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 그 어울림에 관하여
★...커피는 풍미에 어울리는 잔에 담겨야 비로소 완벽하게 즐길 수 있다. 이명석.
‘ㅅ 카페’는 정겨우면서도 두렵다. “오랜만에 오셨네. 요즘은 어디 다녀?” 근엄한 사장님의 단골 관리 멘트 때문이다. 이거야, 나의 방탕한 카페 편력을 나열할 수도 없고. 사장님이 없는 때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도망가곤 한다. 그런데 이게 뭐지? 나는 정체 모를 이물감에 인상을 쓴다. 원두가 바뀌었나? 기계 탓인가? 어느새 사장님의 광채 나는 머리가 눈앞에 와 있다. “어때?” “뭐, 뭐가요?” “우리, 잔 바꿨거든.”
장이 아니라 뚝배기가 문제였다. 예전의 밋밋한 도자기 잔 대신에 산뜻한 스테인리스 잔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게 말이다. 속이 비어 가볍고 보온성이 좋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차가운 금속에 입술을 대고 혀 안으로 커피를 집어넣는 순간, 그 온도 차이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만다. 미리 잔을 예열해 두면 괜찮을까? 그래도 아닌 것 같다. 그 가벼움 자체를 견디기 어렵다. 30㎖도 채 되지 않는 에스프레소는 그 가벼움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그 묵직한 바디감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무거운 잔에 채워줘야 할 것 같다. ▒▒☞[출처]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