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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그리고 응봉능선 ①
-비봉에서 사모바위까지-
지난 4월 1일 승가사를 참배하고 일주문을 나선 것이 1시 25분이었습니다. 일주문을 나 서서 약 30m 오른쪽에 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비봉까지는 오르막 길로 약 900m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르막 산길이고 보니 평지의 거리와는 사뭇 다 릅니다.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에 대해서는 자주 갔던 관계로 산을 별로 찍지 안았습니 다. 그러고 보니 자세히 담지는 못했네요. 1시 45분경 비봉에 도착했습니다.
자주 갔지만 매력적인 바위입니다. 비봉은 온통 화강암 바위로 이루어졌기에 경관이 뛰어 나서 수많은 시인묵객 뿐만 아니라 갑남을녀 장삼이사에 이르기까지 자주 찾는 명소이기 도 합니다.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가 있는 정상에 오르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기분이 상쾌한데 여기에 오르려면 약산의 용기가 필요해서 주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수 많은 사 람들이 오릅니다.
비봉이 보입니다.
비봉 중턱에서
여기까지 와서 진흥왕순수비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덜하기에 모두 오르기로 했는데 비니 초님만 많이 갔다며 오르지 않겠다고 해서 네 명이 올랐습니다. 다소 오르기가 험난하지 만 그래도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은 내려 올 때 무서워 울기도 했 었지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비봉 정상부근에서 바라본 풍광
밑에 코뿔소 바위에 부근에 비니초님은 앉아 있습니다. 산 중턱의 집은 승가사입니다. 좌측 하얀바위는 사모바위이고 그 앞으로 살짝 보이는 승가봉, 그 앞이 문수사가 있는 문 수봉이고, 정중이 보현봉인데 문수봉과 보현봉 사이는 대남문이 있습니다.
비봉의 정상 진흥왕순수비가 보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진흥왕순수비임을 알고 있지만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이 비는 무학대시 비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신라 진흥왕 때 이 순수비를 세운 이래 풍상에 의해 글자가 마 모되고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면서 비의 존재가 잊혀져 내려왔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무학대사비로 잘못 알려져 내려왔습니다. 그런 사실을 한승원의 소설 '추사(秋史)'에서 읽 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알려져 오다가 조선 순조 16년(1816년)에 금석학(金石學)의 대가 추사 김정희가 친 구 김경연과 더불어 승가사(僧伽寺)에 놀러 갔다가 이 비를 발견하고 탁본하여 판독하였는 데, 알고 보니 신라의 진흥왕순수비였던 것입니다.
간혹 잘못 전해진 것이 사실처럼 전해지기도 하는데 언제나 눈 밝은 이를 만나면 바로 잡 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봉(碑峰) 정상(해발 560m)에 세워진 진흥왕순수비(복제품) 국보 제3호.
비봉 아래에 이 진흥왕순수비에 대한 안내문이 있어 옮겨 봅니다.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北漢山 新羅 進興王巡狩碑)
-국보 제3호-
『이 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새로이 확보한 영토의 국경을 직접 둘러본 사실 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러한 비를 순수비(巡狩碑)라 부르는데, 진흥왕순수비 가 세워진 곳은 현재 경상남도의 창녕(昌寧), 함경남도 이원(利院)의 마운령(磨蕓嶺)과 길 주(吉州)의 황초령(黃草嶺) 그리고 경기도 북한산 비봉(碑峰) 등 네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비문은 글자가 마멸되어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지역순시를 칭 송한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나오는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은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래 이 비는 오랜 세월이 흘러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글자도 읽기 힘들게 되어 조선 시대에 무학대사가 조선왕조의 도읍지를 찾아다닐 때 이 비봉에 올라와 보니 "무학이 잘못 찾아 여기에 왔다." (無學誤尋到此)라고 쓰여 있어 급히 내려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게 되고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816년, 당대의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는 이 비를 직접 찾아보고 비문을 탁본하 여 연구한 결과 모두 68자를 읽어냈고 바로 이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혔다. 이듬해 김 정희는 다시 이 비를 찾아와 비석 옆면에 자신이 이 비를 찾은 날짜와 이 비가 바로 진흥 왕순수비임을 확인하였다는 사실을 새겨 놓았다.
이 비의 건립연대는 진흥왕 29년 (568) 에 세워진 마운령. 황초령비와 비슷한 시기로 추 정된다. 원래 비석 윗 부분에는 비석돌이 씌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원래 의 비석은 풍화가 심하여 1972년 이곳으로부터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전시 보존 되어 오고 있으며 2006년 10월 원래의 자리에 현재의 복제 비석을 세워 역사적 현장을 보 존해 오고 있다.』
복제품 순수비 측면에는 한글로 "문화재청이 복제비를 복제하여 이천육년 시월 십구일에 세우다"라는 명문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국보 제3호 진흥왕순수비 패션쇼입니다.
첫 번째 모델 산수산님. 비석 아래 서 계셔 보기도 하고
옆에서 앉아 보시기도 하시고
서 보시기도 했습니다. ^^
다음은 두 번째 모델 미소님
세 번째는 염화님
네 번째는 백우입니다.
이번에 언제나 다정하신 염화ㆍ미소님
염화님과 산수산님
비봉에서 바라본 시내
북악산 남산 관악산까지 보이기는 하나 시계가 맑지 못하고 뿌옇습니다. 그리고 중간부분 중앙에서 오른편에 붉은 지붕은 우리 동네 우리빌라네요.
요새는 무슨 새일까요? 곤줄박이인가?
이제는 하산
하산하면서
멀리 노적봉 백운대 망경대도 보입니다. 인수봉도 희미하게 보이긴 합니다. 앞에 험한 능선은 의상능선이지요. 앞으로 이 능선을 한 번 같이 탔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능선입 니다.
2시에 비봉을 출발하여 약 600m 떨어진 사모바위에 도착했을 때는 2시 15분이었습니다.
사모바위에서 바라본 비봉
염화님은 비봉을 바라보시더니 마치 한 송이 연꽃 같다고 하시네요. 그러고 보니 마치 연 꽃 같이 보입니다. 멋진 비봉입니다.
사모바위
이 바위를 우리 동네에서 바라보면 그 형상이 마치 토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토끼바위 라고도 합니다. 사모바위는 그 형상이 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고 머리에 쓰는 사모(紗帽) 처럼 보인다고 해서 사모바위라고도 합니다. 또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양과 같다 해서 사모(思慕)바위라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 인조 때 사랑하는 한 쌍의 연인이 있었는데,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남자는 전 쟁터로 갔다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랑했던 여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도 여인의 소식은 없고, 남자는 당시 끌려갔던 여인들이 고향으 로 돌아가지 못하고 모여 살았다는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여인을 찾았지만 끝내 상봉하지 못했습니다. 그 남자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여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ㅠㅠ
대개는 여인이 남자를 그리워하다 바위가 되엇다는 전설은 있어도 남자가 여인을 그리워 하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은 드문 일입니다. 이 바위를 어떻게 보면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병자호란이 부른 슬픈 전설입니다.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인들은 나라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당시의 양반들은 몸을 더럽혔다고 받아들이지 않아 갈 곳을 잃은 그들은 홍제천 기슭에서 모여 살았는데 소위 '환향녀(還鄕女)'들이지요. 이 환향녀가 나중에 뜻과 발음이 왜곡되어 정조가 불순하다 하여 '화냥년'이라 불렸는데 우리의 슬픈 과거사입니다.
사모바위에서
사모바위 기념사진
저도 이 순간을 동참했습니다.
이 사모바위 옆에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통령을 암살하 려고 임진강을 거쳐 숨어 들어와 이곳에서 은신했던 자리가 있는데 2부에서 알아보겠습니 다. 기대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백우 _()_
☞ 다음은 사모바위와 응봉능선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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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봉 아직까지는 젊어서 올라가지만 나이가 조금만 더 들면 다리가 거리면 무서워서 못 갈것 같아요. _()_
비봉에 여러 번 올랐지만 오를 때마다 기분이 좋더군요. 쉬운 곳은 아니지요. _()_
자연의 멋 풍광 풍광 하오.,,, 초행길 비봉 ++ 국보비석++ 연 같은 비봉 경탄하오,,,, 풍광을 기는 향불교 ,,다음엔 함께 올라 갑시다. 청안님 잘 계시지요 , 보고 싶 습니다. 사진 과 글 잘 보았 습니다. 감사 합니다.
산수산님은 초행길이었군요. 비봉(碑峰)은 비봉(秘峰)이지요 많은 분들과 함께하기를 합장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청안님도 예전에 산을 참 기셨는데 요즘은 바쁜 몸이라 여의치 않네요. 진왕이 여기까지 왔음을 알겠습니다. 그래서 구기동 구기터널까지의 길을 '진로'라고 합니다. _()_
아찔하기만 한 비봉을 어찌 올라갈 수 있는지 많은 분들이 올라가는 걸 보면 또 아닌 가 봅니다. 사모바위는 얼핏 봐서도 사모(紗帽 )같은데요
정수님도 가까이 사시면 오르실 수 있습니다. 일단 오르시면 비경이 펼쳐집니다. 사모같이 생겨서 사모바위라고 하는데 우리동에서 보면 영락없는 토끼형상입니다. 특출한 바위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음을 봅니다. _()_
왜 이리 사진이 많을까 하고,, 다시 보니패션쇼를 했군요,,. 멋진 연출 입니다. 곤줄박이가 축아 하러 왔네요.
저는 비봉 정상에 일부러 안 올라갔습니다. 전에 많이 올라가서... 밑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사모바위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듣기는 했어도... _()_
산에서 자만은 금물이지요. 늘 조심조심 다니니 염려 마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