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 몸이 증명합니다.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어있는 몸은 결코 축구를 할 만큼 유연함을 주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내적인 원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친목을 위해 하는 축구에는 골대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제2의 골키퍼로 뜁니다. 축구를 구경하는 것도 보통 정도의 흥미 정도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팀이 이겼다고 특별한 흥이 일어나지도 않고, 졌다고 한숨 쉬면서 술한잔 해야 하겠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갖고 있는 축구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번 월드컵이 시작되면서도 예상대로 시큰둥한 반응이 제 안에 일어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월드컵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제가 "모른다"라고 답할 때, 그들의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이 제게는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어떻게 한국인이면서 월드컵 일정을 모르냐?" 질책인지, 힐난인지, 놀람인지, 놀리는 것인지... 그래도 "나는 지금 한국에 있지 않다."는 말로 얼굴 두꺼움을 대신했습니다만 지금은 달릅니다.
사실 축구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이 16강에 올라가기를 바랐던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축구 때문이 아니라 한국 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위에서 오세일 수사님이 포르투갈과 비겨서 미국이 떨어지길 바랐다는데...사실 경기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내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음을 곱게 써야하는데...어째 포르투갈하고 비기면 좋겠어. 미국하는 짓이 싫어서..." 그랬는데 결국은 우리가 미국을 구하는 꼴이 되고말았네요. 그리스도는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우리를 구했지만, 우리팀은 상대를 이김으로써 제가 싫어하는 미국팀을 구했네요. 하여간 그것도 다 뜻이려니 하지요. 인터넷으로 지상중계를 보면서 한국에 계신 수사님들이 선물로 보내준 Be the Red 티셔츠를 입고 응원했네요. 같이 있는 수사님들은 거의 16개국에서 오신 분들인데 모두를 축하한다고 하네요. 오늘도 그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빨간색이 너무나 제게 낮설고 쑥스럽지만 그래도 기분좋게 웃으면서 말입니다.
어느 텔레비젼도 한국 경기를 방영하지 않았습니다. 폴란드와 미국의 경기는 방영했는데, 우리 경기는 방영하지 않았어요. 같이 살고있는 수사님과 밤 한 시까지 여기저기 체널을 돌아다니면서 혹시나 하이라이트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앉아있었지요. 결국은 한 시가 넘어서야 포기하고 잠자리에 갔네요. 잠자리에서도 잠을 쉽게 들 수가 없었어요. 괜히 앉았다 누웠다 그랬지요.
저는 뭐 애국자가 된 느낌은 아니지만, 제가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던 축구를 통해서도 어떤 측면에서 일체감을 느꼈다는 데에 대해 깊이 감동을 했습니다. 여기 같이 있는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들 아시아 팀이 올라갔다는 데 대해 자기 일같이 기뻐합니다. 축구가 문제는 아니겠지요. 저는 정말 축구가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한국민으로써 깊은 일체감을 느꼈고, 같이 있는 수사님들은 아시아 인으로써의 일체감을 느꼈습니다. 굳이 편가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러한 일체감이 우리를 더 깊은 차원의 협력과 사랑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