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엔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하늘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다. 막 아쿠아 코럴과 블래싱 마린의 경계를 지날 참이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라…. 나는 왜 ´천고마비´하면 높은 하늘이 마비되는 것 이라고 자꾸 떠올릴까…?’
이런 바보 같은 잡념을 떠올리며 걷던 리엔은 고개를 살짝 돌려 같이 걷고 있는 디션을 쳐다보았다. 결코 못생기지 않은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디션이었다. 남색의 적당하게 다듬어진 짧지 않은 머리칼과 대귀족의 자제답게 기품있는 눈매, 리엔보다 주먹두개정도 큰 키. 헤이즐리 산 이클락(EClock)의 모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망토와 허리에 걸려있는 호사스러운 롱 소드. 무엇보다 그에게선 보통 사람에게선 느낄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리엔 역시 평범한 보통 사람은 아니었기에 디션에게서 느껴지는 큰 ‘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뭘까…? 이 사람에게서는 처음부터 주욱 압박받는 것 같아. 그리 무서운 얼굴도 아니고 덩치가 산(山)만한 것도 아닌데…?’
리엔은 계속 디션을 쳐다보며 생각에 빠져갔다. 디션은 리엔의 짙은 시선을 느끼고 얼굴을 잠깐 붉히며 말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리엔은 화들짝 놀라며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예? …에엣? 아,아뇨! 얼굴 깨끗한데요?”
엉뚱한 대답을 한 리엔을 보며 디션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진 몰라도 눈물까지 머금으며 웃는 디션을 보며 리엔은 얼굴이 빨개졌다.
“…차라리 웃기라도 하니 좋네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계속 숨막혔어요~! 무슨 위압감이 그렇게 굉장해요? 대단하던걸요?”
“위압감을… 느꼈단 말이야?”
디션은 걸음을 멈추고 표정을 굳히며 놀란 듯 리엔을 쳐다보았다. 리엔은 당연하다는 듯 푸념을 늘어놓는 표정으로 옆의 작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그런데 그 위압감은 도데체 어디서 나오는 거에요?”
“………”
“디…션님?”
“아… 미안. 잠시 생각 좀 했어. …너.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헉!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내,내 본성을 들킨 건가?!’
꽃다운 이중인격자 16세의 소녀는 얼굴이 파래지며 정색을 했다.
“무슨 소리세요?!”
“아,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이상한 뜻이 아니야. 보통 사람들 중에 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거든. 더군다나 나의 기는 스크롤을 이용하여 감춘 거거든. 어쨌든, 리엔 대단한데? 갈고 닦기면 하면 굉장한 전사가 되겠어.”
디션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는 지나가는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리엔의 반응은 그리 평범하지는 못했으니.. 앉아있던 바위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무, 무슨 소리세욧! 저는 그런 거 하나~도 몰라요! 그, 그냥 저는…! 시골구속에 살고 있는 아리땁고 고운 소녀일 뿌..…”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
“꼼짝마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렁찬 고함소리! 이건 그 말로만 듣던 산적이 아닌가~
바람을 타고가듯 디션은 리엔의 허리를 잡고 삼사십명에 이르는 산적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리엔은 깜짝놀라 버둥버둥거리며 디션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건 쉬웠다. -_-; 그녀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
디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리엔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특이한 소녀인가. 나의 기를 느끼는가 하면 힘도 거의 성인남자정도니.’
“산적이냐?!”
디션은 기선을 제압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감히 너희가 누구라고 나를 해하려고 하느냐! 쥬디가문이 두렵지도 않느냐!”
그러나 산적의 두목으로 보이는 자는 콧방귀를 끼며 디션에게 도로 외쳤다.
“낄낄, 웃기지 마라, 디션도령!! 네가 오늘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너 하나 잡아서 호강 좀 해보자!! 얘들아! 가자!!”
“넷, 두목!!”
산적 두목은 이렇게 외치며 디션에게 맹렬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디션은 허리에서 아쿠아젬이 박혀 있는 롱 소드를 꺼내들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리엔!! 내 뒤에 있어!”
“에,옛? 아, 네!”
리엔은 갈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놈의 산적들은 이 숫자로 봐서는 디션 혼자 상대하기는 벅찰 것 같았다. 물론 아까 느낀 디션의 기로 봐서는 디션도 호락호락하게 당할 것 같지는 않지만 산적들은 미리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디션의 전력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고 예상치 못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디션을 돕게 되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켜왔던 자신의 청순가련하고 고귀하고 아름답고 기품있고 우아한 이미지는 단 한순간에 깨어지는 것이다 …!
리엔이 이렇게 갈등을 하고 있는 사이 30명 정도 되는 산적들은 디션을 애워싸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리엔은 중얼거리며 리엔 쪽으로 오는 공격만 오버액션을 섞어가며 피하고 있었다.
몸에 닿지도 않은 주먹에 맞은 척 하며 “아야… 이렇게 가녀린 소녀를 때리다니… 당신들 벌 받을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요리조리 피하고 있었다.
디션은 사방팔방으로 뻗어오는 공격에 혼비백산해서 자기자신만 지키기에 급급한 상태였다. 일대 삼십은 정말 불리한 싸움이었다…!
“아악!”
디션의 첫 비명, 이제는 정말 리엔이 결심해야 할 순간!
리엔은 중얼거림을 멈춘 후 뭔가를 겸심한 듯 산적두목을 똑바로 쳐다본 뒤 외쳤다.
“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