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병훈(왼쪽)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농해수위 전체 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여당의원들이 항의속에 통과시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19일 결국 ‘쌀 의무매입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이재명이 강행 처리를 주문한 지 한 달여만이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하명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고 반발하면서 앞으로도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날 회의에는 19명의 농해수위 위원 중 17명이 참석했는데 이 중 민주당 의원 1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의원 7명은 항의 차원에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해당 법안은 쌀 초과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전년보다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매입하는 내용이다. 임의조항인 쌀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바꾼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은 “법안이 시행되면 쌀 공급과잉을 야기할 수 있고 재정 부담을 정부가 떠안을 수 있다”며 반대해왔다. 농해수위에 따르면 올해 초과 생산된 쌀을 시장격리하는데만 약 1조원이 든다.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전체회의가 개의되자마자 여야는 거세게 부닥쳤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산업을 망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민주당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다른 이슈로 막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승남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법 개정의 필요성과 독소 조항을 검토하자고 했는데 여당은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제 와 토론하자는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한 술책밖에 안 된다”고 맞섰다.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회의 개의 1시간여 만에 민주당 소속인 소병훈이 해당 법안을 거수 표결에 붙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소병훈을 둘러싼 채 거칠게 항의했지만, 소병훈은 의결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에도 최장 90일의 심사기한을 갖는 안건조정위원회를 단독 의결을 통해 강제 종료시킨 전례가 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농해수위 위원들은 성명을 내고 “결국 민주당이 ‘이재명 하명법’이자 쌀 포퓰리즘법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며 “이는 명백한 의회 다수당의 횡포이자, 날치기”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 농해수위 위원들은 성명을 통해 “쌀값이 윤석열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12.5% 폭락한 것은 현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며 “국민의힘은 소모적인 정치공세,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중단하라”고 대응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상임위 문턱을 넘었지만, 본회의 표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이양수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상임위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법안이어서 김 위원장이 안건 상정을 보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민주당은 과반 의석으로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법사위원은 총 18명인데 그중 10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법사위원장이 만약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인 사회 진행이라고 보고, 의결을 통해 사회권을 가져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사위원장의 사회권을 강제로 뺏는 일은 전례가 없고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민주당 시나리오가 통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민주당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상임위에서 기한 내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의장과 교섭단체가 합의한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민주당 바람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19일 민주당 단독 처리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가운데 충남 계룡시 들녘에서 농민들이 콤바인으로 수확한 벼를 트럭에 옮겨싣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국회법 86조 3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해당 조항은 “법사위 심사기한(60일)이 지났을 경우, 소관 상임위(농해수위)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의장에게 본회의 법안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역시도 김 의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여론전 등 다양한 카드를 총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관계자는 “합리적인 성향인 김 의장으로서는 민주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비판하는 여론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