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온갖 예술풐들이 쏟아져 나오다니?
만추, 가을빛이 사위어가는 가을의 끝자락,
이틀 동안 팔복 예술공장에서 놀았다.
팔과정과 신복리의 합성어인 팔복동에 공업단지가 들어선 것은
1969년이었다.
전주 제지 삼양사, 모나미연필,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쏘렉스를 비롯
많은 공단이 들어서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고,
쏘렉쓰는 훗날 써니라는 이름의 썬 전자로 변모해서
지금은 추억이 된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었고,
오랫동안 공장이 멈추었던 그곳을 우여곡절 끝에
전주시에서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팔복 예술공장을 만든 것이다.
음악을 듣는 카세트테이프만 만들던 공장에서 온갖 예술을 다 생산하는
예술공장, 공장이 아니라 광장이 낫지 않을까?
광장 한 쪽에서는 만들레나 질경이가 자라고,
한쪽에서는 햄버거나 돈까스가 나오고,
또 한쪽에서는 오래 된 미래의 피카소들이 하늘까지 닿을
캔버스에 무한대의 그림을 그리는 광장,
그 광장을 상상하며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보낸 이틀이었다.
표현주의자였던 에드슈미트(Kasimir Edshmib)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은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말을 들은 카프카가 야누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드슈미트는 내가 평범한 사건 속에 기적을 슬쩍 끼워
넣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그의 중대한 오류입니다.
평범한 것 그 자체가 이미 기적인 것입니다!
나는 다만 그것을 기록할 뿐입니다.
나는 사물에 대하여 마치 반쯤 어두운 무대 위의 조명사처럼,
빛을 비치게 할는지 모릅니다. 대낮의 밝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눈을 감고서 거의 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늘 상 대하는 평범한 사물들, 그 속에 숨어 있는 기적들이 있고,
그 기적들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비범한 사람들의 특기가 아닐까?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저마다 고유의 빛깔과 향기가 있다.
그렇게 평범함 속에 기적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것을 발견한 카프카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도 하는 예술藝術을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피카소를 두고 야누흐가 ‘피카소는 방자한 데포르미시옹 화가’라고 말하자
카프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카소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아직 들어와 있지 않은,
아직은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하나의 ‘거울’입니다.
예술은 때로는 시계와도 같이 ‘앞서 가는’ 것입니다.”
어차피 한 번 밖에 못사는 것, 예술적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술을 위한 예술, 무엇이 나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무엇이 나쁜가?
쾌락을 위한 예술 무엇이 나쁜가?
그것이 예술인 바엔 무엇이 다른가?“
고갱의 글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마흔의 나이까지 생업에 몰두하고서 마흔 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안 까지 팽개치고
그림에 몰두하였고, 온갖 환란을 겪은 뒤에
그 자신만의 예술 혼으로 인류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로 예술을 해야 할 것인가?
“예술이란 것은, 여보게들,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이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 예고하건대, 죽고 말지.“
베를레르의 글이다.
자신만이 살 수 있는 삶을 여한이 없도록 살고, 자신만이 성취할 수 있는 예술,
자신을 남김없이 투영할 수 있는 거울 같은 예술,
모든사람들이 그 예술 같은 삶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0년 11월 7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