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 늘어난 신라의 영토·인구 9주 5소경 설치해 관리한 신문왕 주는 '도' 소경은 '광역시' 와 비슷, 총관·태수·현령 등 지방관도 파견… 오늘날 지방 제도와 유사한 점 많죠
'지방선거 위해 사퇴한 공직자 156명' '지방선거 판세와 전망은?'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지방선거에 관한 뉴스를 자주 볼 수 있어요. 4년마다 치르는 지방선거를 올해 6월 4일에 실시하기 때문이에요. 지난주 목요일(15일)과 금요일(16일)에는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진행되었지요. 지방선거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선거예요.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오늘은 687년 무렵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그 무렵에 한반도 지역을 통일한 신라가 새로운 지방 제도를 마련했다고 해요. 자, 통일신라 시대로 날아가 봅시다!
◇"늘어난 땅과 백성, 어떻게 다스릴까?"
"폐하, 우리 신라의 영토가 3배나 늘어났사옵니다. 백성도 그러하고요."
"그야, 우리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니 그렇지요. 전부는 아니지만, 옛 백제와 고구려 땅이 우리 땅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방 제도를 좀 손봐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렇군. 늘어난 영토와 인구를 잘 관리하려면 그리하는 것이 좋겠소."
▲ /그림=이창우
신라의 제31대 임금 신문왕은 신하들과 회의하여 지방 제도를 새로 마련하기로 했어요. 신문왕은 문무왕의 맏아들로, 681년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요. 문무왕은 당나라와 힘을 합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한반도를 꿀꺽 삼키려던 당나라 군대와 전쟁을 벌여 한반도에서 몰아내 삼국 통일을 완성했어요. 그 뒤를 이은 신문왕은 '국학'이라는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학문을 장려하고, 녹읍제를 폐지하여 왕권을 강화하는 등 새로운 제도를 많이 실시하여 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했답니다. 그중 하나가 지방 제도를 새롭게 바꾼 것이었어요. 과연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전국을 9주로 편성하라"
삼국을 통일하기 전 신라는 전국을 5주(州)로 나누고 그 아래 군과 촌 또는 성을 두었어요. 주는 지방 행정·군사의 중심으로, 군주를 그 책임자로 파견했습니다.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한 촌이나 성에 당주와 나두, 일반 촌과 성에는 도사를 파견하여 다스리게 했지요. 뒤에 군주는 총관·도독으로, 당주와 나두는 태수로, 도사는 현령으로 명칭이 바뀝니다.
신문왕은 5개였던 주를 9개로 늘렸어요. 옛 신라 지역에 3주, 옛 고구려 지역에 3주, 옛 백제 지역에 3주를 두었지요. 상주, 강주, 양주, 한주, 삭주, 명주, 웅주, 전주, 무주가 그렇게 나뉜 지방 행정구역이에요. 9주 아래에 군과 현을 두었으며, 그곳에 각각 지방관을 보내 다스리게 했지요. 주에는 '총관'(나중에 도독), 군에는 '태수', 현에는 '현령'을 파견했어요. 잘 생각해 보면 '주'는 오늘날 도와 비슷하지요?
신문왕은 전국을 9주로 나눈 것은 영토와 인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효과적인 제도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도의 위치에 관한 문제였어요.
◇"서울을 5개 두면 어떨까?"
"이렇게 전국을 9주로 나누고 보니, 왕경(王京)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지 않소?"
"그렇사옵니다. 그렇다면 소경(小京)을 늘리는 게 어떨는지요?"
"소경을 늘린다고? 그게 과연 효과가 있겠소?"
▲ /그림=이창우
삼국을 통일하고 보니 중앙정부가 있는 서울, 즉 수도인 금성(지금의 경주)이 너무 남동쪽에 치우친 거예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문왕은 소경을 전국의 동·서·남·북 지역과 중간 지역 1곳 등 5곳에 설치하게 하였어요. 이를 5소경이라고 해요. 소경은 '작은 서울'이라는 뜻으로, 정치적 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특별히 정해서 따로 관리를 보내 다스린 곳이에요. 오늘날의 광역시와 비슷하답니다. 신문왕은 북원경(원주)·중원경(충주)·서원경(청주)·남원경(남원)·금관경(김해)을 설치하고, 그곳에 '사신'이라는 지방관을 파견했어요.
◇통일신라의 지방 제도, 지금과 닮았어요!
5소경에는 왕경의 귀족이나 옛 가야와 고구려, 백제의 귀족들이 옮겨 가 살게 하면서 혹시나 이들이 힘을 키워 반란을 일으킬 것에 대비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가야의 귀족을 옛 고구려 땅인 중원경에 살게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신문왕은 5소경 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689년에 통일신라의 수도를 금성에서 달구벌(지금의 대구)로 옮기려고 했거든요. 비록 귀족들의 강력한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말이에요.
통일신라의 총관은 지금의 도지사, 태수는 군수, 현령은 동장이나 면장, 사신은 광역시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러한 지방관들이 과연 일을 잘하는지 감독하는 사람은 없었을까요?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장을 감사하고 조사하는 지방의회 의원처럼 말입니다. 물론 통일신라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지방관들이 백성을 잘 다스리는지를 감독·감찰하기 위해 지방에 파견되는 '외사정'이라는 직책이 있었지요. 문무왕 때 생긴 것으로, 9주에 2명씩, 115군에 1명씩 두었다고 해요.
한반도를 처음으로 통일한 통일신라의 지방 제도를 보니 오늘날과 닮은 점이 꽤 많지요? 지방 제도와 지방 행정의 중요성도 잘 알 수 있고요. 그러니 여러분도 나중에 선거권이 생기면, 지방선거에서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하세요!
[함께 생각해봐요]
신문왕은 지방 제도를 개편한 것 외에도 ‘녹읍제’를 폐지하고 ‘녹봉제’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폈어요. 녹읍제와 녹봉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해설:녹읍제는 귀족을 포함한 관리에게 곡물 일정량을 녹봉으로 지급하는 대신, 일정한 지역의 경제적 수취를 허용해준 제도예요. 귀족들은 이 땅에서 농민이 농사짓게 하여 세금을 거둘 수 있었지요. 신문왕은 689년에 녹읍제를 폐지하고, 해마다 곡물을 주는 녹봉제로 바꾸었지요.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로 68년 만인 757년(경덕왕 16)에 녹읍제가 부활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