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새 세 편의 영화를 광주극장에서 보았다.
'캐롤'이라는 영화는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다.
여자끼리도 남자끼리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들을 어떤 (도덕적)기준으로 평가할 수가 없지만
그들이 겪는 마음의 아림은 짐작이 간다.
나는 법률적 가치, 헌법적 가치, 인권적 가치, 자연권적 생명적 가치
어느 위치에서 동성간의 사랑을 바라보고 있을까?
어쩌면 나의 관점을 포기하는 건 아닌가?
영화는 남편에게로 돌아간 캐롤은 다시 테레즈를 찾고
사진기자로 취직해 새 생활을 하고 있던 테레즈도 캐롤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앞으로 그들에게는 어떤 삶이 전개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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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자는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즘 시절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마음의 상처가 있다.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있고 어머니도 안정을 주지 못한다.
주인공은 웃지 않는다.
밝고 약간은 푼수같은 선한 보통여자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는 스승이며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하는 대학때의
은사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신혼여행을 겸해 파리의 스승에게 접근한 그는
스승의 젊은 부인을 매음굴에서의 여인으로 본다.
스승과 제자의 두 부부는 서로 어울리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사상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주인공의 표정이 그렇듯 영화는 어둡고 긴장이 넘친다.
어두운 주인공과 춤추는 젊은 부인을 보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좋을지
왜 그렇게 다른 성향과 취향을 갖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결국 스승 부부를 죽이고 영화는 파시스트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민들이 행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주인공은 같은 파시스트였던 장님 친구를 만나러 가고
부인은 당신이 비밀경찰인 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친구의 눈이 되어준 그는 거리에서 친구를 파시스트라고 소리친다.
인간은 무엇에 충성하는가?
생존을 위한 현실 권력에의 순응은 무죄?
정의를 위해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유와 민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간 저항자들만 바보?
세계 명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거장 감독은 묻는다.
당신도 순응자 아니냐고?
난 시대를 읽는 눈에서나 시대를 변혁하는 실천의 길에서나 얼마나 멀리 있는 순응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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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섭은낭의 감독도 거장이라고 홍보한다.
아마 내가 가장 많이 본 영화 장르가 무협영화일 터인데
감독은 모른다. 거장의 무협영화의 새로운 버전이라해서 기어이 본다.
무술영화를 우습게 보는 바보는 나의 취향을 고려해
말없이 추운 극장에 따라와 준다.
영화는 중앙권력인 조정과 긴장관계를 가지는 위박의 지방권력이 배경이다.
시대적으로는 당나라인데 남자 주인공 이름 전계안은 동사서독에서 들은 것도 같다.
어랴서 정혼해 사랑하는 두 남녀는 다른 지방과의 권력 관계에 의해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여자는 산에 보내져 자객으로 변한다.
남자는 위박의 주군이 되고 스승으로부터 위박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여자객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자객은 옛애인을 죽이지 못한다.
영화는 위박의 정세를 중심으로 여러 습격자들이 나타나는데
누가누군지 잘 모르겠다.
가을의 물 가 풍경이나 죄인 이송자들의 행렬을 길게 보여주는 장면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길어진다.
대사가 없고 현란한 무예도 신통잖다.
영화는 스승의 명을 어기고 옛정혼자의 권력을 안정시켜주고 자객은
애인?과 함께 신라로 떠난다. 왠 신라? 허우 샤오시엔의 한국팬 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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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운명인가? 인간은 운명을 개척하는가? 순응하는가?
운명에 허우적거리는가?
그러고 보면 신라로 두남자와 함께 떠나는 자객 섭은낭의
운명에, 꼭 무협지의 한 꼬라지의 운명에 난 더 기울어지는 건가?
영화는 한권의 소설일 뿐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