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一念)으로 염불하면 부처님의 세계에 이릅니다.
일요법회 법문 중에서
불자(佛子, 불교신자)란 지혜와 자비를 추구하는 사람들, 무지(無智,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혜와 불이(不二,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의 정신을 바탕으로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인 자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불자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하는 다시 말해 소위 깨달음으로 가는데 있어 중생구제에 있어 방법들이 있을 것인데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것은 그러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염불수행(念佛,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며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수행)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수행법은 굉장히 많습니다만 크게는 자력신앙(自力信仰, 스스로 닦는 수행)과 타력신앙(他力信仰, 부처님의 힘에 의지해서 하는 수행)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자력신앙하면 우리가 선을 얘기하죠.
부처님에 의지하지 않고 화두를 들고 스스로가 깨달겠다, 하는 것이 선 즉, 자력신앙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자력신앙, 선불교가 대단히 많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나 나나 속된말로 얘기하면 어중이떠중이 모두가 다 선불교를 지향하고 있으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하면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꼭 명심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드렸습니다. 어쨌든 간에 자력신앙이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자력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상황과 조건들이 아주 잘 잡혀있어야 됩니다.
세속에서 여러분들은 먹고사는데 끄달리게 되고 그런 구조 안에서 스스로가 마음을 내어서 일관되게, 오매일여(寤寐一如, 깊은 잠에 들더라도 깨어있을 때처럼 수행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 일관되게 화두를 들 수 있는 그러한 것은 어렵다, 라고 하는 것이죠. 감각적 시대, 소비만능의 시대, 물질의 시대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거기에 유혹되지 않고 한 생각 여여(如如)히 들고 수행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적정처(寂靜處), 고요한 곳을 찾아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겁니다.
선방에서 머리 깎고 사는 스님네들도 전부 산속 깊숙이 깊숙이 들어가서 일반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그런 골짜기 골짜기에서 수행을 하죠. 이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물며 머리 깎고 수행하는 스님네들도 반연(攀緣 얽히어 맺어지는 인연)이래든가 여러 환경에 끄달릴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기어서 기어서 산중으로 산중으로 들어가는데 여러분들이 세속생활을 하면서 선불교를 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겁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자력신앙이 과연 이 말법시대에 가능할 것이냐? 라는 부분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한 생각을 낸다, 한 생각을 낸다, 하는데 여러분들 전부 망상을 가지고 있어요.
번뇌망상. 여러 생각들을 다 내고 있단 말이여. 소위 스스로가 마음을 내어서 깨달음으로 간다, 라고 하는데 과연 이 말법시대에 중생의 업이라고 하는 그릇을 가지고 담을 수 있는 것이 얼마만큼 될 것이냐, 다시 얘기한다면 지가 생각을 내봤자 내는 것이 중생심이지 부처마음이 아니다, 라는 거죠. 생각을 해 보세요.
여러분들 이 시대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생산과 소비. 곧 감각을 계속 자극해서 현혹시켜서 많이 쓰고 즐기고 하는 이러한 경제구조로 가고 있다, 라고 하는 겁니다. 감각적 시대, 자극적 시대 , 소비만능의 시대,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시대, 이 시대에서 과연 얼마나 자기중심을 가지고 스스로가 깨달음으로 갈수 있을 것이냐, 라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죠. 내가 어느 날 참좋은우리절에 갔더니 어떤 중이 무슨 말세라고 말세, 말세 그러데. 그 말세의 개념은 기독교 개념하고 달라요. 인간의 마음, 인간의 심성이 혼탁하여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다, 라고 하는 겁니다. 어쨌든 간에 자력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 말법시대에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라는 것이 뽀인트고 그러면 대안이 무엇일 것이냐? 타력신앙, 염불신앙입니다.
상대적으로 자력, 타력 얘기하면 타력은 뭔가 저급한 것 같고 자력은 뭔가 고상한 것 같고 요렇게 생각합니다만, 단편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들이 마음속의 종교심, 종교심을 내는 건 뭐냐면 타력입니다.
솔직하세요. 아무리 입으로 자력. 자력, 자력을 얘기하는 사람도 별수 없이 마음 안에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뭔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이것 타력 아닙니까?
나처럼 솔직해야 돼. 우리 모두가 종교심을 가졌다라고 하는 것은 타력적 마음을 가졌다라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뭐냐면, 아주 중요한 얘기예요. 귀의(歸依)예요, 귀의. 귀의가 뭐여? 돌아가 의지한다.
목숨 받쳐 돌아가 의지한다, 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귀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본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라는 겁니다. 본 고향이 뭐냐면 아무리 중생심이 두텁다하더라도 이 중생심을 벗어나 본래 부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본래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 가지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게 의지하는 마음이에요. 법신(法身)에 의지하고, 영원에 의지하고, 부처에 의지하고, 본 생명에 의지하고, 다 똑같은 얘깁니다. 본 생명에 의지하고, 간절히 부처님 믿는 마음을 낸다, 라고 하는 것은 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내는 것이요 중생심을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을 내는 것이다. 잘못된 게 아니다. 본능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본래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자연스러운 거야.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무리 천하없이 많이 가진 사람도 본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있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돼있어요. 그래서 마음을, 여러분들이 뭔가 의지하는 마음, 귀의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바로 본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내는 것과 같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게 저급한 게 아니야. 당연한 거야, 당연한 거. 그렀습니다. 그래서 염불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말법시대에 이 난세를 극복하고 깨달음으로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가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근거가 있어야 될 것 아니겠어요? 염불신앙의 근거, 염불은 부처님을 간절히 염하는 거 잖아요? 부처님을 간절히 염하는 것에 근거는 뭐냐허면 본원력(本願力)이여, 본원력. 부처님이 가진 원력을 본원력이라고 그래요. 그 본원력은 뭐냐면 다른 게 없어요. 중생제도(衆生濟度)예요.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겠다고 하는, 중생의 모든 고통을 제거하겠다고 하는 불보살님의 원력이 있는데 불보살님 그런 원력을 가지고 말만 나의 본원력은 중생구제다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아니죠. 항상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겁니다. 손을 뻗치고 있다, 라고 하는 것, 이거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항상 부처님이 이미 여러분들 곁에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본원력, 그러니까 끊임없이 여러분들을 돕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가피를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되느냐? 무엇 때문에 안되느냐? 무엇 때문에? 바로 여러분들이 마음을 엉뚱한 곳에 쓰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헛된 곳으로 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얘기 한다면, 우리가 방송국에서 굉장히 많은 송신을 합니다. 많은 파장을 보내죠. 전파를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받아들 일수가 없죠. 다른 주파수를 틀고 있으면 KBS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MBC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아무리 여러분들을 구제하려 한다 하더라도 나라고 하는 나, 나라는데 갇혀있으면 나의 생각이 다른데 머물러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들 삶을 사는 자세는 내가 지금 죽는구나, 그 생각을 해야 돼요. 왜? 나머지 삶이라는 것은 그건 한 찰나야, 찰나. 지금 죽는 것과 같아. 내가 지금 죽는구나, 내가 지금 죽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생각을 해봐. 이 육신덩어리 치장할거야? 이 육신덩어리 즐겁기 위해서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어디 가서 무얼 할 거야? 지금 이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짧은 삶인가 생각했을 때는 정말 고귀하게 살 것 아니겠어요? 그 고귀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고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부처님과 하나 되는 것이고 적어도 죽으면 극락은 가야 헐것 아녀? 기도는 간절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들처럼 일주일에 한번? 안뒤야. 적어도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8시간씩 3·7일 기도 앉아가지고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독을 뿜고 해야 돼. 거짓말 아냐. 선방스님네들이 평생을 앉아가지고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앉아가지고 화두를 들고 있는데도 깨치기가 어려워. 그런데 여러분들이 일주일에 한번와가지고 깔작거리고 되겠냐고. 일주일 한번도 제대로만 오면, 뭔 사연이 그렇게 많은지……. 내가 그래서 정말 간절하게 중생 몸뚱아리 벗어나서 까짓것 목숨을 한번 내놓고 부처님을 한번 친견해야 되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다면 적어도 그냥 앉아갖고 주야장창하고 만사를 젖혀 놓고 할수있는 시간을 꼭 가져야 된다. 그러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철을 논하지 않고 시철을 논하지 않고 항상 일념(一念)으로 ‘지장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 아미타불 신묘장구 대다라니 나모라 다나다라…….‘해야 된다. 염불해야 된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이생에 그래도 업을 좀 녹이고 부처님께 다가갈 수가 있다. 분명하게 말씀 드립니다. 부처님은 항상 여러분들 옆에 있고 여러분들을 구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을 하셔야 합니다. 마음을 내고 실천만 하면 됩니다. 성불 하십시오.
대한불교 조계종 전주 참좋은 우리절 회일주지스님 법문중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가슴이 시원 하군요....!...합장 ^_____^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불교입문한지 몇일 안되는데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_()_()_()_
감사합니다_()_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