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직을 했다.
휴일이 이어지는 날의 숙직 땐 야근하는 사람도 없다.
선배 최장학사가 같이 밥을 먹어주셔서 다행이었다.
2층 사무실에 늦게까지 있다가 내려와 잠자리를 펴는데
여러 생각이 든다.
곧게 잔다, 서서 잔다, 수자리.
난 무엇을 지키고 있을까?
국민의 재산, 안전, 나의 욕망, 나의 굴종---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광장 개강식에 오는 사람들을 못 본채 하고
운전하고 나온다.
9시 반이 넘었는데 큰 놈 한결이만 잠자고 있다.
그를 깨워 보다가 포기하고 혼자 밥을 때운다.
메모를 남기고 연습장에 간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엔 이틀 잔디에 나가서 공을 쳐 보았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간을 꼬여내는 또 하나의 세상이
그러려니, 나 역시 그 동네에 동의하고 잘 따라가려니 한다.
돌아와 한강이 친구 승민이까지 자장면과 탕수육을 같이 먹는다.
한결이가 네 시쯤에 떠나자 모두 집을 나선다.
난 세탁기의 빨래를 꺼내 널고 집을 나서니 4시 20분이다.
어등산에 갈까 하다가 운전하기 싫어 지하철 타러 상촌역으로 간다.
소태역에 내려 무등중 담을 타고 걸으니 5시다.
부지런히 오른다.
잔디를 걷는 것보다는 낫다고 느낀다.
땀이 난다.
물도 없고, 수건도 없다. 지팡이도 없다.
지난 번 먹다 남은 소주만 반 있다.
30분 쯤 땀 흘리고 올라 정자에서 소주를 한 모금 마신다.
마집봉인가 장군봉인가 십봉인가까지 오르며
꽃을 찍어 본다.
오랜만이다.
반갑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 시인의 이야기다.
검은 꽃? 노란꽃 분홍꽃
그들대로 살아가는 투쟁을 나는 모른다.
십봉끝에 올라도 물이 없으니 쉴 맛이 안 난다.
소주 마시기도 뭐해 사진만 찍고 집게봉 쪽으로 길을 잡는다.
광주극장 간지도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곳에 가려 맘 먹으니 걸음이 빨라진다.
20분이 안 걸려 집게봉에 다다라 소주로 목을 추기고
나를 찍어본다.
누구나 지독한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싸잡아 변명한다. 경건하면 자살할 것이라고, 나르시즘은
경건과는 거리가 멀지?
집게봉 7시, 뛰다시피 주남 마을 주차장에 7시 30분
버스 타고 밀레오레 앞에서 내려 광주 극장에는
7시 56분에 도착한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를 7천원주고 본다.
극영화도 아닌데 끝나자 박수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이 좋은 나라는 아닌 듯 한데
그걸 아는 사람이 있으니 또 아주 형편없는 나라만은 아닌 것 같다.
10시에 나와 광주공원 앞 해남식당에서 국밥을 먹는다.
4천원에 소주 한 병이다. 양복을 입은 나이 지긋한 남자와
또 나보다 나이 먹은 남자가 들어와 소주 한 병과 국밥 한 그릇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사직공원으로 밤벚꽃 구경을 갈까 하다가 계단에 앉아 또 카메라로
그냥 찍어본다.
포장마차에서는 상 장단에 맞춰 노래가 흘러 나온다.
들어가 또 한잔 하고 싶은 걸
참고 지하철 역으로 간다.
지하철은 이제 송정리 너머까지 개통한댄다. 4월 11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