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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1996년 천리안 음악동(두레마을인가?)에서 보고 가지고 있던 글입니다.
원문은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니며 작성자는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1993년 가을. 수입 음반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던 이석원은 자신의 가게에 손님으로
찾아 온 윤병주라는 사람과 알게 된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그둘은 금새 서로에게
이끌렸고 곧 친구가 되는데, 당시 윤병주는 노이즈가든(NOIZEGARDEN)이라는 밴드에
적을 두고 있는 뮤지션이었고 이석원은 그저 음악을 찾아 듣는 매니아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의 매니어들이 대분분 그렇듯 그간 공연장 한번 가본 적 없던 이석원은 윤병주를
따라서 밴드의 합주나 라이브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그에게 적잖이 고무적인
경험이 되었다. 이석원은 한 마디로 펑크나 팝 계열의 음악 취향을 갖고 있어, 헤비메탈이나
아트 록등에는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류의 사람이다. 국내의 음악 감상 풍토에
많은 문제 의식을 가져왔던 그는 그런 생각들을 PC통신 게시판에 자주 토로하곤 했다.
그는 하이텔 헤비메탈 동호회에 적을 두고 있었는데, 당시는 너바나(NIRVANA)의 열풍이
국내에 고조되면서 '얼터너티브 메탈'이라거나 '그런지 메탈'하는 식으로 너바나도
헤비메탈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고, 시애틀의 그룹들을 중심으로 한 음반 소개글들이
건스 앤 로지즈 등과 함께 나란히 게시판을 장식하곤 하였다. 너바나가 도화선이 되어
소위 '모던 록' 이라 불리우는 일군의 음악 세력이 극소수의 매니어들에 의해 주목받던
94년, 이석원은 시삽이었던 류기덕에게 건의하여 헤비메탈 동호회 내에 모던 록전문
게시판을 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엔 동호회의 음악감상회에서 모던 록
스페셜을 기획,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당시 감상회 때 소개된 그룹들은 소닉 유스(SOINC YOUTH), 페이브먼트 (PAVEMENT),
대릴 안(DARYLL ANN), 샬라탄즈(CHARLATANS),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틴에이지 팬클럽( TEENAGE FANCLUB) 등이었는데
그 모든 아이템들은 헤비메탈이 아니라는 점에서 헤비메탈 동호회의 행사 내용치고는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것이었고, 모던 록 게시판으로 탈바꿈한 그 게시판을 바로 이전에
L.A메탈을 주로 다루던 게시판이었다는 것 역시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주는 사실이었다.
가상의 그룹,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을 감상회를 치루고 난 뒤 본격적인 모던 록 감상 모임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고
회원을 모집하여 '모던록 소모임'을 결성한다. 이러한 동호회의 활동을 하는 와중에
그는 자신이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고, 그것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그룹의 리더임을 늘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실상
그는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몰랐으며, 언니네 이발관은 이석원 자신 외에 다른 멤버들은
있지도 않은 허구의 그룹이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야의 라디오 프로에 출연하게
되는데. 거기서 또 다시 자신을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소개한다.
"언니네 이발관'이란 이석원이 고등학교 1학년때 빌어다 본 일본의 비품 에로 영화 제목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렇게 장난 반으로 이름부터 지어 놓은 그룹에 정말로 멤버가
생기게 되는데, 그 시작이 류한길이라는 인물이다.
류한길은 그 역시 키보드를 전혀 다룰줄 모르는 키보디스트로, 그 사실을 속인 채 기타를
다룰줄 모르는 기타리스트 이석원과 의기투합 하였다. 두 번째로 언니네 이발관에 찾아온
손님은 동호회의 시삽 류기덕으로 데스 메탈과 비틀즈.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던 학생었다.
그는 베이스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언니네 이발관은 통신상에서 점점 화제의 그룹이 되어 갔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헤비메탈이 아닌 모던 록 성향의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호기심과
기대는 배가되었던 것이다. 물론 관심을 끈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그 독특하고 재기넘치는
밴드명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이즈 가든
한편 '94년 초에는 노이즈가든이 멤버들의 신상 문제로 인하여 해산을 결정함과 동시에
그 결산의 의미로 데모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데, 노이즈가든의 데모를 들은 이석원은
말로는 다 할수 없는 충격에 빠지게 된다. 노이즈가든은 그해 가을에 톰보이 록 콘테스트에
출전하여 이석원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10분 남짓한 길이의 바로 그 곡
대상을 차지하고야 마는데, 그 때의 감동이 결정적인 자극이 되어 이석원은 진지하게
밴드 활동을 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는 언니네 이발관이 실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엉뚱하게도 꽤나 잘하는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어, "다음 해엔 언니네 이발관이!"
하는 식의 부추김을 당했고, 이발관의 예비 멤버 세 명은 마치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양 흥분했다.
겨울이 오자 윤병주를 비롯한 주위 친구들은 이젠 정말로 밴드를 결성해야 하지 않겠냐며
적극적으로 권유하기 시각했는데 이 무렵 드러머인 유철상을 마지막으로 4인조 그룹
언니네 이발관의 라인업은 완성된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기타를 맡은 이석원 이었다.
베이시스트 류기덕과 드러머 유철상은 그래도 연주 경력이 몇 달을 되었고 합주 경험도
있는 상태였지만, 기타를 칠 줄 안다고 떠벌이고 다니던 리더 이석원은 정작 기타를 전혀
치지 못했던 것이다.
첫 합주를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날 밤, 온라인으로 채팅을 하고 있던 중에 윤병주는
이석원에게 뜻밖에도 기타를 가르쳐 주겠다는 제의를 한다. 그러나 일급 기타리스트
윤병주에게 직접 기타를 배운다는 것은 일급 초짜인 이석원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또 무엇보다 평소에 어느 정도 치냐고 물어볼 때면 언제나 왠만한 곡은 칠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에 사실이 탄로나게 될 것이 마음에 걸렸고 가장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합주를 미룰 핑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던 이석원은 결국 손 한번 대지
않았던 중고 펜더 재즈마스터를 들고 과감히 윤병주를 찾아 간다. 첫날, 이석원은 파워
코드 잡는 법과 루트 음을 찾아 곡을 카피하는 법을 배웠다.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고 난
윤병주가 "자, 이제 어디 한번 쳐보라"며 기타를 넘겨 주었는데 이석원은 아무것도 칠 수 없었다고 한다.
첫 합주
그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40여일간 기타를 연습하고 난 후에 언니네 이발관의 첫 합주가
'95년 2월 15일 저녁에 있었다. 첫 합주때 그들이 연습한 곳은 너바나의
이석원이 치지 못했기 때문에 베이스가 대신하고, 대신에 이석원은 입에 거품이 나도록
한 시간 내내 똑같은 노래만 불렀다. 언니네 이발관이 비로소 살아 있는 밴드가 되는 순간이었다.
멤버들의 평균 연주 경력이 반 년도 안되는 그룹을 어느 합주실에서 탐탁히 여길것인가.
그들은 이곳 저곳에서 무던히도 구박을 받았다. 합주를 마치고 나오면 대기실에 앉아있던
다른 팀들이 조소를 보내기 일쑤 였고, 노래마저 시원찮은 보컬리스트 덕에 듣다못한
합주실 주인 아줌마가 난데 없이 도중에 들어와 보컬의 볼륨을 줄이고 나가는 사건마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주 못하는 밴드?
대단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밴드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것일까.
리더 이석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그렇게 국내 그룹들의 라이브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팀들이
연주와 사운드에만 매달리고 정작 음악 자체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이었죠. 경력이
5년이 넘는다는데 정작 공연할 때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곡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죠.
'도대체 저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전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밴드를
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합주를 시작한지 석달이 지난 오월의 어느날. 이석원에게 희미하게나마 존재하던 작곡에
대한 신념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일년 전 출연하여 있지도 않던 그룹의
리더라고 사기극을 벌였던 그 라디오 프로에 다시 나가게 된 것, '너희 곡을 만들어 가지고
나가서 틀라'는 윤병주의 권유가 있었고, 이석원과 윤병주의 일주일 간의 밤샘 작업 끝에
세 곡이 태어났다. 이석원이 파워 코드를 배우고 나서 이리저리 손을 옮기는 연습을 하다가
엑스 자 형태로 반복해 치다보니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거기에 맞추어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우스운 오후>로 완성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그 코드들의 이름은 C-Am-Dm-G7으로 양희은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과
같은 가장 흔한 코드 진행이었다. 네 개의 코드를 끝없이 반복해 치는 이석원의 가슴 속엔
코드의 느낌만이 다가왔고 그저 그 느낌이란 것이 너무나 좋았기에 자연스레 멜로디가
흘러나왔으며 그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된 <우스운 오후>와 역시 파워 코드 두 개만을 반복 스트로크 하는
파워풀한 곡<로랜드 고릴라>가 전파를 타게 되자 통신상에서 예상한 것 이상의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고 그때까지 언니네 이발관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기대는
더욱 증폭되었다. 한편 이석원과 마찬가지로 키보도를 치지 못했던 류한길은 결국
연주력 신장의 문제로 잦은 마찰을 빗다가 팀을 탈퇴하고, 방송에서 곡을 듣고 팬이
되었다는 연주 경력 한 달의 중학생 정대욱을 또 한명의 기타리스트로 맞아들이게 된다.
이 후 그들은 자작곡에 몰두하게 되고 그들보다 월등한 연주력의 다른 밴드들이
그들을 비웃으며 남의 곡으로 합주를 마치고 나오면, 들어가서 서툰 연주로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는데, 시간이 좀 흐르자 베이스 류기덕과 기타 정대욱도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풍부함을 더해갔다.
첫 공연
1995년 7월29일 토요일, 홍대 앞의 한 클럽에서 가진 언니네 이발관의 첫 라이브에서는,
만원 사례 속에서 페이브먼트, 틴에이지 팬클럽의 커버와 함께 그들의 자작곡 <로랜드 고릴라>와
<소년>이 연주되었다. '건국 이래' 자신들의 곡으로 데뷔 무대를 장식한 팀은 그들이
처음이 아니였을까. "자신의 노래를 하자." 이것은 언니네 이발관이 가진 최상의 모토였던 것이다.
같은날, 그들과 함께 공연했던 다른 프로(?)그룹들이 그들을 비웃으며 남의 곡으로 연주력을
뽐냈음은 물론이다.
계속적으로 공연과 작곡에 몰두하던 그들은 '96년 2년월에 그간 만들어 넣은 곡 들 중
열 곡을 추려 데모 앨범을 냈는데 이름하여 "비둘기는 하늘의 쥐". 이 데모 테입이 여러
제작자의 손에 들어갔고 마침내 그들은 그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는 제작자를 선택.
윤병주가 프로듀서로 이상문이 밴드와 함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96년 10월 데모와
동명(同名)의 타이틀이 붙은 앨범을 완성하게 된다. 기타를 너무 잘 쳐서도 아니었고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도 아니었다. 단지 음악이 좋아서 선택된 것이었다. 그것이 언니네 이발관이다.
바보 커트 코베인
언니네 이발관에 손님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음악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코드 Cm를 쳤을 때 그것을 씨메이저가 주는 느낌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음 씨메이저군', '뻔한 코드군', '내가 아는 코드군'하는 식으로 머리가 작동하는 사람에게
언니네 이발관은 단지 연습과 이론 공부를 더해야 하는 풋내기 아마추어 그룹일 뿐이다.
언젠가 어느 PC 통신 동호회의 대화방에서 웃지 못할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 펄 잼(PEARL JAM)은 음악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정말이지 가관이다.
"내 동생도 친다"는 것. 물론 자기는 동생보다 잘 친다는 설명도 곁들여서........
이것이 국내의 현실이다. 카피가 아예 음악적인 목표로 자리 잡은지는 오래. 이 작곡에
대한 개념은 거의 전무하다. 만들 수 었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못되고,
단지 '이정도' 카피할수 있으면 그것으로 모든 성취를 이룬다고 믿는다.
그 자리에서는 '커트 코베인은 바보'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가 튜닝도 제대로 못하는
아마추어였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튜닝도 제대로 못하는 아마추어가 전 세계를
들었다 놓았을 때, 그 사람은 아마추어 바보가 만들어 놓은 곳을 5분만에 카피하고서는
이렇게 쉬운 곡이 어딨냐고 무시했을 생각을 하면 우습가기보다는 서글픈 심정이 되고 만다.
언니네 이발관
그들의 출발은 바로 그런 부분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꾸밈없이 소박한 음악,
어설프지만 풋풋하고 신선한 아마추어리즘. 그들은 연주를 못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때 당신의 머리속에 정확한 음정이나 고음이니
가창력이니 하는 개념이 있었습니까? 속주니 스케일이니 하며 얼마나 연주를 정확하게
잘 하는지 점수 매기느라 바빴습니까? 그저 한 순간, 당신을 사로잡는 느낌.
'어.... 이 부분 좋다..'하는 그 느낌. 언니네 이발관이 들려줄수 있는 건 단지 그 느낌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의 본질이며 가장 순수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음악 자체에 주목했으며 곡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점차 분업화 되었다.
초기에는 각자 곡을 만들어 오곤 했는데 그러다보니 보컬을 맡은 이석원은 보컬 멜로디에,
베이스를 맡은 류기덕은 베이스라인에, 기타를 맡은 정대욱은 기타 편곡에, 또 드러머
유철상은 드럼 편곡에, 결국 각자 자신의 파트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이석원은 기타를 잡은 이래 온전하게 카피해본 곳이 다섯 곡이 넘지 않을 정도로 지독히
카피를 싫어했고, 때문에 편곡에 약하다. 그러나 또 다른 기타리스트 정대욱은 하루가 멀다하고
카피를 해대는 스타일로 편곡 아이디어가 대단히 풍부하여 곡 마다 옮아다니며 생명력을
불어넣은 역할을 한다.
"저는 음감이 후져서 좋아요" 이석원의 말이다. 절대 음감이 있네 어쩌네 하며 으시대기
바쁜 뮤지션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적 가치관이다.
"만약 제가 음감이 좋아서 어떤 곡을 들을 때 그 곳의 코드기 모두 코드 네임으로
제 머리속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곡을 들으며 즐길 수가 있겠어요. 또 그랬다면 메이저
세 코드를 반복하는 <동경>같은 곡은 절대 만들 수 없었겠죠. 어떤 이들은 '또 메이져야?'할 때
제겐 그저 ,<동경>일 뿐이거든요"
<동경>은 가장 평판이 좋은 곡의 하나로, 지극히 단순한 코드에다 편곡을 더하여 만들어졌지만,
머리속에 아련히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매력적이고 흡인력 있는 트랙이다.
베이시스트 류기덕. 그는 현재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다. "틴에이지 팬클럽의 베이시스트
제랄드 러브(GERALD LOVE)를 좋아합니다. 폴 맥카트니도요." <쥐는 너야>와 <팬클럽>에서
그의 맬로딕한 베이스라인은 주목할만한데 특히 E와 A단 두 개의 코드 만으로 기타가 진행되는
<팬클럽>에서 류기덕은 곡을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는 베이스음의 진행을 들려주고 있다.
녹음 당시 프로듀서인 윤병주가 "이건 편곡이 아니라 완전히 작곡"이라며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베이스가 독자적인 멜로디를 전개하는 방식을 틴에이지 팬클럽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 하다.
이번 앨범의 믹싱 과정에서도 베이스의 멜로디 라인은 가능한 충분히 존중되었다.
힙합을 비롯한 모든 펑키(FUNKY)한 것도 멜로딕한 팝에 열광하는 드러머 유철상.
요즈음 피지카도 파이브(PIZZICATO FIVE)의 노미야 마끼에게 푹 빠져있기도 한 그는
하루종일 음악을 듣고 남은 시간에는 하루 종일 연습하는 노력파이다. 그는 애초에
<상업 발라드>라 명명되었던 <쥐는 너야>를 작곡하는 과정에서, 명색이 '발라드'임에도
불구하고 괴이한 행진 드럼을 선보여 멤버들과 충돌을 빚은 적이 있다.
지금에 와서 그 곳은 독특한 드러밍과 함께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히는데,
<쥐는 너야>의 작곡 크레딧에 유철상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여기서 연유되었다.
자의식 강한 눈빛을 지닌 고교 2년생, 정대욱, 지금은 처음 들어왔을 때 그에게 파워 코드를
가르쳐 주었던 이석원보다 훨씬 기타를 잘 치게된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앨범 모든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발관의 데뷔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의 부클릿에서 특이한 점은 각 곡마다 세세하게
어느 부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니네 이발관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편적인 사실들 중의 하나이다.
얼굴없는 밴드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완성하고 난 밴드는 다시 작곡과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은 언뜻 보면 생경한 모습으로, '연주 못 하기 '자체를 하나의 전략 이미지로 구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에 반(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던 록 그룹은 연주도 못하고 게을러야
하지 않았던가.
"연주 못 하기를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저희 연주 경력 만큼 연주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일년 반이 되어 앨범 한 장을 냈으니 이년 삼년째 되는 때엔 또 그에 맞는 작곡과 연주를
할 수 있어야 겠죠. 저희는 성장할 것이고 언니네 이발관은 그 점이 즐겁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얼굴을 알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무엇보다 사생활이 침해받길 원치않는 것이 가장 크다. 지금껏 여러 신문, 잡지에
그들의 인터뷰가 나갔지만 한 번도 멤버들의 얼굴 사진이 여느 경우처럼 온전하게
실린 적은 없었다. 이제는 이미 사진기자들과의 실랑이도 필요 없을 정도로
촬영 기피자들로 낙인이 찍한 셈이다.
마음을 다한 작곡과 신실한 연습' 언니네 이발관이 보여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정말 그 약속이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는 것은 흔하게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 선사될 것이다.
그동안 무성하게 떠돌던 언니네 이발관에 대한 소문은 이제 그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그들의 앨범이 발매되어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소문처럼 펑크 그룹일까,
아니면 모던 록 그룹일까. 판단을 여러분에게 맡긴다. 과연 그들이 여기저기 기사거리로
등장하고 한국록의 대안으로서 대중음악 역사의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비틀즈와 데이빗 보위와 산울림을 끔찍히도 좋아하는
네 명의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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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국내 인디중 제일 좋아하는 언니네 이발관입니다.
스스로 언니네빠라고 생각하고 있음.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좋아해오고 있습니다.
좀 길어도 읽어주시길..
재밌어요~!
아래부턴 직접 정리했심다 =_=a
하이텔 헤비 메탈 동호회 모던락 소모임 출신 밴드들
노이즈 가든,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데이트리퍼, 코스모스, 스웨터,
줄리아 하트, 두소년, 이스페셜리 웬, 아소토 유니온, 문 라이즈 등등 그외 다수
언니네 이발관 바이오 그래피
Vocal 이석원
Guitar 정대욱(혹은 정바비) (1,2집) -> 이능룡 (3,4집 현재 탈퇴) -> ?
Bass 류기덕 (1집) -> 故 이상문 (2집) -> 정무진 (3,4집 현재 탈퇴) -> ?
Drum 유철상(혹은 김반장) (1집) -> 김태균(혹은 Tazz) (2집) -> 전대정 (3,4집)
정대욱 (혹은 정바비)
언니네 이발관 -> 줄리아 하트 -> 바비빌 (줄리아 하트와 병행),
연진 (라이너스의 담요 보컬 왕연진 솔로 프로젝트) ->
2006 영남대 락 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때 탈퇴한 이능룡 대신 언니네 이발관 기타로 공연
이능룡
언니네 이발관 -> 재주소년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 유상봉 대신 공연
-> 쌈지 스테이지 8Th 쑈쑈쑈에 언니네 이발관 기타로 공연
류기덕
언니네 이발관 -> 온라인 게임 회사 '위메이트' 개발 이사
故 이상문
노이즈 가든 -> 언니네 이발관 -> 간경화 악화로 뇌사상태로 사망
정무진
재즈 베이시스트 세션 -> 언니네 이발관 -> 더 캔버스
유철상
언니네 이발관 -> 비닐 -> 아소토 유니온 -> 윈디 시티
김태균 (혹은 Tazz)
블랙 신드롬 -> 언니네 이발관 -> 조이박스 -> 슈퍼 특공대
전대정
모 블랙메탈 그룹 -> 언니네 이발관
아래는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96년도 발매) 앨범 자켓과 수록곡인 우스운 오후 (Funny afternoon)
첫댓글 '코드 Cm를 쳤을 때 그것을 씨메이저가 주는 느낌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ㅋㅋㅋ 말이 틀렸삼 CM나 C로 해야 씨메이저임..ㅋ
OK! 아함 글 재밌지 않나요?
뭐가 일케 길어...ㅋㅋㅋㅋㅋㅋㅋ 대박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