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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이버 문단(文壇)
은유시인
난, 어려서부터 미술방면엔 재능이 뛰어났고 이후 사회에 진출한 뒤로도 줄곧 광고디자인계통에서만 일을 해 온 사람으로, 컴퓨터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 왔다. 내가 전문으로 하던 일들은 기업체 심벌마크 및 로고 디자인을 비롯하여 카탈로그, 팸플릿, 포스터, 팩케이지, 레이블 등 상업용 인쇄물과 관련된 디자인으로 부산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관련 디자인계통에서는 꽤나 유명한 광고전문디자인회사로 성장시켜 왔다. 그리고 상당한 수입이 있었기에 웬만한 최신장비들은 누구보다 앞질러 구입하곤 하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쇄관련 디자인계통에선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소형 컴퓨터의 그래픽전용 프로그램이 현장의 수준을 맞춰 줄 수 있을 만큼 진보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단순한 그래픽기능을 가진 것만으로도 컴퓨터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까닭도 있었다. 따라서 그래픽 전용 컴퓨터가 나오고도 한동안은 재능과 경험에 의한 수작업으로 모든 디자인작업이 이루어졌다.
10년쯤 전, 애플사에서 몇 차례에 걸쳐 업그레이드 된 ‘맥투에프엑스(MacⅡFX)’란 매킨토시(Macintosh)를 선보였는데, 지금으로 치면 50만 원짜리도 안 될 형편없는 시스템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가격도 변두리의 웬만한 소형아파트 한 채 값을 능가하였다.
그 매킨토시를 구입한 이래 업그레이드된 매킨토시가 출시될 때마다 추가로 구입하면서 차츰 컴퓨터에 익숙해져 갔으나 직접 매킨토시를 다루기까지는 이후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여 년간 운영해오던 광고회사가 손아래 동서의 농간으로 부도가 났고, 그 이래 매킨토시를 다루는 오퍼레이터의 인건비마저 꽤나 부담스럽게 느꼈기에 직접 매킨토시 앞에 앉아 이리저리 뚜드려 보고 조몰락거리며 장난도 치다보니 불과 한두 달 만에 웬만한 디자인은 물론 편집작업까지 직접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해진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인쇄계통에서는 일반 컴퓨터인 아이비엠(IBM)보다 디자인ㆍ편집기능이 월등한 매킨토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가격이 많이 떨어진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작업의 신속성과 더 완벽한 완성도가 더 큰 이유라 할 것이다.
매킨토시에서 사용하는 작업툴, 즉 응용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사진이미지 작업툴인 포토샵(Photoshop)과 애니메이션 작업툴인 일러스트(Illustrator), 지면(紙面) 편집툴인 쿽익스프레스(QuarkXpress)가 그것인데, 제법 오랜 기간 디자인작업을 해왔던 때문인지 그들 프로그램이 의외로 쉽게 다가왔고 따라서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흔히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아이비엠 컴퓨터와는 그 기능에 있어 조금은 차이가 났다. 노상 매킨토시를 끼고 앉아 작업을 하면서도 일반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그다지 없었기에 그러한 기능상의 차이점에 대해 별반 관심을 갖지는 않았고, 일반컴퓨터는 어쩌다 참고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는 정도로만 활용했기에 특별한 조작방법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1년 전쯤 우연히 알게 된 한미르(Hanmir.com)란 사이트의 40대 채팅방에서 채팅의 즐거움에 매료되어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매달린 적이 있었고, 이후 그 채팅방에 드나들던 한 친구가 개설한 ‘삶과사랑이야기’라는 클럽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채팅보다는 글 쓰는 것에 더 큰 재미를 붙여갔다. 그 후론 여러 개의 문학관련 클럽이나 카페 등을 알게 되면서 시는 물론 수필,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줄기차게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그래도 몇몇 있음을 확인하고는 아예 모든 것을 때리 치우고 글만 본격적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여러 번의 슬럼프와 좌절을 겪었다. ‘등단문’이란 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나의 다작에 제동을 거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루에 열편이 넘는 글들을 내지르듯 게시판마다 올려놓았으니, 그 짓이 그리도 언짢았나 보다. ‘글 같지 않은 글, 허접하고 쓰레기 같은 글을 그만 올리라’는 노골적인 욕설과 비난의 댓글들이 나를 위축시켰다.
그런 협박성 댓글들이 자꾸 올라오자 더 이상 글을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나 스스로도 내 글이 허접한 쓰레기처럼 여겨지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마저 꺾여버린 것이다. 내 글이 누군가를 타깃으로 한 인신공격성 글도 아니요, 독자를 선동하려하거나 음란한 내용으로 꾸며진 글도 아닌데 구태여 내 글을 갖고 자꾸 시비를 거니, 결국 ‘(거울 없이는) 내 얼굴을 내가 직접 들여다 볼 수 없듯’ 내 눈엔 내 글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글이라 할 수 없는 어떤 큰 결함이 내 글에 있으리란 생각과 어쩜 내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자질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이후 한동안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운영해왔던 사업도 접어야 할 마당이고 따라서 벌이도 마땅찮은 처지에 뒤늦게 글 쓰는 것으로 낙을 삼았고, 오로지 그로인해 큰 위로를 받으며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는데, 그마저 포기해야한다는 것이 내게 있어 결코 넘을 수 없는 큰 시련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조건 없이 누구든지 한미르나 다움(Daum.net)사이트 등에 카페나 클럽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이트마다 클럽이나 카페 등을 한꺼번에 여러 개 만들어 놓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비록 지금은 글쓰기에 있어 서툴지만 줄기차게 글을 써 나가다 보면 자연 글 쓰는 솜씨도 늘 것이고, 늘다 보면 당연히 작품다운 글도 나올 것이 아니겠냐는 나름대로의 믿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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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컴퓨터
네모난 얼굴로
내가 다가서기를 기다리는 너는
참 희한하구나
너에게는 많은 폴더가 있고
그 폴더 안에는 또 많은 파일들이 들어 있지
난 수많은 폴더들을 생산하고
또 그 폴더 안에 수많은 파일들을 창조하면서
한편으로는 필요 없어진 파일이나
거추장스러운 폴더를 삭제하고 있지
너에게는 인터넷의 바다가 있더구나
수백만, 수천만…….
바닷가 백사장 모래만큼이나
밤하늘 떠있는 별만큼이나…….
수많은 정보들이 유영하고 있구나
클릭!
클릭!
클릭!
각기 개성 있는 얼굴로
각기 개성 있는 목소리로
각기 개성 있는 성격으로
내게 다가와 추파를 던지는구나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연인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이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다가서는 너!
슬픔도
고통도
외로움도
절망도
그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겠노라
너는 부단하게 나를 유혹하고 있지
우정과
사랑과
우애와
이상을
그 모든 것을 대신하고자
너는 부단하게 나를 유혹하고 있지
클릭!
클릭!
클릭!
깨알 같은 글들과 화려한 그림들을 보면서
어느덧 하루해가 지난 줄도 모르고
어찌 보면 너야말로 바보상자 같구나
/은/유/시/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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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수많은 포털사이트들이 있고 그들 포털사이트 안에도 수많은 문학관련 클럽이나 카페 등이 있다. 나는 여태껏 ‘한미르’와 ‘다움’에만 익숙해져있기에 다른 사이트들은 차치하고 이들 사이트만 해도 수만 개가 넘는 문학관련 클럽이나 카페가 자리하고 있어 우선 그 엄청난 수효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하물며 다른 포털사이트까지 망라한다면 아마 수십만 개는 족히 되리라 짐작하고도 남겠다.
책 안 읽기로 유명한 것이 한국 사람들일진대 문학관련 클럽이나 카페가 어찌 그리 많을 수 있으며, 또 사람들이 어찌 그리도 많이 몰려드는가? 참으로 신기하다 못해 불가사의한 현상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몇 만, 어쩌면 몇 십만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카페니 클럽이니 만들어서 나름대로의 독자층을 형성해가면서 문학을 즐기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것이다.
클럽이나 카페 등을 개설하고 운영하면서 실감한 것은 그들 클럽들 중 상당수는 기업형으로 변모해 감을 느낀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클럽 등을 개설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홍보하는 방법도 잘 모르고 관리방법도 서툴러 회원수가 고작 열댓 명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클럽들은 회원수가 만 명, 십만 명을 넘어선 클럽도 상당수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대충 흩어본 바에 의하면, ‘이어도(어느 게으른 몽상가의 꿈/개설일:2002/02/24)’라는 클럽은 회원이 5천명을 넘어섰고, ‘천가지의슬픈사랑이야기(개설일:2000/02/21)’라는 클럽은 10대가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회원수가 무려 2만2천명을 넘어섰다. 그 정도라면 아무리 사이버라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가히 구멍가게 수준은 넘지 않겠는가라는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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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왜 글을 씁니까?
나에게
아직까지
그리 묻는 사람이 없었네요
혹시
당신께
그리 묻는 사람은 있었나요?
물론
나에게
그리 묻는 사람이 있을 거라면
부끄럽지만
아직까진
그를 위해 적당한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답니다
혹시
당신에게
그리 묻는 사람이 있을 거라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수 있습니까?
어느 날 문득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뜻 모를 격한 감정들이
내 의지와는 달리 나를 충동이고
말 알들을 쏟아내게 하였을 때
그것이 부끄러움인지
그것이 우둔함인지
내 스스로 분별력을 잃고
갈 바 몰라 헤매기 일쑤였답니다
당신의 혜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당신의 기름진 텃밭에
뿌리 내릴 수만 있다면
이다지도 두렵지는 않을 겁니다
/은/유/시/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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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이들이 만든 규모가 비교적 큰 클럽이나 카페 등에 글을 올리면서 그들 클럽 등을 운영하는 주인들 대부분이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과 그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간파했다.
첫째는 그들 모두가 대단한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얼굴 없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카리스마라……. 언뜻 이해되지 않았으나 오프라인상의 대규모 모임의 장(長) 못잖은 권위와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등단문에서 쫓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군데나 되는 클럽 또는 카페에서 그것도 거의 같은 시기에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또 겪게 되었다. 물론 내가 네티켓을 무시해가며 그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거나 잘못이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추측컨대) 그들 주인들보다 몇 곱절 더 많은 글을 그리고 더 잘 써진 글을 올린 것이 주인으로서는 자신의 권위를 도전하는 행위라 여겼을 것이고, 어쩜 자신의 팬들을 엉뚱한 사람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평화의울타리’라는 카페에서는 그 카페의 운영자인 모 여인이 나의 시를 그림태그를 사용하여 멋지게 꾸며 주었고, 나는 그 감사의 표시로 공개적으로 그 여인에게 헌시(獻詩) 한편 써 준 것이 큰 화근이었다.
그 카페의 주인은 그 즉시 나를 영구 추방하였으며, 내게 메일을 보내 ‘자신과 그 여인과는 그럴 수 없는 관계이며, 내가 그 여인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고 유치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몇 차례의 메일을 내게 보낼 만큼 중대한 사안이었을까?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 또 몇 살이나 되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여인일 뿐인데…….'
카페 주인들은 운영자나 부운영자를 여럿씩 거느리고 있으며 대개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 운영자들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카페의 관리는 물론 회원들을 끌어 모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에 대한 대가가 있을 리 만무하고 어찌 보면 주인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으로 마치 사이비 종단의 교주를 모시고 있는 듯한 감마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둘째는 그들 카페 주인들은 자신의 글에 대해 일체의 평가를 금기시 하고 있다. 내가 비록 글쓰기를 좋아하고 창작 속도도 빨라 다작에 속하지만, 나는 등단한 작가도 아니요 ‘은유시인’이란 대명도 진짜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
대명이란 사이버에 드나드는 사람치고 안 가진 이가 없을 것이다. 사이버 상에는 별 희한한 대명이 다 있듯이 설령 어떤 이가 ‘김대중 대통령’이란 대명을 사용한다 하여 누가 뭐랄 사람 있겠는가. 설혹 김대중 대통령께서 이를 안다 하더라도 웃고 말 일이지…….
이 은유시인이란 대명 가지고도 입방아 찧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했다. 시인도 아니면서 왜 은유시인이라 자칭하느냐면서……. 나 역시 등단하지 않은 진짜 글쟁이가 아니므로 누군가가 내 글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잘잘못을 지적하여 준다면 이보다 더 바른 길잡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지적이라면 오히려 황송하고 고마운 것이지…….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은 이런 평을 무시한 채 ‘쓰레기 같은 글 집어치워라’라는 충고 때문인 것이다. 진짜 글쟁이가 아닌 내가 쓴 글이 진짜 글쟁이같이 세련되고 미려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겠는가. 진짜 글쟁이가 되기란 그리 쉽다면 결국 문학이란 것도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학관련 카페 등을 찾아와 글을 올리는 사람들 가운데 정작 등단하여 문단에서 인정받는 진짜 문인들이 몇이나 될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어쩌면 거의 모두라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글 쓰는 재미에 또는 글 읽는 재미에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고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너도나도 글 쓰는 것을 배우고 습작하는 과정이라 여겨지며, 형편없는 글이야 읽다 말거나, 읽고도 모른 채 할 수도, 아니면 잘 썼다 하고 거짓 평을 남겨도 상관없겠지만, 가능성이 있는 글에 대해서는 오히려 혹독한 비평을 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남의 글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관심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비록 내 자신이 글쓰기의 대가가 아닐지라도 남의 글을 읽다보면 나름대로 흠을 발견할 수가 있다. 몇 가지 흠만 고친다면 상당한 수준의 글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글이 많다. 그러나 카페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카페 회원들 간에 자신이 대단한 실력가임을 자부하고 있을 터인데 그러한 지적이 과연 가당찮겠는가. 그러니 대부분의 문학관련 카페 주인들은 자신만의 왕국에 군림한 군주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카페에 소속된 회원들은 그들 주인들의 글에 대해 섣부른 평을 터부시 하는가 보다.
셋째, 그들 카페 주인들은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자신의 카페에 소속된 회원들이 타 카페 등에 가입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데, 특히 카페의 간부 정도라도 된다면 타 카페와의 이중가입을 일체 불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누구든 간에 두 군데든 열 군데든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는 것이며, 또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그들은 그리 생각 않는 것이다.
내가 만든 카페나 클럽 등은 개설하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 회원이 고작 수십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카페에는 볼거리가 있어야 손님들이 찾아오듯이 문학 카페들도 시나 수필 등 읽을거리만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동영상과 음악, 그리고 각종 볼거리들도 많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직 그러한 태그에 익숙지 않아 ‘섬진강나루터’란 카페 부운영자인 모 여성에게 내 카페에 와서 잠시만 도와 달라 요청했었다. 물론 그녀도 흔쾌히 도와주기로 약속했었고, 그리고 그 후 잠깐씩 짬 내어 내 카페를 단장해 주었다. 그런데 이를 그녀가 속한 카페의 주인이 알아챈 것이다. 그는 ‘카페 주인끼리 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식 밖의 일’이라 했다. 그리고 나는 물론 그녀까지 그의 카페로부터 영구추방 당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네 회원을 빼온 것도 아닌데……. 그렇듯 초보자의 카페에 자발적으로 들러 좀 도와주는 것이 일종의 기업윤리나 상도의를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인지는 나로서는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사이버문단을 이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가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행패를 부리는 것은 막돼먹은 행위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이버 상에서의 행패는 묵인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는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사이버 상에서의 사람들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무지에서 오는 것이리라.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숨결, 그리고 사람들의 흔적. 분명 그것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장기를 두던, 바둑을 두던, 게임을 하던, 이쪽 상대로 내가 앉아있듯 모니터 너머로 그 누군가가 나의 상대로 마주앉아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니터를 통해 읽게 되는 글들은 내가 글을 올리듯이 그 누군가가 올려놓은 글들이다. 그 말은 내가 상대로부터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듯이 모니터를 통해 인지되는 상대 또한 당연히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컴퓨터를 갖추고 인터넷만 연결되어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무한대로 열려있다. 문학 또한 마찬가지로 등단을 했든 안했든 개의치 않고 얼마든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으며, 나름대로 자신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도 있다. 어쩌면 사이버를 통한 작품발표야 말로 쉽게 작성할 수 있고 수정ㆍ삭제 또한 용이하다는 이점과 쉽게 발표할 수 있다는 이점, 그리고 쉽게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면 늘어났지 절대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전통 한국문단에서는 인터넷 확산과 더불어 급속하게 형성된 사이버문단을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경향이 짙다. 이유는 검증되지 않은 글들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과 사이버 환경에서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각종 신조어와 이모티콘 등의 남발로 기존 표현방식이 자칫 무너질까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컴퓨터 보급률이나 인터넷 보급률에 있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편리성으로 인해 삼척동자로부터 칠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평소엔 전혀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던 사람들까지 인터넷사이트의 문학관련 클럽이나 카페 등에 가입하고 글을 읽거나 쓰기 시작했다. 머잖아 실제 오프라인 문단보다 온라인상의 사이버문단 규모가 열배, 또는 백배 이상 더 커질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고 보면 사이버상의 시장도 오프라인 시장 못지않게, 어쩌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02/11/21/16:52
첫댓글 장문의 수필 잘 보았습니다. 사실적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좋았습니다. 경험과 예리한 관찰력이 글 속에 살아 있고 어떤 형식을 따르지 않아도 열정적이고 논리적인 해설형에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좋은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희망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라는 말처럼요^*
은유시인님! 많이 공감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인내한다는 것... 건강하심과 평안하심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