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
이윤학
베란다 창문을 반나절 열어놓고 외출했는데 접어놓은 카펫 음푹한 자리에 새끼를 들여놓은 꿩이 종적을 감추었다 털이 나기 시작한 새끼 꿩 세 마리는 쉬지 않고 울었다 밥풀을 으깨주고 조를 부숴주고 생수를 따라주었는데 거들떠보지 않았다 밤이 되어 털옷을 깔아주고 전기난로를 틀어주었는데 떠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감기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울고 또 울었다 연초록 떡갈잎이 돋아난 야산으로 통하게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았는데 밤사이 어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졸기를 반복하는 새끼 꿩 세 마리가 똥오줌을 깔고 앉아 쉰내를 풍기며 울었다 약한 불에 올려놓은 찜통의 사골이 졸아드는 반지하 어미를 찾는 아이들 울음이 들렸다 지독한 노린내를 풍기는 연기가 주방 후드에 쏟아져 나와 담쟁이를 담고 올라갔다
시집 『짙은 백야』 2016. 문학과지성사
이윤학 시인
196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시집 『먼지의 집』(문학과지성사,1992)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문학과지성사,1995)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문학과지성사,2000)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문학과지성사,2003) 『그림자를 마신다』(문학과지성사,2005)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문학과지성사,2008 ) 『나를 울렸다』(문학과지성사,2011) 『짙은 백야』(문학과지성사,2016)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간드레,2021),장편동화 『왕따』(문학과지성사,2006)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문학과지성사,2009) 『나는 말더듬이예요』(주니어RHK,2010) 『나 엄마 딸 맞아?』(새움,2012)를 펴냈으며, 김수영문학상 지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