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4:13~22 / 욥의 부활 신앙
(욥 14:13)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욥 14:14)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욥 14: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 14:16)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욥 14:17)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욥 14:18) 무너지는 산은 반드시 흩어지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옮겨가고
(욥 14:19)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욥 14:20)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욥 14:21)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
(욥 14:22) 다만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13~15 욥은 하나님 안에서 부활을 소망합니다.
욥은 잠시 자신을 스올(음부)에 숨겼다가 때가 되면 기억해달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이 스올은 흑암의 장소, 잊음의 땅, 적막의 장소,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장소 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욥 자신도 이 음부를 빛이 없는 어둡고 그늘진 곳으로 묘사하였습니다(10:21~22).
신약 성경에서 헬라어 하데스(음부)는 지옥 곧 게엔나와는 달리 악한 죄인들이 죽은 후 최후 백보좌 심판을 받기 전까지 거하는 사후 중간기 처소로 보았습니다.
이 음부도 최후 하나님의 대심판 때에는 멸망 받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욥은 현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를 지하 세계(음부)에서나마 피할 수 있고, 후에 자신에게 새로운 긍휼이 주어진다면 현재의 불행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 안에서 기꺼이 죽음으로 내려가고자 하는 욥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는 음부를 하나의 일시적인 피난처로 바라보고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16-19) 그런데 지금 주님은 욥의 걸음을 세시고 죄를 감찰하십니다.
욥은 부활의 모습과 달리 현재 그렇지 못한 상황을 대조적으로 묘사합니다. 욥의 앞에서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음부에 숨게 하시고 훗날 부활 소망 가운데서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바랐지만, 현재에는 하나님이 계속 그의 죄를 살피시며 징계하시니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주머니에 봉하시고 싸매어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훗날 욥을 되돌아보실 때, 즉 그를 새롭게 소생시키실 때 그의 죄를 되돌아보시지 않고 감추어 두시길 소망합니다.
왜 주님께서 산이나 바위가 옮겨지고 물이 사라지듯이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냐고 반문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산과 바위는 영원함과 견고함 등을 상징적으로 암시합니다.
본문에서 산이 흩어지고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간다는 것은 그토록 견고한 것들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티끌같이 흩어지는 만큼, 욥 자신의 소망이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견디지 못하고 온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19절). 하나님의 징계하심으로 욥의 소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욥은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지금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2) 현재 주님께서 사람을 끝까지 억누르시면, 사람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 징계의 손길로 말미암아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암시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얼굴에 생명의 빛이 없어지고 창백해집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과의 모든 연관을 끊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녀들이 영광을 당하는지 욕을 당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후손들이 잘되든지 비천하게 되든지 알지 못합니다(21).
사람은 죽으면 다만 고통 가운데 애곡할 뿐입니다.
우선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말합니다.
욥은 자신이 현재 느끼는 고난과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음부로 가게 해달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13절), 차라리 음부에서는 이와 같은 육체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니면 죽어 음부에 내려간 자의 고통과 슬픔을 말한 것입니다.
앞 문맥과의 연결된 관점에서 볼 때 음부로 내려간 자의 고통과 슬픔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육체가 썩으며 그 영혼이 빛이 없고 음울한 음부에서 거하는 슬픔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욥을 이기셔서 죽음을 향하여 가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욥은 부활을 소망하면서도 현재에서 조금 더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욥은 부활 신앙으로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이기는 길은 바로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절망을 극복하게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는 현재를 더 힘 있게 살아갑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