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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금암산~이성산 산행기
도킹과 랑데뷰장소는 망포 지하철 역.
산행 함께 떠나자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내에게 그러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는 분명 기(氣)를 불어 넣어주는 정보가 틀림없다.
망포역 플렛홈으로 오전 8시 30분까지 산행희망자에 대한 의사타진 메시지가
우선 반가웠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나에게 어느 메세지가 그렇게 반가움
을 주겠는가,산행지가 어느 곳 여느 멧덩이라도 개의치 않으니 일단 까탈스러운
취향하고는 거리가 멀다.
한 두번 오른 산행지라면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는 산꾼들도 꽤 있는 걸 눈치챘다면
식성(?)은 좋은 편 아닌가? 산행지의 들머리로 정해진 남한산성 남문으로의
접근이 용이하기로는 산성역이 시간상으로나 산행경로로 비추어 적당하다.
출발역(보름이 지나면 출발지 역은 수원역으로 바뀔 예정)이기에 망정이지,
전동차 안은 몇 정거장을 지나기도 전에 이미 승객들로 넘쳐난다.
처음부터 다른 빈 자리도 꽤 여럿 비어 있었는데 오늘따라 자연스럽게 노약자석을 굳이
골라서 차지한 것은 청아대장의 행동거지에 따랐기 때문이다.
이 분은 나보다 연배로는 대선배이시니,정부에서 가름하는 노인 축에 당당히(?) 진입을 하셨고,
나는 환갑 진갑 이제 막 지났으니 보건복지부에서는 아직 노인네 취급을 받지 못하는
처지인 셈이다. 외모는 노인네가 영락없는데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고나 할까?
주위의 싸늘한 의혹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몰염치가 영혼을 흔드는가 하면 양심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힘을 잃은 눈길은 남세스러움을 피하려는지 허공만 연신 맴을 돈다.
한 두 해전의 기억인가? 노약자석의 빈 곳을 가리키며 입석을 하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옆자리가 비었음을 인식하고 자리를 권하던 노인이 떠오른다.
멈칫하며 짐짓 사양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이제 앉아도 될 나이 같은데
무얼 그리 망설이냐는 말투다. 반갑고 고맙다고 인사치례를 하고도 마음은 공연히
찜찜하기만한 기억이다.그렇다. 환갑,진갑 모두 지났으면 나도 이제 어였한 노인이 아닌가,
노약자석에 노인이 앉았으면 당연지사 아닌가,눈치 볼 일 아니고 송구스러워 할 일은 아니다.
새하얀 머리는 까맣게 물들이고 깊어진 주름은 보톡스에 의지하면 십여년은 거뜬히
속일 수는 있을까 모르겠다.그러나 짙어만 가는 잡티는 점점 부위를 넓혀나가고 농도는 시나브로
어두워지기만 한다. 손과 발등의 검푸른 정맥은 점점 늘어지고 굵어져 살찐 지렁이를 닮아간다.
쭈글쭈글 주름져 늘어지기 시작하는 목주름은 아예 감출 여력을 상실해간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에 강한 스트레스는 혹시 받지 않았는가,대중교통에서의 노약자석이
버젖이 기다리고, 놀고 먹을 수 있는 연금을 나눠주려하는데 그로인한 스트레스로 번뇌에
젖어서는 안된다.
생애 최고의 안락하고 느긋한 시간이 목하 기다리고 있으니
걱정과 근심은 털어내고 병치레 하느라고 좋은 시간 허송 않으려면 신체단련차 산행에
나서보는 것도 어찌보면 수익창출을 위한 경제원리에 따르는 것이리라.
게다가 왕성한 식욕과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던 정욕의 바다, 작은 그릇을 비웃었던 온갖 탐욕은
곤고한 수행의 도움없이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잦아들어 가고 있으니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가.그러고보면 지금 이 짓거리도 경제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싶다.
의료비 지출이 점증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눈치 볼 이유는 물론 주눅들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노인들에 대한 보편적인 대접이나 양보를 철 지난 유교논리로 평가절하하는
사회풍토를 겸허하게 숙고할 필요는 있다.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대상에 대한 시혜가
국가의 경제상황을 악화시키고 젊은이들의 근로의욕을 갉아 먹을 수 있다는 논리가 그렇다.
그러므로 나이가 먹어가면 나잇값을 좀 해야한다.
나이들어 허리가 휘어지면 휘어진대로,검은 머리 파뿌리로 변해버렸으면 허연대로,
깊어지는 주름살은 깊어진대로,기를 쓰고 용을 틀어대며 애면글면 덮어볼까 애를쓰면
애를 쓸수록 상심과 경제적 비용은 상대적으로 깊어지는 법이다.
즐겁고 반갑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늙어감을 즐겨보자.
전동차안의 가득 찬 승객들 대부분은 지금 일터로 향하거나 배움을 위해서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이다. 남들은 이렇게 아침부터 바쁜 일정에 종종거리는데,
더군다나 주말도 아닌 평일에 배낭을 걸머지고 한가하게 버젖이 산행에 나서는 행위가
허정개비 백수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늙은 주제에 늙음을 애써 위장할 필요가 없다.
어줍잖게 늙었다가는 노인흉내사기범(?)으로 의혹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만 한다.
삶의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려는 분주한 발걸음과 시끄러운 소음,웅성거리는 말소리,
휴대폰 통화로 빚어내는 남을 의식않는 자기들만의 대화소리,다양성을 갖추고 비벼서
내뿜는 체취의 불결한 향기,지하동굴의 오염된 공기를 가르고 질주하는
철마의 심장소리,머물 곳을 잃은 외로운(?) 눈길을 한 순간에 몰입의 경지로 끌어들인
스마트폰의 위력,광기(狂氣)의 그 마력에 허망하게 허수아비로 전락한 군상(群像),
철저한 분업과 정밀하게 짜여진 메뉴얼로 무장을 한 지하동굴속 개미들의
군집생활이 이들보다 못하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산성역에 전동차가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 쯤 되었으니 대충 한 시간의 시간이 소요가 되었다.
시원하고 맑고 파란 색깔일 것이리라 감지되는 바깥공기에 코를 연신 킁킁거리며
역사를 도망치 듯 빠져나온다.
남문 입구까지 발품을 들이려면 도로를 따르는 일이 여간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시내버스를 이용해 남문입구에서 내리고 보니 짙게 내려앉은 안개가
두터움이 더해진 듯 색감이 더욱 짙어져 있다.지난 밤에 내린 가을 비 탓인가,
가랑잎이며 나무가지 그리고 길이며 길섶 모두 습기에 젖어있다.
만추의 가을 비 탓에 수증기는 당연지사,방금 겨울의 문지방을 넘어섰으니 기온은
영하의 날씨를 바라보고 있을 터,게다가 바람마저 뒷짐을 지고 오불관언이니
세상이 안개의 천국이 된 것이 이상할 리가 없다.
안개에 젖은 산성의 남문격인 자하문,정조 3년에 개보수를 마쳤다고 하는 자하문은
간간이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재청이나 도립공원의 보살핌으로 아직은
건강해 보인다.문 옆으로 수문장처럼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우리가 계획한 방향으로는
수어장대를 지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튼실한 허리둘레를 자랑하는 노송숲아래 나무계단이 오름길을 안내한다.
이미 시야의 한계로 주위조망을 즐길 기분은 에시당초 접어두고 산행을 나섰으니
산길 주변의 변화와 산성 유적지에나 관심을 둘 심산이다.처음으로 맞닥드린 봉우리 우측에
보이는 영춘정은 보정수술을 하고 화려한 단장을 하려는지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언더웨어에 조끼,게다가 동절기 쟈켓에 두터운 장갑으로 중무장한 청아형이 5분도 안돼서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한다.수어장대 앞 마당에는 젊은 학생들로 북적인다.
인솔자 인 듯한 젊은 사내 한 명이 장대 바로 앞 댓돌위에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여러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연신 지껄이고 있다.
수어장대 앞마당 성남시가지 방향으로는 높은 철판으로 가림막이 답답하게 둘러쳐져 있다.
문화재 유지 보수를 위한 작업이 목하 진행중인 모양이다.
수어장대에서의 화려한 조망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써 안타까운 심정을 서둘러 감추고
북적이는 장대를 뒤로한다.
밋밋하고 널찍한 산길 주변으로는 우뚝우뚝 노송들이 듬직하다.월담을 허용치 않으려고
성 주변을 엄중 감시하는 초병들의 자세를 엿보았는가,짖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고가는 입산객들이 번잡스럽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진다.산성특유의 조망을
가로막은 스모그에는 바람이 제격인데 바람은 손을 놓고 무슨 딴 짓을 하고 있는지...
금암산과 이성산으로 산길을 예정하고 있기 때문에 서문을 나서야 한다.사실은 서문을 굳이
나서서 산길을 이어가지 않고도 갈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시간과 발품이 추가가 되기
때문이다.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섰다가 암문까지 다시 올라야하는 행위를 불편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서문을 나서니 산길은 두 갈레를 보인다.우측으로의 산길 앞에
통행금지 팻말이 길을 막아서고 있다.통행하기에는 위험스러우니 다른 길을 이용하라는
주의표시다.둥글둥글 서슬이 벌건 철조망으로 우선 통행을 막아놓았는데,한 옆을 보니
소위 개구멍같이 수많은(?) 족적으로 미루어 꽤나 이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애라 모르겠다.늙은 두 사내들은 염치를 무릅쓰고 살금살금 엄중하고 살벌한 철조망을 넘어선다.
혹시 날카로운 철조망 가시가 장딴지를 잡아 채 시비곡직을 물을 것이 두려운듯 일지매
고관대작 높은 담 넘 듯 잽싸게 넘어서 일단 시치미를 뚝 떼며 본색을 가장한다.
누구에게 들켰을까, 뒤통수는 연신 근질거린다.
가파른 산길 두 세 곳이 사태로 인해서 위험스럽기는 해 보인다.나잇값을 못하고
몰래 숨어 든 도둑처럼 유난스레 태연을 가장하느라 잰 걸음을 놓는다.
삼거리 갈렛길,우측으로는 북문 방면으로의 성외곽길이고 왼편쪽의 성곽길은
연주봉 옹성으로 향하는 길이다.금암산으로 산행계획을 삼았기 때문에 연주봉옹성을
오를것인가 지나칠 것인가 망설이는 두 사내들이다.옹성을 올랐다가 그 주변에서 곧바로
금암산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막바로 연결이 되면 주저할 까닭이 없는데 삼거리까지
되돌아 나오는 거듭된 발품이 성가시고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갈등이 생긴거다.
어깻춤 높이의 성곽은 월담을 시도하기에는 만만하고 얕잡아 볼 만 하다.
그러나 실제 행동을 앞두고 머뭇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거듭되는 비산꾼적인 행실을
감행하기에는 심적부담이 깊었다고나 할까? 뿌옇게 시야를 거스르는 운무는
거칠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다만 여지껏 뒷짐만 지고 수수방관하던 바람이 시나브로
움직일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조망이라고는 수 십여미터에 불과하고 산길은 축축한
날씨지만 산길을 오가는 입산객들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짙은 안개속의 쓸쓸한 산불초소를 지나면 삼거리 산길이 나온다.
성불사 방면(왼쪽)을 가리키고 "위례둘레길"의 진행방향과 금암산이 1.1km거리에
위치하고 있음을 친절하게 밝힌다.
항동(項洞)삼거리,남한산성의 북문 북쪽 산자락 계곡인 고골에서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項)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또는 이 마을이 산으로 나무하러 다니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목도(木道)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당시 "木"자를 "項"자로 고쳤다고, 이러한 내용의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산등성이의 좌우는 비교적 가파른 경사를 보인다.
시야를 가리운 운무가 겉히고 맑은 날씨였더라면 좌우의 경관과 조망은 빼어났으리라.
산길 오른쪽 십여 미터 벼랑에 거뭇하고 커다란 타원형의 울퉁불퉁한 바위가 보인다.
흔들바위라고 길섶에 제법 명패까지 얻어찼다.
이윽고 축축한 습기가 가득하고 덕분에 우중충하고 거뭇한 형체의 암봉의
금암산 정상에 오른다.해발 322m,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중간 쯤에 위치한 이 멧덩이는
바위색깔이 비단색을 띄고 있어 금암산이라 칭했다고,또한 바위들이 정상주변에 많아
산아래서 바라볼 때 바위가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여서 "얼거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내용이 정상을 알리는 푯말에 구구하다.오찬장소로는 시간상으로도 적당한 시각이지만
주위환경이 마뜩찮다.그러나 우중충하고 음습하기조차한 이런 날씨에 다른 어느 곳을
찾아본들 특별 난 곳을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기대에 불과할 것이다.
금암산을 뒤로하는 산길이 급경사를 이룬다.다행스러운 것은 고정로프를 설치해놓아
내리막에서의 안전사고를 방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엿보인다.거대한 송전철탑을 지나면
곧바로 사거리 안부에 닿게 된다.덜미재다.멧돼지를 주의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덜미재를 벗어나면 무명봉을 넘어서고 연이어 송전탑을 만난다.
송전철탑은 괴물처럼 산등성이를 성큼성큼 앞서 나간다.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자동차들의
질주음이 메아리처럼 만추의 숲속의 적막을 흔들기 시작한다.
광암터널 능선을 지나면 이윽고 이성산성으로 향하는 들머리에 아치형의 작은 출입구를
만나게 된다.갈색의 목재를 이용한 구조물이 인상적이다.향여고개다.
이성산과 금암산을 넘는 고개로,이 근처에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향교고개로
불리던 것이 향여고개로 바뀌었다고 한다.춘궁동과 광암동을 넘나드는 고개다.
춘궁동(春宮洞)에 대한 유래를 밝혀놓은 안내문을 살펴보면,춘장리의 "춘(春)"자와
궁말의 "궁(宮"자를 붙여 춘궁동이 되었고 "춘장(春長)"은 옛 백제 때의 궁궐이
있었던 것을 뜻한다고 적었다.이성산(二聖山) 정수리로 향하는 산길의 숲은 비교적
빈약한 모습이다.펑퍼짐한 정수리에는 산불초소가 철구조물 누각에 얹혀있고
이성산의 정상을 알리는 표시와 함께 이성산의 유래까지 밝혀놓았다.
내용은 이렇다. 행정구역상으로 춘궁동 36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고 높이는 해발 209m로
춘궁동과 초이동을 아우르고 있다고,그리고 석축산성인 이성산성이 있었는데
흔적만이 남아있는 상태다.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왕자 두 사람이 이 산에
거주하였다고 해서 이성산이란 명칭으로 불렸다고 하고,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 전 부터 백제 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많은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수리를 벗어나면 개활지를 닮은 이성산성의 건물지(建物趾)에 닿는다.
장방형의 건물터와 8각지 그리고 9각지의 공터에 주춧돌만 간신히 모습을 보이며
잃어버린 옛 백제의 영광을 읊조리려 한다.
추춧돌을 바라보며 허망한 옛 과거사를 되새겨 무엇하랴만 한민족 최초로 제국의 이름을
붙여 봄직한 백제의 사라짐은 어찌보면 일찌감치 겪은 우리들의 불행인지 모르겠다.
날머리로는 춘궁동으로 삼아야 귀로가 수월하다.오후의 햇살이 쏟아지는 춘궁동
골짜기에 천수답처럼 장방형의 작은 규모의 저수지를 만난다.옛 백제 이성산성의
저수지 터다.골짜기를 벗어나면 곧바로 춘궁동 대로 변, 곳곳에 식당과 술집이 상가건물을
장악하고 있다. 뒤풀이가 없으면 공연히 심술을 피우고 짜증을 부리는 청아대장의 심기를
거슬러서야 되겠나.머뭇머뭇 내숭을 부리다가도 수저를 잡으면 일인분은 쉽사리
뚝딱 책임완수를 하고 안 마실 듯 몸을 사리다가도 빈 잔을 채워놓으면 게눈 감추 듯
훌쩍마셔 버리니 상대에게 비장의 한 수를 부지불식간에 들켜버린 셈이다.
그 여파가 영향을 끼쳤을까?,방광에 가득찬 노폐물 처리에 시종 애간장을 끓이다가
결국에는 집안 화장실까지 한(?)을 품고와서 회포를 풀었으니 체벌치고는 가혹하기만 하다.
비장의 무기가 필요하다.또 다른 묘수를 마련해야 될텐데...
장고가 길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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