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봄비라고 무조건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비가 오고나면 또 다시 날씨가 추워진다고 하였으니 봄 파종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스럽다.(무슨 전문 농사꾼처럼 걱정도 팔자라고?)
그리고 꾼들에겐 이렇게 비오는 날은 심한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날이기도 하었었다. 마치 물고기들이 사람들의 식사때나 비가 올때 입질을 잘 한다는..
내가 낚시를 해봐서 아는데...내가 느낀 기억으로서는 고기들도 사람들처럼 점심, 저녁시간에 잘 잡히고,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엔 지들도 흥분이 되는지 매우 잘 잡힌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어느 모임의 회원님에게서 반갑게도 문자 멧세지가 날아들었다.
'내일 시간 되시는 분들 삽겹살에 소주 한잔씩들...어떠신가요? 오후 6:30까지 수산시장옆 장미아파트 뒤 봉순이집으로 오세요.'
크아! 쥑인다.
엥! 그런데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라...
순간 조금은 실망스런 생각이 들었지만, 뭐! 내일은 날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의 당장 이 불안한 심정을 어떻게 달래본다?
이번 주들어 대견스럽게도 아직은 위에 알콜의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럭저럭 다섯시가 넘어섰고... 에라! 미친척하고 먼저 전화질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조금 더 참아보기로 하였다.
드디어 다섯 시반.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다. 기쁜마음으로 그리고 서둘러 폴드를 열어보니 친구녀석이었다.
지난번에 피치못할 사정(약속이 겹치는 바람에 부득이...ㅎㅎ 별로 잘나가지도 못하면서...)에, 정말로 나는 그런 약속엔 거의 그런적이 없는데...하여간 내가 펑크를 내고 말아 그 친구의 입이 튀어 나와 있었는데 이제서야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 모양이었다.
대뜸 어디냐?고 묻는 말머리부터...
대화를 하다보니 아니 이 친구의 말은 술을 많이 먹어 그런데 일전에 내가 이야기하였던 한약제에 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아니! 무슨 내가 제 주치의야?, 아니면 한의사야?)
하여간 조금은 풍명스럽고, 약간은 여운을 남기며 나도 잘 모르니 아는 사람에게 물어 알려준다고 하고나서는 그 다음 그가 무슨 말이 있을 줄 알고 기다렸더니... 글쎄! 다음에 보자며 전화를 끊는다. 에라! 이 친구가...녀석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 비가 내린다는 사실인데, 다음에 보자니...그럼 생전 얼굴을 안볼려고 하였던가?
에휴! 세상에 믿을 ㄴ이 없구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서류를 챙기고 빗속을 혼자걸어가는 상상을 해 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매우 처량해 보일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바지가랑이는 젖었고, 축처진 어깨에...승용차 살돈도 못벌어 놓았나? 아니 그건 말이 틀리고...
드디어 퇴근시간이다. 마음속에 심한 갈등이 일어났다. 그냥 얌전히 집에 들어 갈까? 아니다. 모처럼의 비오는 날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넘기는 것은 꾼의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것이라는...
용기를 내어 친구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반응이 좋았다. 마치 낚시대를 물에 넣자마자 입질을 하는 것처럼...그런데 사장이 밖에 나가서 아직 안들어와서 당장은 퇴근이 어려우니 최대한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라는 것이었다. 어째든 좋다. 목적 달성만 하면 그만이니까. 이런 일들엔 수없이 매우 잘 훈련된 내가 아니던가...
우선은 조용하게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었다. 누군가가 전화를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외롭지 않은 퇴근길이다. 제법 오랜시간 내린 비로 인하여 타이어와 빗물의 마찰에 많은 소음이 발생된다. 낭만은 어디갔냐고? 무슨 얼어죽을...쉬운 말로 시끄러웠다.
평소에도 이렇게 길을 걷다보면 휴대전화의 벨소리를 듣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나는 한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한손으론 휴대전화를 거머쥐었다. 정말 중요한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ㅋㅋ
거리엔 바쁘게 오가는 차량들과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는 사람들의 행렬로 매우 분주하였다. 나처럼 처량하게 빗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같은 시간이라도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은 더 오래 느껴진다고들 하였던가. 하여간 그 친구의 말대로 되도록이면 발걸음을 아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차량의 공해를 피하려 동네의 뒷골목으로 스며들었엇는데, 오늘은 여차하면 택시를 잡아 타야하기 때문에 간선도로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썼다.
집에까지 절반을 남겨 둔 지점까지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차를 피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각고의 노력(!!)을 다하며 가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그래도 그 친구는 100% 신뢰가 가는 친구이다. 아직은 우리들이 (애처가들의 입장에서 볼때는) 불순한 의도로 조우를 할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으려니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숨겨진 성격이 나타난다. 비를 맞아도 침착하고 느긋하게 걷는 사람, 한 방울이라도 적게 맞으려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촐랑대는 사람, 그리고 택시나 모든 탈것들을 동원하여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사람 등이다.
지나가는 길목의 00집들이 유난히 내눈에 들어왔다. 벌써 자리를 잡고 잔을 걷어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창너머로 보인다. 나의 눈에는 그것이 예술로 비쳐진다?(ㄱ눈엔 ㄸ만 보인다고?)
벌써 바지가랑이는 내리고 튀는 빗물로 인하여 흥건하게 젖어들었고, 신발도 오래되어 방수기능이 다하였는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이제 내게 남겨진 공간은 다리 하나와 그것을 건너서 100미터 정도의 골목길 뿐이었다. 나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어느 지점에서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해볼 것인가!!! 그래조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평소의 나의 지론은 물에 떠내려가도 약속은 지키라는 것이었다. 차량들이 밀려 북적대는 모습을 보면서 다리를 건너섰다. 이젠 정말 집에 거의 다 도착을 한 것이다.
다시금 갈등이 일어났다. 지금 이 시각에 전화가 오면 어떡해야 하나? 그래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하여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른 때 같으면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뛰쳐나가는 성격인데...
드디어 집에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젖은 옷을 옷걸이에 걸어 말리고 운동기구를 집어 들었다. 우선 칙칙한 기분을 운동으로 전환해 보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다 전화가 온다면???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오늘이나마 가정의 평화를 위해보려고...
(7시가 조금 넘어 전화가 왔었으나 비도 맞고하였으니 다음 주로 약속을 미루자고 말하였었다.)
나는 추락한다.
나는 추락한다.
나는 추락한다.
나는 추락한다.
나는 추락한다.
나는 추락한다.
............
아니다....나는 그래도 팔다리가 길어 그냥 추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