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치거들랑 기차를 타라.
나는요 슬플 땐 화장을 해요. 우리의 사랑을 예쁘게 색칠해요~
가수 신효범의 노랫말처럼 여자는 슬플 때 화장을 더 많이 한다?
스스로를 달래고 얼래는 자기만의 슬픔 치유법이 있듯이 금세 카멜레온으로 분장할 수 있는 여자는 여자여서 행복하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남자들의 화장도 요즈음은 자연스레 명동거리를 넘어서 거리 어디에서나 흔하게 대하는 풍경이니 화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또 하나의 나를 개발하는 작은 창작물은 아닐까? 어느 울적한 날엔 솔잎내음 풍기는 향수 한 두 방울만 뿌려도 기분이 달라져 있음을 쉬이 느낀다.
자! 그리하여도 제자리에서 치유할 수 없는 답답함과 울적함이 자리할 때 무작정 기차를 타보아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430여Km를 2시간 반 만에 도착하는 KTX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해운대 위에 꽉 막힌 답답함을 쉬이 토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조금 더 여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선으로, 안동방면으로 달리는 무궁화호 기차를 탈일이다.
시나브로 이어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서로 다른 풍경이 느슨하게 차장밖에 모여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산해진미처럼 족할 일인데 때마침 도착한 때가 정선 5일장이고 보면, 산바람 강바람이 빚어낸 정선의 공기에 도시냄새는 이미 사라지고 시장 안에서 펼쳐지는 정선사람들의 울긋불긋 삶의 방식들은 더하여 생각지 않은 에너지를 선물한다.
거치른 산야로 둘러쌓인 정선이라 평평한 땅이 얼마랴마는 아낙들이 늘어놓은 보따리짐 안에서는 손수 말린 태양초로부터 개다래, 솔향송이와 정선 개울가에서 잡았다는 다슬기, 동네명인이 빚은 된장, 막장까지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과 파는 사람사이엔 도심의 마트에서 볼 수 없는 정분이 담겨 있다. 그 뿐이랴, 시장 한 곁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에선 이미 탁배기 서너합에 아리랑 장단이 너울거리고, 무지개표 등산복을 걸친 관광객들은 손이 모자라 배낭마다 강원도 특산물로 옆구리가 터졌다.
정선 아낙과 동네 밖 손님들의 들 것이 바껴 있으니 이 넉넉한 물물교환 장터에서 숨통조이는 답답함은 무엇이며 어깨 짓누르는 피곤인들 호주머니 안에 남아 있을까?
이리하여도 삶 속에 찌든 지친 찌꺼기 있거들랑 멀리 기차역을 벗어난 목표물에 방점을 찍고 무작정 걸어볼 일이다. 일찌기 장성 백양사역에서 하차하여 천년고찰의 고불총림 백양사를 향해 걸었을 때에도, 정선역 주변이 여인숙으로 감싸였던 새벽을 이고 지고 꼬박 이틀을 걸었을 적에도 담아왔던 고민의 흔적은 아침햇살 비추이며 사라지는 이슬과 같이 가벼운 깃털이 되었다.
충청을 거쳐 전라도와 경상을 잇는 된장내음 사투리가 기차 안에 다 모여 있으니 내 안에 묵은 두꺼운 짐들을 그들에게 맡겨보아도 좋을 일이다.
지치거들랑 가차를 타 보아라.
첫댓글 혼자서 조용히 다녀오구 싶은 나드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