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는 정치적이다. 왜냐하면 동시대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욕망의 뿌리와 집단무의식을 읽어내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작팀들은 필사적으로 대중들의 심층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인류의 미래가 결국, 대다수의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것을 긍정한다면, 놀랍게도,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은 이미 영화 속에 등장한 모습과 거의 근접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대중들의 욕망을 예민한 촉수로 감지하여 그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송강호 문소리 주연의 [효자동 이발사]는 자유당 말기부터 신군부가 막 집권하던 80년대 초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청와대에서 근무한 대통령의 이발사를 중심으로 풀어본 영화다. 제작사에서는 영화를 개봉하기 전,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 등 정치인들을 초청하여 시사회를 가졌다. [서편제]가 청와대에서 특별 상영되면서 흥행의 기폭제 구실을 한 것처럼,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유명인사들의 영화 관람은 그 자체가 특별한 뉴스가 된다. 평상시에는 바빠서 영화를 보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조차도 그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에게는 호기심과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저 사람도 봤다는데 나도 봐야지,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든다. 더구나 [효자동 이발사]에는 지나간 시절의 권력 상층부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런데 몇 주 뒤 개봉하는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도 [효자동 이발사]와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50년대 자유당 말기부터 유신정권의 한 복판까지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다. 두 영화 모두 각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은 이야기 전개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4.19 의거나 5.16 혁명, 혹은 북한 공작원들의 남침 사건인 1.21사태 등이 영화 속의 사건 전개와 맞물리면서 중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하류인생]이나 [효자동 이발사]는 셋트 제작에 많은 돈을 들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정교하게 드러나야 공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효자동 이발사]는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청와대가 있는 효자동 오픈 셋트를, 전주시 제 3공단에 짓고 촬영을 했다. [하류인생]은 부천시 오픈 셋트장에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취화선]의 미술팀인 주병도 미술감독의 지휘 아래 1년 2개월만에 완성되었다. 특히 [하류인생]에서 돋보이는 것은 60년대의 명동 거리다. 260여개의 간판이 당시의 모습을 완전히 복원해 내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과거의 모습은 결국 추억과 결합된 어떤 특정 공간이다. 그 공간을 환기시키는 것이 간판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왜 과거의 역사를 불러내는 것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영화가 대중들의 집단무의식을 읽어낸다는 데 동의했다. 그렇다면 지나간 역사,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하던 제 3공화국 시절이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시대의 대중들은 지나간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보기를 욕망하고 있다. 모든 욕망은 결핍의 산물이다. 우리의 어떤 결핍이 지나간 역사를 불러내는 것일까?
과거의 복고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향수영화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가깝게는 2000년 개봉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된 [친구] 신드롬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친구]는 특히 교복세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눌러쓴 모자, 목까지 답답하게 옥죄던 교복 차림의 주인공들은 관객들에게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당시 IMF의 고통스러운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대중들은 따뜻했던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1970년대가 완벽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독재권력의 폭압적 통치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자신이 성장했던 사춘기, 혹은 청춘시절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복고적 정서를 자극하는 영화들은 그 후 [해적, 디스코왕 되다][품행제로][말죽거리 잔혹사] 등으로 이어진다. 모두 1970년대가 배경이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나 [하류인생]이 이들 영화와 다른 점은, 앞의 영화들이 개인사적 이야기에 치중하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영화적 정서를 형성하는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그친 데 비해, 등장인물들의 삶에 훨씬 더 역사가 밀착되어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대 대중들의 욕망이, 개인사적 회고의 정서에서 비판적 성찰의 이성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자신의 청춘시절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울로 현재의 삶을 올바르게 비춰보려는 욕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1950년대 자유당 정권 혹은 1970년대 유신시절에 대한 영화적 접근은, 아직은 우화적이거나 우회적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나 [닉슨]처럼 지나간 역사와 정면 승부하는 영화가 등장할 때, 우리의 현실은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