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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갑자기 특공대들이 나타나서 요란스럽습니다. 전에 특공대는 비속어로 '특별히 공부도 못하면서 대가리만 큰 놈'이라고 하더군요. 꼭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뜻은 아니구요, 결사항쟁을 각오한 듯한 눈빛과 행동을 보이시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연판장에 서명을 받는 것을 보며 느낀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모습으로 결의를 행동으로 표시합니다.
전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해서 서글픔을 느낍니다. 교회가 이전투구의 현장이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입니다. 생각이 다르다고해서 좌우를 가르는 모습은 사회에서 극한상황에 몰려있는 노동현장의 장소에서나 볼 수 있는 투쟁에 다름아닙니다.
저는 2013년 2월 10일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일부 장로가 담임목사를 내쫓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여자'J' 장로님께서 2월 9일날 교회내에서 퍼트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10일 어느 분으로부터 "혹시 괴문자 메세지를 받았냐"는 전화를 받습니다. 저 같은 피레미가 높으신 분의 괴메세지를 어떻게 받겠습니까. 그 분께서 보내주신 메세지를 보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일부 장로와 'k'권사에 대해서 담임목사를 내쫓는 주범으로 인식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알아봤습니다.
9일 날 교회에서 장로님들께서 모임을 가진 내용이 당일 퍼진 것도 문제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처럼 메세지가 전달됐다는 것이 더 문제로 보여집니다.
내용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기위해서 한 가지 사건을 더 이야기하겠습니다.2013년 3월 10일 주인 날 2부 성가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평소 어머님처럼 뵈었던 원로 권사님께서 연판장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셨습니다. 성가대장의 제지로 일단락을 됬으나 이 권사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시며 하시는 말씀을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내용인즉슨 '담임목사님께서 용두동교회가 목회활동하기에 너무 힘들어서 친구 목회자들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친구 목회자들이 용두동교회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서울연회감독과 김한옥 원로목사님께 임지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자문을 구했다. 일부 사람이 설교베끼기와 설교의 잘못을 이야기하는데 담임목사님께서 어떻게 버티냐. 담임목사님이 공금을 횡령했냐, 윤리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냐' 그 분이 자진해서 나가겠다고하는 심정을 아느냐 . 본인의 마음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분석을 하겠습니다.
첫째, 담임목사님의 자의적인 사임표시이며, 또한 그 정보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용두동교회 목회자그룹과 기획위원회에도 모르게 임지를 알아보셨나봅니다. 그리고 서울연회감독과 김한옥원로목사님께 임지변경의 협조를 구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내에서 그런 사실을 모르고 외부에서 흘러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누가 사임하시라고 공식적이나 개인적으로 이야기한 것도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의 움직임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으시려고 하셨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입장은 다른 것입니다. 본인이 나가겠다는 신념이 확고하면 기획워원회에 이야기하고 움직이면 그만 입니다. 장수가 부대를 놔두고 남모르게 다른 부대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 현존하는 부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이 안 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지도자로서의 본분을 잠시 잃으셨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둘째, 일부 장로들의 비상식의 문제입니다.
담임목사님 본인 스스로 사임을 피력했으며, 기획위원회에서 담임목사님의 사임을 결정했고, 청빙위원까지 선임하여 위원장인 담임목사님께서 의사봉을 두드렸습니다.
'국민이'의 말씀처럼 장로들의 의사결정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왠 의사결정투표입니까. 하기야 이유는 있지요. 담목께서 새벽특새에 본인은 '위에 있다'고 설교하셨으니까 당연히 어전회의에서 대신들의 의견을 물어야지요.
그런데 투표에 참여했던 일부 장로들이 담임목사의 사임을 저지하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며, 또한 성도들에게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들은 12 대 8이라는 숫자에 포함된 장로들입니다. 만약 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불합리하다면 투표에 거부권을 행사하여야 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해서 결정을 보고 결과가 만족치 못하니까 반발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투표 전에 이 분들은 투표를 행하면 담임목사께서 안 나가시는 걸로 결정을 날 것으로 생각하셨다는 것 아닙니까!
다른 말 안 하겠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의 도래가 먼 것을 교회에서 느꼈습니다.
이 결정에 불복할 수 있는 장로는 투표에 참여를 안 한 장로들입니다. 어디가서 물어보십시요. 왕권시대인 조선시대에도 이런 추잡한 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용두동교회 200년사에 좋은 기록으로 남겠습니다. '나는 투쟁했노라, 예수님을 내 편으로 만들었노라'
셌째, 설교베끼기의 문제입니다.
2010년 송구영신예배 때 담임목사께서 설교하신 내용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목회자가 일반설교 시간에 설교를 베끼기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송구영신예배의 설교입니다. 송구영신예배가 무엇입니까. 한 해의 우리 신앙생활을 뒤돌아보고 새로이 맞이하는 새해에 더욱 더 하나님을 알아 가고,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자고 다짐하는 것 아닙니까. 세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년사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상당히 많은 숙고를 거쳐서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담임목사님의 말씀으로 하자면 인용인데, 제 기준에서는 도용, 즉 베끼기입니다. 필요하시다면 교회의 코이노니아란이나 여기 자유게시판에 실어 드릴 수 있습니다. 판단은 성도의 몫입니다.
2011년도 '푸른초장'이 두 권 나왔는데 첫 번째 권에 송구영신예배 때 설교가 실려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인용이라고 하셨다는데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그 설교는 성남 새봄교회목사님이 하신 말씀과 대동소이합니다. (새봄교회설교문 2009. 6. 7 )
넷째, 설교의 질문제입니다.
설교에서 그 내용의 좋고 나쁨이 어디있겠습니까. 설교의 내용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말씀이 가는 길이 과연 맞냐 틀리냐의 문제의 고민입니다. 담임목사께서 자주 하신 말씀이 아이큐가 150도 안 되는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에 대해서 무엇을 제대로 알겠습니까.
'범돌'님이 하신 말씀처럼 믿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와 느낌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을 탐구하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우리 예수쟁이들은 그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려고 삶을 고뇌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신학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같이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안다는 것이고, 하나는 무식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모양새를 가진 신앙이 주술적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100미터 빨리달리기가 아닙니다. 특히 신약백성으로서의 자세는 내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며, 공동체 내에서 남과 함께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벗하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전도단에서 배우셨다는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지금도 토요일 사무실에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영성훈련도 공동체 내에서 신학적인 검증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신사도운동에서 비성경적인 부분들이 문제가 되고있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궁금하기 때문에 알고자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답으로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답변을 주시면 목회자의 역활은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답이 없으니까 계속 의문점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설교자 한 개인을 음해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섯째, 일부 장로와 권사가 담목의 자진사임배경의 원인문제입니다.
담임목사께서는 목회를 30년 이상 하신 베테랑이십니다.
육군사관학교를 붙으셨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목회의 길로 들어서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특히, 복음이라고 본인 자신이 이름지어진 말씀으로 사시고 계신 분입니다. '전도하는 제자학교'라는 책도 쓰신 분입니다. 그 경지까지 이르신 분이 과연 일개 장로와 권사가 테클을 걸었다-그런 일도 없지만-고해서 용두동교회를 그만 두시겠다고 하셨겠습니까.
그러면 애초에 목회의 길로 접어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담임목사님을 낮게 보지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일부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일으키는 아집과 소란이 담임목사님께 누가 될 뿐입니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목회자들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야 합니다. 고산 눈 덮인 곳에는 표범이 살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 뜻은 그만큼 맹수는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썩은 고기만을 주워먹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고독 속에서 예수님의 길을 물으며 찾아가게 하는 등불로서의 표범이 되라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길은 고독한 것입니다.
항목에는 안 넣었지만 기독교는 윤리와 도덕의 차원을 넘어서는 예수님의 길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들으시지만, 저는 딱따구리의 우는 소리를 밤낮으로 듣고 있습니다.
청정한 숲 속에 사는 딱따구리가 왜 오염이 심한 용두동에까지 와서 우는지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빨리 광릉숲으로 보내야겠습니다.
첫댓글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고자하는 성도들이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정죄하겠습니까.
복음은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현재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나라를 살고 있으면서도 육적으로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특이한 것은 우리들은 현재와 미래를 넘어선 부활생명을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영광을 찬양하려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담임목사님의 자진사임건을 감성적으로 접근하시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노권사님의 말처럼 윤리와 도덕적인 면만 따진다면 교양학강사를 초대하거나 철학에 조애가 깊으신 분의 말씀을 들으면 그만입니다. 특별히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회자도 지체의 일부분입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목회자의 직분이 계급에서 기능으로의 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며 그 부분이 해결이 되어야 복음에 대한 참발걸음이 다시금 21세기에 첫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임재 중에 일부분인 나타나심(병고침 등)보다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함을 위해서 기도에 더 충실해야할 것입니다. 기도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삶 속에서 깨우침에 대한 볶아대는 삶을 사는 것이 그래서 충만함에 이르는 것이 좋지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