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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수류성당부터 모악산 자락까지 총 21km구간으로 이어진 마실길은 겨울 문턱에서 가을의 흔적을 남기며 고즈넉한 자연을 품고 있다. |
하루가 다르게 추워진 날씨, 거리의 나뭇가지가 앙상한 것을 보면 이제는 겨울이 익숙해지고 있다. 찬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면 주말 산꾼들은 움츠러들기 마련, 가을의 빛깔고운 화사한 색깔들이 겨울 앞에 퇴색되고 날씨마저 추워지니 썩 산행이 내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면서 몸이 채 적응하지 못해 추위를 뚫고 산행을 감행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이럴 때는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아도 좋을 가벼운 트레킹이 제격이다. 산책하듯 걷다보면 겨울 추위는 거뜬해진다.
전라북도에도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지리산의 둘레길 못지않은 마실길이 있다.
마실이라는 말은 마을의 방언으로 마을을 끼고 도는 길을 말한다. 마을 앞길이 뭐 볼게 있어 라고 반문해 보는 이도 있겠지만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공간 속에 비친 길목은 한 폭의 잔잔한 그림을 선물한다. 소박함을 담은 마실길은 풍경 속에 늘 ‘존재’했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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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길’ 중 8코스에 해당되는 김제의 순례길은 수류성당부터 이어져 산골마을의 정취를 그득 머금고 있다. |
화해와 교유의 정신으로 걷는 길
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순례길 8코스는 모악산을 끼고 ‘마실길’이라는 도보길이 조성돼 있다. 모악산은 충남의 계룡산과 더불어 신흥종교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전주부터 익산, 완주, 김제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순례길’ 중 8코스에 해당되는 김제의 순례길은 수류성당을 끼며 마실길과 연결되어 있다. 화해와 교유의 정신으로 걷는 길이다.
겨울초입에서 마주하는 김제 수류성당의 마실길은 고요함을 머금고 아직은 가을잔재가 남아 있어 그 길 따라 걸을 만하다.
다른 길들이 주로 평지로 이루어진 반면 이 구간은 산길이 많다. 대신 오밀조밀 마을 초입에 펼쳐진 돌담길의 운치는 산골마을의 정취를 머금고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정겨움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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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장소이기도 한 수류성당은 김제시 금산면 소재지에서 한참을 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수류성당에 들어서면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한 예수 그리스도상이 제일 먼저 반긴다. |
수류성당, 1889년 설립된 유서 깊은 곳
동양에서 가장 많은 신부를 배출했다는 수류성당. 걷는 것은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수류성당은 전주의 전동성당과 함께 188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본당으로 1895년 9월까지 모악산 깊은 골짜기의 배재마을에 자리 잡았다가 그해 10월 수류에 부지를 매입해 평야지대로 나왔다. 당시는 동학혁명이 막 끝난 뒤라 마을에 성당이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주민들은 떠나고 그동안 제대로 미사에 참례하지 못했던 각처 신자들이 이주해 와서 주민 모두가 신자인 완전한 교우촌을 이루었다. 수류는 지금도 교우촌 명맥을 유지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이다.
지금의 수류성당은 1959년에 다시 지은 벽돌조 건물로 이전 성당은 프랑스 프와넬 신부가 설계해 1906년 착공, 이듬해 8월에 준공한 48칸의 목조건물이었는데 그 모습이 익산의 나바위 성당과 흡사했다고 전해진다. 이 목조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전소됐지만 순교자들의 피 흘림을 안고 신자들의 희생으로 다시 지어졌다.
성당 내부는 단순하다. 너무 단순해 오히려 돋보이는 곳이다. 군더더기 없이 전례와 기도를 위한 필요한 것으로만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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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을의 흔적을 담고 있는 마실길은 동네의 특징을 담은 이름만큼 소담한 풍경들이 걷는 내내 소소한 재미를 전한다. |
이야기가 있는 마실길의 표정
수류성당에 들어서면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한 예수 그리스도상이 제일 먼저 반긴다. 아직도 가을의 흔적을 담고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는 이곳을 지키며 한 폭의 서양화를 감상하게 하는 묘미도 함께할 수 있다.
수류성당 앞에는 아름드리나무와 의자, 테이블이 놓여 있고 두메산골 어린이 축구팀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가 되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류성당을 지나면 바로 율치마을인데 작은 개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돌담길이 옛 모습 그대로이다. 스치는 바람소리가 소와 말의 울음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우름티, 마름티로 불리는 마을들은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화율리 임도를 따라 걸으면 화율리 하화마을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밤티재와 마주하게 된다. 많은 등산로가 이 밤티재를 잇고 있는데 모악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산줄기가 장군재와 배재를 거쳐 밤티재로 연결된다. 닥나무를 삶아 한지를 만드는 마을을 지나면 건강을 주제로 새로이 들어선 마을도 마주할 수 있다. 편백나무 오솔길 끝에는 구이저수지도 눈길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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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시골길을 걷다보면 바쁜 일상에 지친 마음이 달래지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된다. 마음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이곳이 진정한 힐링이 되는 삶터이다. |
느림의 미학, 그 길을 따라
모악산 숲속길은 김제시 금구면 들녘과 모악산 일대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둘레길로 모악산 주변의 명소를 연결해 만든 걷기 편한 길이다.
수류성당부터 모악산 자락까지 총 21km 구간으로 이어진 마실길은 6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걷고 싶은 만큼 걷는 것도 마실길이 전하는 너그러움이다.
마실길은 구불구불 숲길을 따라 소박한 농촌풍경과 계절의 정취를 즐길 수 있으며 한적한 시골길과 숲 풍경을 볼 수 있게 주변 숲도 정비했다.
수류성당 뒤편으로 이어지는 옛 돌담길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 계단식 논과 밭, 그리고 야트막한 농가들, 담벼락에 걸쳐 있는 단감을 따서 반갑게 내미는 훈훈한 인심은 처음 찾는 외지인에게도 고향의 풋풋한 정을 한 아름 안겨준다.
그래서 마음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이곳이 진정한 힐링이 되는 삶터가 된다.
느림의 미학, 걷는 것이 좋은 것은 눈에 담기는 소박함이 그 여느 화려함보다도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전하기 때문이리라.
바쁜 일상, 거듭되는 일과와 스트레스에 지친 당신이라면 찬바람 부는 겨울의 문턱에서 단순함이 던지는 평온함을 끌어안았으면 싶어진다. 그리하여 겨울 초입, 걷기 여행을 권한다.
아름다운 순례길 8코스
수류성당 - 율치마을 - 밤티재 - 원인덕 - 우름티 - 안덕저수지 - 인성수련원 - 배재성당 갈래길 - 장파마을 - 한자마을 - 안덕건강힐링마을 - 모악산 숲속길 - 편백나무 오솔길 - 반월마을 - 구이저수지 - 구이중앙교회 - 전북도립미술관 - 모악산 [이동거리 21km / 소요시간 6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