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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매(124회) 나그넷길 5
"아니예요.
그런 죄가 아니라,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귀양을 갔어요"
"억울한 죄라니?"
"자기가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뒤집어 씌우는 바람에 꼼짝없이 그만 죄인이 됐지 뭐예요"
그러자 주모가 혀를 끌끌 차고서 말한다.
"저런 억울할 데가 있나.
세상에...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맹주 땅으로 귀양을 가다니, 신수가 사나워도 보통 사나운게 아니었구먼.
어디 뭣이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좀 얘기해 보라구.
처녀, 참 시장할텐데..."
"예, 만두 한 접시 주세요"
"그럼 얘길 잠깐..."
주모는 주방으로 가서 서둘러 만두를 한 접시 담아가지고 나온다.
시장했던 터이라 월미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를 세 개나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나서야,
"저... 주인집에 불이 났지 뭐예요.
한밤중에... 누군가가 불을 지르고서
주인을 죽이려고 식칼을 들고 방에 뛰어 들어갔는데..."
하고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월미는 내왕이가 그 일을 실제로 저질렀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모함에 의해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는지 확실한 것은 알 수 가 없으나,
춘매한테서 아리송한 얘기를 들은 뒤로는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해 오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막상 나그네길에 올라서 이렇게 낯선 주막에서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니 자연히 그를 변명하듯 억울하게 귀양을 간 쪽으로 거침없이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월미의 얘기가 끝나자,
남정네가 뜻밖에도, "아니, 그거 내왕이 얘기 아니야?"
하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머"
월미도 놀란다.
주모는 어찌된 영문인가 싶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처녀, 맞지? 내왕이 얘기지?"
"예, 맞아요"
"아하, 이거 참 우연인데...
내왕이가 내 조카라구. 생질(甥姪)이지"
"어머, 그래요?"
월미는 별안간 무척 수줍어진다.
내왕이를 찾아가는 나그네길에 뜻밖에도
그의 외숙(外叔)을 만나다니, 희한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내왕이를 찾아 맹주로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 같은 그런 길조(吉兆)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럼 처녀도 서문경네 집에 있었는가?"
월미는 '예'하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아무 대답이 없자,
남정네는 그렇다는 걸로 알고, "아하, 그렇구먼..."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월미는,
"아니예요. 저는 그 집에 있지 않았어요. 딴데 있었다구요"
고개까지 내저으며 거짓말을 한다.
어쩐지 서문경의 집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송혜련을 죽인 범인인 터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
"아, 그래. 흠-"
남정네는 술잔을 들어 쭉 들이켜고는 안주를 듬뿍 집어 입에 넣고 우적 우적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내왕이와 어떤 관계였는지를 짐작하겠다는 듯이.
"이름이 뭔가?"
이제 남이 아니라,
생질의 애인을 대하는 그런 어조의 질문이다.
월미는 좀 머뭇거리다가,
"월향(月香)이에요"
하고 대답해 버린다.
어쩐지 월미라는 본이름도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월향이라... 기생 이름 같네. 기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주모가 코 언저리에 살짝 웃음을 떠올리며 말한다.
"허허허..."
남정네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자 월미는 자기도 모르게 한손으로 얼굴의 갈아 뭉갠 쪽 볼때기를 살짝 가리며 약간 사팔뜨기인 눈을 내리깐다.
"얼굴은 왜 그랬어?"
남정네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그저 좀 다쳤어요"
"좀 다친 게 아니라, 많이 다쳤구먼 그래.
저런 얼굴로 애인을 찾아가면 좋아할까? 하하하...
하기야 맹주 땅까지 가는 동안에 깨끗이 낫겠지"
주모가 재미있다는 듯이 지껄여대자,
남정네는 좀 민망스러운 듯 화제를 돌린다.
"처녀 얘기를 들으니 내왕이가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귀양을 갔구먼. 허 그것 참... 난 그런 줄을 까맣게 몰랐네.
보나마나 서문경이란 놈의 수작이지 뭐. 뻔하잖아.
내왕이의 처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말이야"
"글쎄요. 그런 것 같애요"
월미는 조심스럽게 동의를 한다.
아직 청하현을 벗어나지 못한 터이어서
어쩐지 좀 켕기는 것이다.
"내왕이가 그 두 번째 여자 때문에 신세를 조졌다니까.
그년이 서문경이하고 안 붙었으면 그런 일이 생겼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년 나중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면서?"
"예"
"왜 자살을 했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주모가 또 불쑥 끼여든다.
"소문을 들으니까 그 여자 귀신이 밤으로 나타난다던데, 정말인지 모르겠어"
"정말이에요"
얼른 대답을 한 월미는 속으로 아차, 싶다.
그래서 다시 정정하듯이 말한다.
"나도 소문에 들었는데, 정말 유령이 나타나나봐요"
"목을 매달아 죽었으니 그년 유령이 되어 나타날 만도 하지. 원혼은 저승에 잘 못가는 법이니까. 직접 서문경이한테 좀 나타나서 그놈 질겁을 하고 꼬꾸라져 뒈져버렸으면 좋겠는데..."
남정네는 내왕이의 외숙으로서 억울하게 귀양을 간 생질의 원한을 대신이라도 하듯 마구 서문경을 저주해댄다.
"실제로 유령이 서문경에게 나타나서 매일 밤 괴롭힌다지 뭐예요. 내가 소문에 들으니까..."
하고 월미는 유령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소문에 들었다면서 마치 자기가 직접 겪은 것처럼 자세히 지껄여대는 바람에 남정네와 주모는 좀 으스스하면서도 여간 구미가 당기는 게 아닌 듯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서문경이 유령에 놀라 벌거벗은 채 기절을 한 대목을 얘기했을 때는, "그놈 그때 칵 뒈져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꼴도 좋고... 허허허..."
남정네는 서문경이 깨어난 게 몹시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유령이 서문경뿐 아니라,
다른 하녀 하나에게도 나타난다면서 월미는 직접 자기가 겪은 사실을 남한테 들은 것처럼 말을 조심해 가면서 자세히 늘어놓았다.
월미의 얘기가 다 끝나자 주모는,
"아무래도 그 집에 무슨 일이 나겠는데..."
하고 혀를 살살 내둘렀고,
남정네는, "그놈이 뒈져야 된다니까, 그놈이..."
술기운에 불그레해진 눈알을 대고 굴렁거렸다.
어느덧 해가 지고,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월미는 그 주막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남정네도 길을 가는 나그네여서 그 집에서 유숙했다.
여인숙(旅人宿)을 겸한 주막이었으나, 나그네를 재우는 방은 하나뿐이어서 남정네가 그방을 차지하고,
월미는 주모와 함께 안방에서 잤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월미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후에 서문경의 집을 나서기는 했으나, 중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줄곧 걸어오느라 몸이 꽤나 지쳐 있었다.
그런데도 나그넷길에 오른 첫 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앞으로 찾아갈 맹주 땅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멀어 심란해 그런지 도무지 잠이 오지가 않았다.
오천리가 되는지, 만리가 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맹주 땅,
빨리 잘 가야 가을에나 도착할 것이라는 그 머나먼 곳을 기어이 찾아갈 것인지, 찾아가면 과연 내왕이를 만날 수가 있을 건지... 생각할수록 막막하고 암담하기만 했다.
그리고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주모의 유혹이었다.
안방에서 둘이 같이 자게 되자, 주모는 월미를 자기 집에 붙들어 앉히려고 온갖 말을 다했던 것이다.
"처녀,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
맹주 땅이 어디라고 처녀가 혼자서 찾아가려고 그래.
남자라도 혼자서는 위험한 길이라구. 알겠어?"
주모는 이런 말로부터 시작해서,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도처에 도적의 무리가 들끓는 판이라구. 도적떼에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처녀 신세가 어떻게 되는지 알어? 볼장 다 보는거라구"
이렇게 겁을 주기도 했고,
"설혹 맹주 땅까지 갈수 있다 하더라도 애인을 만날 수는 없다 그거야. 귀양을 간 죄인을 관원들이 만나게 해줄 것 같애? 어림도 없다구. 그곳은 보통 사람들은 못 들어가는 생지옥이라니까"
혹은, "세상에 남자는 얼마든지 있다구. 하늘에 널린 별 만큼이나 많단 말이야. 안 그래?
그러니까 다른 좋은 남자를 찾도록 애를 써야지,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없는 귀양간 죄인을 잊지 못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구.
그러니까 처녀, 여기서 나하고 같이 지내자구.
그러면 내가 수양딸처럼 데리고 있다가 좋은 남자를 골라서 시집을 보내줄거니까. 데릴사위를 얻어서 오래오래 같이 살아도 좋고. 나도 외로운 신세라구. 자식도 없고... 어때? 잘 생각해봐. 응?"
이런 식으로 간절하게 유혹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당장 사내가 그리우면 얼마든지 사내하고 같이 잘 수도 있다구. 여기는 남정네들이 길을 가다가 자고 가기도 하는 곳이니까.
보라구, 오늘밤도 저 방에 남정네가 자고 있잖아. 히히히...
저 남정네는 처녀가 좋아하는 남자의 외숙이라니까 같이 잘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히히히..."
킬킬 웃으며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모의 그런 말들이 머릿속에 한데 뒤엉켜 떠나질 않아서 월미는 심란하고 막막하면서도 한편 솔깃한 대목이 없지도 않았다.
맨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당장 사내가 그리우면 얼마든지 사내하고 같이 잘 수도 있다는 말은 야릇하게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이었다.
지난해에 내왕이의 품에 안겨 처음으로 남자의 맛을 알게 된 월미는 그 뒤로 더는 남자의 살을 접할 수가 없어서 노상 안타까운 갈증 같은 것을 느껴오는 터였다.
그런 그녀의 몸뚱어리를
주모의 그 말은 근질근질하게 긁어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월미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으응-"
하고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건넌방에 혼자 자고 있는 내왕이의 외숙이라는 남정네의 숨소리라도 들으려는 듯이 가만히 귀를 그쪽으로 곤두세워 본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니,
곧 드르릉 드르릉...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왜 그렇게 무정하게 들리는지,
월미는 어둠 속에서 공연히 혼자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얼른 돌아누워 버린다.
이튿날 아침에도 월미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모는 월미가 부디 자기 집에 눌러앉아 주기를 바라면서도 이제 슬금슬금 눈치만 살필 뿐 더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나자 남정네가 불쑥 말했다.
"처녀, 자 같이 출발하자구.
나는 맹주 땅까지는 안가지만, 그쪽 방향으로 가니까"
"아, 그래요?"
"양가구(陽可溝)라는 데까지 볼일이 있어서 가는데, 이삼일 걸린다구. 그러니까 거기까지는 내가 데려다 줄테니까"
"예"
월미는 선뜻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주모는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을 떠올리며,
"처녀, 나중에 후회는 말라구. 신세가 가련하게 돼도... 알겠지?" 하고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남정네는 어제 해질 무렵에는 맹주 땅을 찾아가려는 월미를 어리석은 짓이니 단념하라고 말리더니, 이제 자기가 양가구까지는 데려다 주겠다면서 앞장을 서 주막을 나섰다.
뜻밖에도 생질인 내왕이를 찾아가는 처녀인지라,
외숙으로서 차마 말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월미는 보따리를 들고 남정네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남정네는 어제 해질녘에 주막에서 술을 마실 때와는 달리 별로 말이 없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남정네가
월미는 어쩐지 믿음직하게 여겨져 싫지가 않았다.
만약 내왕이가 귀양을 가지 않고 자기와 결혼을 했다면 이 어른이 바로 시외숙(媤外叔)이라는 생각을 하니 묘하게 친근감 같은 것이 솟기도 했다.
한참 가다가 월미는 너무 아무 얘기도 없이 걸으니 심심해서 불쑥 입을 열었다.
"아저씨, 어젯밤에 주무시면서 코를 되게 고시던데요"
"아, 그래?"
남정네는 뒤를 돌아보며 히죽이 웃는다.
"무척 피곤하셨던 모양이죠?"
"그랬던 것 같애. 내 코고는 소리가 그쪽 방까지 들리다니...
그럼 처녀는 잠을 잘 못 잤겠는데..."
"슬그머니 화가 나더라구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하하하... 괜찮아요"
이렇게 한 번 서로 말문이 열리니 남정네도 곧잘 지껄였다.
날씨는 화창했다.
여기저기 꽃도 피어 우거져서 길을 가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봄날이었다. 그러나 오후로 접어들면서부터 하늘이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봄인데도 마치 여름철의 소낙비를 머금은 듯한 그런 구름이 시꺼멓게 몰려들었다.
월미와 남정네는 인가라고는 눈에 띄지 않는 호젓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 계속 125회~~
첫댓글
월미가 내왕이를 못 잊어
맹주땅으로 가는길에
내왕이 외삼촌과 동행을
하더라도 서문경 처럼
그런 개같은 인연만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추천합니다.
한낮의 햇볕이 제법 따갑습니다
행복한 오후 되시길요
감사합니다
어떤 남자가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예쁜 아가씨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남녀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합석을 했고, 그 예쁜 여자 집으로 가게 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그녀의 집에
도착한 그 남자는 침실로 가 그녀의 침대에 앉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넥타이를 푸는데 침대 머리맡에 어떤 잘생긴 남자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었
다.
“ 저, 이거 혹시 당신 동생이나 오빠?”
“ 어머, 아니에요.”
“ 그럼 남편이야?”
“ 어머 아니에요.”
“ 그럼 남자친구?”
“ 아닌데요.”
그는 무척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 사진속의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
“ 그럼 대체 이 남자가 누군데?”
그녀는 수줍은 듯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 저 수술받기 전 사진이에요!”
“ 으~~~악~~~!!!”
못 생기고 살짝 곰보에다 사팔뜨기 지만 한 몫 할 것 같은데요
내왕이를 만나고 무송이를 만나서
서문경이를 어쩌고 저쩌고
근데 어떻게 정조관념도 없고
서 문경이는 임신도 못 시키는 놈인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에구, 월미 사정이 딱도 하네요
내맘같아선 걷고 또 걸어서 꼭 내왕이를 만났으면 좋으련만
내일 얘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추천은 꾸욱~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감사합니다
시원하게 추천 꾹 누지리고~~~
감사합니다
추천콕할라고
한참을 찾았네요 맨 아래로 밀려나있어서 ~~~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가 오려 하고
인가는 없고
.호젓한 길이고...
걱점스럽네요 ㅎ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정리할일이 있어 잠시
한눈 팔고 다녀습니다
여전히 연재가 돼고 수고가 많아요
그래서 꾹
비가오니 한가해 지셨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