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텃밭에서
입추를 넘긴 팔월 둘째 월요일이다. 이번 주 남부는 연일 찜통더위의 폭염이 지속되고 중부는 가을장마에 돌입한다는 기상 정보를 접했다. 좁은 국토인데 지역에 따른 강수량의 편차가 너무 큰 듯하다. 올여름 우리 지역에 내린 장맛비는 감질날 정도라 저수지는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내 있다. 반면에 수도권과 중부 내륙은 강수량에 제법 되어 물 부족을 겪지 않는다고 들었다.
날이 밝아오기 한참 전 새벽 네 시 텃밭을 향해 길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외등이 켜진 채 날이 새길 기다렸다. 거리로 나가니 가로등은 훤한데 차도에 다니는 차량은 한 대도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 도지사 관사 앞 가로수길을 지나 경남교육청 사잇길에서 중앙대로로 진출했다. 새벽하늘엔 상현달은 기울고 뭉게구름이 뭉쳐 일면서 샛별이 반짝였다.
도청 광장을 지나서부터 너른 차도에 오가는 차량은 드물어 한두 대만 다녔다. 도의회와 시립테니스장을 지나서 검찰청과 법원 뒤 창원축구센터로 올라간 다섯 시가 되어도 날이 새지 않았다. 체육관 건너편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렸는데 상남동 아파트에서 누비자 자전거로 이동해 왔다. 우리는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을 때 25호 국도 아래 비탈로 올라 텃밭에 닿았다.
이십여 세대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축구센터 시청 공한지에 한시적으로 텃밭을 가꾸는 경작지엔 이른 새벽이라 아무도 나오질 않았더랬다. 나는 새벽잠이 본래 없지만 친구도 마찬가지였고 아직 현직이라 출근도 해야 해 이른 시각에 텃밭으로 나왔다. 학교 관리자는 평교사와 달리 방학이라도 근무지로 나가야 해서 잠시 텃밭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 출근 채비를 서둘 친구였다.
친구가 이름 붙인 광쇠농장 곁에 여산농장이 나란하게 있다. 여름 채소는 거의 끝물이고 콩과 고구마는 잘 자라고 있었다. 친구는 토마토 그루 곁에 당근 씨앗을 심어 놓았고 오늘은 쪽파를 심으려고 했다. 나는 가지와 고추 이랑 주변의 잡초를 뽑고 제대로 키우지 못한 열무 이랑의 김도 매고 가을 푸성귀를 심을 준비를 할 참이다. 호미를 손에 쥐고 여름 막바지 잡초를 뽑아냈다.
곁에서 작물을 돌보던 친구는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잡초를 마저 뽑고 남은 일을 수행했다. 가을 채소에 해당할 무와 배추를 심을 자리를 삽으로 파 일구었다. 이미 열무를 심는다고 파 뒤집은 터여서 그리 힘이 들지 않았다. 수일 내 두엄을 구해 흩어 뿌려 씨앗을 심을 이랑을 지을 작정이다. 무와 배추 말고도 감자와 쪽파도 심어 농사가 잘되면 이웃과 나눌 생각이다.
삽으로 가을 푸성귀를 심을 자리를 일구어 놓고 낫으로 텃밭 진입로에 무성한 풀을 잘랐다. 나는 웬만한 농사꾼에 뒤지지 않을 만큼 농사일에 익숙해 짧은 시간이지만 작업량이 상당했다. 이제 텃밭의 작물을 거둘 차례로 가지와 고추를 따고 오이는 끝물이라 한 개뿐이었다. 싱그러운 깻잎도 몇 장 따 놓고 동부를 따러 갔다. 쥐눈이콩이라고 심은 콩은 넝쿨로 뻗어 자란 동부였다.
넝쿨이 무성한 고구마밭이랑 군데군데 핀 보라색 꽃이 눈에 띄었다. 고구마 이랑을 지나 동부밭으로 가니 길쭉한 콩꼬투리가 잘 여물고 있었다. 개화기간이 다르니 꽃이 먼저 피어 저문 자리에 맺힌 동부는 익어가고 있어 열매를 따 모았다. 익는 동부 꼬투리와 함께 새로운 꽃도 피어났다. 동부 농사를 짓느라 그렇게 땀을 흘리지 않았는데 수확물이 의외로 많아 황송할 따름이었다.
동부를 따서 아까 거둔 열매채소와 함께 배낭에 채워 담고 손에도 들었다. 농로를 따라 비탈길을 내려와 축구센터 공원의 쉼터에 앉았다. 비닐봉지를 채운 동부를 꺼내 꼬투리를 비틀고 비집어 콩을 깠더니 양에 제법 되었다. 환경미화원이 지나다가 까만 콩과 수북한 꼬투리를 보고 농사를 참 잘 지었다고 했다. 뒷정리를 깔끔히 하고 배낭을 추슬러 집으로 돌아왔더니 점심나절이었다. 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