다.
그리고 무조건 빨리 달아버리고 급격(急激)히 식어버리는 전형적(典型的)인 무장(武將)이자 호탕(浩蕩)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공명(孔明)은 세심細心)하여 실수(失手)를 하지 아니하고 매사(每事)에 사려(思慮)깊은 생각을 하여 조심스럽게 행동(行動)으로 옮기는 성격(性格)이 아니던가? 그러하기에 평소(平素) 같았으면 위연(魏延)의 호탕한 웃음 소리에도 공명(孔明)이 위연을 추켜세울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昨今)의 사태(事態)가 사태이니 만큼 이번에는 위연(魏延)을 크게 칭찬(稱讚)해 주었다.
"고생이 많았네. 자네가 양평관(陽平關)을 사수(死守)해준 덕분(德分)에 아군이 무사히 한중(漢中)에 돌아올 수 있었네. 매우 수고가 많았네. 헌데 자룡(子龍)이 어찌 됐나 모르겠군..." 공명(孔明)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은 조운(趙雲 : 字, 자룡)이 걱정되어 말하였다.
그때였다. 밖에서 경계병(警戒兵)이 큰소리로 외친다.
"조 장군(趙將軍)이 오셨습니다!"
"응?" 공명(孔明)이 그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룡(子龍), 괜찮은 것인가?" 공명(孔明)은 조운(趙雲)의 행색(行色)을 보고 걱정하며 물었다.
그러자 자룡(子龍)은,
"아, 몸에 묻은 피는 다 위군(魏軍)의 피입니다."하고, 자신(自身)의 몸에 뭍은 피를 보고 걱정하는 공명을 안심(安心)시켰다.
그러자 자룡(子龍)과 함께 돌아온 고상(高翔)이,
"상황(狀況)이 이랬습니다. 조 장군(趙將軍)은 소장(小將)에게 철수(撤收)를 명해 놓고, 홀로 후방(後方)에서 위군 장수(魏軍將帥) 세명(三名)을 차례(次例)로 물리치자 추격병(追擊兵)들이 접근(接近)을 못했습니다. 승상(丞相)! 조 장군 휘하(麾下)의 병사들은 한 명의 낙오자(落伍者)도 없이 무기(武器)조차 잃지않고 귀환(歸還)했습니다." 하고, 보고(報告)한다.
"아, 아주 잘하셨소." 공명(孔明)이 감사(感謝)를 담아 조운(趙雲)에게 반절을, 조운(趙雲)도 이에 맞절을 해보인다. 그만큼 공명의 조운(趙雲)에 대한 믿음은 지극(至極)했던 것이다.
공명(孔明)이 이어서 ,
"공로(功勞)가 큰 조자룡(趙子龍) 장군(將軍)에게 황금(黃金) 오백 근(五百斤)과 비단(緋緞) 일만(一萬) 필을 상(賞)으로 하사하니 장군은 받으시오."하고, 크게 칭찬(稱讚)을 하였다.
그러나 조운(趙雲)은 끝끝내 사양(辭讓)하고 받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장이 이렇다할 공적(功績)도 없이 무슨 상을 받는단 말입니까. 승상께서 굳이 내리시려면 상품을 창고에 고이 간직해 두셨다가 날씨가 추워지거든 모든 군사들의 방한비(防寒費)로 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공명(孔明0은 크게 감탄(感歎)하였다.
"생전에 선제(先帝: 유비)께서 자룡(子龍)의 충성(忠誠)을 칭찬(稱讚)셨는데, 오늘보니 자룡은 충성(忠誠) 뿐만 아니라 의기(意氣) 또한 두터운 사람이오. 과연 자룡(子龍)은 만인(萬人)의 사표(師表)이시오."
"......"
자룡(子龍)이 공명(孔明)의 칭찬에 대한 대답(對答)을 못하는 어색(語塞)한 분위기(雰圍氣)를 깬 것은 군막(軍幕) 밖의 외침 때문이었다.
"마속(馬謖)과 왕평(王平)이 귀환(歸還)했습니다!"
삼국지 - 366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