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교근공책으로 유명한 범저는 전국시대의 인물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주연급 인물입니다. 진나라는 범저의 원교근공책을 얻은 후에 중국통일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맨 처음 읽은 '사기열전'에는 범저가 아닌 범수로 되어있었고, 그 후에 '사기'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도 모두 범수로 나와 있어서 범수가 익숙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요즘 나온 책에는 범수가 아닌 범저로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최익순이 번역한 '사기열전'에는 범저로 나오고, 공원국의 '춘추전국이야기'에도 범저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범저'가 입에 잘 붙지 않아서 범저라는 말보다는 '범수'가 튀어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가 알아보니 혼선을 빚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마천 시대에 책을 쓰려면 목간이나 죽간에 글을 쓰는 형편이라 비슷하게 생긴 글자는 정확하게 쓰기도 읽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범수(范睢)와 범저(范雎)의 한자를 보면 '수'와 '저'의 글자모양이 거의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이는 눈 목(目)자 모양이면 '수(睢)'가 되고, 또 차(且)자 모양이면 '저(雎)'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서 범수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보다 먼저 쓰여진 '한비자'에는 범저의 이름이 범저(范且)로 되어있습니다. '한비자'의 범저(范且)는 범차나 범조로 읽을 수는 있지만 범수라고 읽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범저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확정짓고 요즘 나온 책은 모두 범저로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범수(范睢) 범저(范雎) 범저'(范且)
且 : 1. 또 차 2. 공경스러울 저 3. 도마 조
범저는 자기나라 인재를 다른 나라에 유출시켜 항상 곤란에 빠지곤 했던 위나라 출신입니다. 범저는 위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벼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위나라 왕을 섬기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왕에게 유세할 형편이 되지 않아, 생계를 위해 위나라의 중대부 수고라는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수고가 위나라 소왕의 사자로 제나라에 가게 되는데 범저도 수행원으로 따라 가게 됩니다. 몇달이 지나도록 사자로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나라 양왕이 범저가 변설에 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범저에게 황금과 쇠고기와 술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자기 나라인 위나라 사람들은 범저의 가치와 능력을 알아 보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의 왕은 범저가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수고는 범저가 위나라의 비밀을 제나라에 누설했기때문에 선물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범저에게 쇠고기와 술은 받되 황금은 돌려주라고 합니다. 수고는 사자의 임무를 마치고 위나라에 귀국해서 위나라의 재상이었던 위제에게 범저가 위나라의 기밀을 누설했다고 일러바칩니다.
위제는 위나라의 여러 공자 중의 한 명인데 재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릉군 위무기와는 형제지간 아니면 숙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제는 대노하여 사람을 시켜 범저에게 태형을 가하여 갈빗대와 이빨을 부러뜨리고, 범저가 죽은 척하자 범저가 죽은 줄 알고 범저를 변소에다 갖다 놓고 빈객들이 술을 마시고 취하면 범저의 몸에 오줌을 눟게 합니다. 시체에 모욕을 주어 다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의 기밀을 누설하지 못하게 본보기를 보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범저가 자기를 감시하던 사람에게 "귀하가 나를 구해주면 꼭 사례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니, 지키던 사람이 범저를 가엾게 여겼는지 위제에게 범저의 시신을 갖다 버리겠다고 청합니다. 위제는 그러라고 허락하자 밖으로 범저를 데리고 나와 범저는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위나라에 살던 정안평이라는 사람이 평소 범저의 재능을 알고 있었는지 위험을 무릅쓰고 범저를 데리고 몰래 숨어 살게되고, 위제에게 다시 잡힐까봐 범저는 이름을 장록으로 바꿔 생활하게 됩니다.
진나라에서 알자(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관리)벼슬을 하고 있던 왕계가 진나라의 사자로 위나라에 오게 됩니다. 정안평은 신분을 속이고 왕계의 병사로 들어가서 왕계를 호위합니다. 왕계가 정안평에게 "위나라에 진나라에 가서 유세할 만한 사람이 있는냐?"라고 물어보니 정안평은 "제가 사는 마을에 장록 선생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귀하에게 천하의 일을 말씀드리고 싶지만 원수가 있어 낮에는 감히 만나뵐 수가 없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왕계는 밤중에 정안평과 함께 범저를 만나게 됩니다. 범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범저가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게된 왕계는 범저와 위나라의 국경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집니다.
왕계가 위나라에서 사자로서의 역활을 다하고 돌아갈 때 국경에서 범저를 만나 범저를 수레에 태우고 진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범저를 태운 수레가 '호'라는 지방에 이르렀을 때 서쪽에서 수레와 기마의 행렬이 오는 것을 보게됩니다. 범저가 물어보니 "진나라의 재상인 양후 위염이 동쪽을 순시 중입니다."라는 대답을 듣자 범저는 "내가 듣기에 위염은 유세객이 진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니 수레에 숨어 있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수레에 숨어있게 됩니다. 과연 위염이 와서 왕계의 노고를 치하한 다음 왕계에게 "귀하는 다른 나라의 빈객을 함께 데려오지 않았겠지?"하고 물어보니 왕계는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위염이 자리를 떠나고 난 후에 범저는 수레에서 나와 "양후는 지혜롭다고 하더니 일처리가 느리군요. 수레에 사람이 있나 의심하면서도 수색하는 것을 잊는군요. 반드시 후회하고 다시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라고 말한 후에 먼저 달아나게 됩니다. 왕계가 10여리를 갔을 때 양후가 보낸 기병이 와서 수레를 뒤졌지만 아무도 없자 그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드디어 왕계는 범저와 함께 진나라의 서울인 함양에 도착한 후에, 진나라 소왕에게 사신으로 갔다온 일을 보고한 후에 범저를 소개합니다. "위나라에 장록 선생이라는 이가 있는데 천하의 변사입니다. 그가 말하길 '진왕의 나라는 달걀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태롭지만 나를 얻으면 무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해서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진나라 소왕은 이 말을 믿지 않고 범저를 객사에 머물게 하고는 크게 대우하지 않고 1년동안이나 부르지 않게 됩니다.
범저가 진나라에 왔을 때는 진나라 소왕이 즉위한 지 36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소왕은 즉위할 때 어머니 선태후와 선태후의 동생인 양후 위염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고 즉위 당시 왕의 나이가 어려서 선태후와 위염이 국정을 도맡아 처리하였습니다. 선태후와 위염은 국정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력을 신장시켰습니다. 또 위염은 장군으로의 능력도 뛰어나서 여러번 6국을 정벌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더구나 위염이 추천한 백기는 백전백승의 명장으로 6국을 침략하여 한나라와 위나라, 초나라의 병사들을 십만 단위로 몰살시키는 압도적인 승리을 거뒀기 때문에 소왕이 즉위한지 3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선태후와 위염의 권위는 왕을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위염의 동생인 화양군과 소왕의 동생인 경양군과 고릉군도 큰 권세를 누리고 있어서 이들의 부유함이 왕실을 능가하였습니다. 이미 50살이 넘은 나이에도 어머니와 외삼촌의 견제를 받아 온전하게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소왕은 내심 불만이 많았지만, 어머니 선태후와 외삼촌 위염의 권위에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범저는 이런 진나라의 상황을 이용하여 소왕에게 유세를 성공시키려한 것입니다. 범저는 1년 동안 소왕의 부름을 기다리다가 소왕에게 자기의 목숨을 걸고 긴요한 말씀을 올리고 싶으니 한번 만나뵙게 해달라는 절절한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소왕이 이 편지에 마음이 움직여 범저를 궁궐로 부르게 됩니다. 왕을 만난 범저는 좌우에 엿듣는 자가 많으므로 국내일은 말하지 않고, 위염이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지 않은 제나라의 강과 수라는 땅을 치려고 하는 일을 비판합니다. 제나라의 땅을 빼앗아도 진나라의 땅이 되지 않고 위염의 개인 봉지가 넓어질 뿐이라면서 유명한 원교근공의 계책을 설파합니다.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됩니다. 이런 계책을 버리고 먼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유세하니 소왕이 기뻐하며 범저를 객경으로 임명하여 나라 일을 맡기게 합니다.
원교근공책은 멀리 있는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나라를 먼저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진나라와 제일 가까운 나라는 한나라이고, 위나라와 조나라도 국경을 접하고 있고, 초나라와도 남동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연나라와 제나라는 직접 국경에 접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교근공책은 단순히 멀리 있는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이 아니고, 공격 순서를 명확히 하여 어떤 하나의 나라만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멸망시키자는 것입니다. 범저의 계책에 따르면 진나라가 일순위로 공격할 나라는 한나라입니다. 멀리있는 제나라와 연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한나라 이웃에 있는 위나라와 조나라와 초나라는 중립을 지키게 하여 한나라를 구원하지 못하게 하여 한나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다음에 한나라를 공격하자는 것이 원교근공책입니다. 한나라를 멸망시켰다면 다음에는 위나라 순서입니다. 한나라때와 같은 방식으로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다음에 멸망시키고, 다음 순서는 조나라, 초나라, 연나라, 제나라가 됩니다. 나중에 진시황은 범저의 원교근공책에서 내놓았던 순서대로 6국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어떤 작가가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면 <원교근공책>의 원리에 따라 멀리있는 미국과 친하게 지내고 가까이 있는 중국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원교근공책을 낱말풀이 식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원교근공책은 공격하는 나라의 입장에서 세워진 전략입니다. 약소국 입장에서 바로 이웃하고 있는 강대국에서 자기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는데 먼나라와 친교하고 가까운 강대국과 직접 싸우라고 하는 것은 그대로 망하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할 때, 우리가 미국편을 들어야하는 이유는 미국과 동맹국이기 때문이지 먼나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범저의 원교근공책에 대한 약소국인 6국의 대응책은 위무기의 주도로 성립한 합종책이었습니다. 위무기가 주도하여 성립한 합종에 6국이 모두 군대를 보내어 위무기의 지휘하에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자 진나라 군대는 함곡관까지 쫓겨들어가 감히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물론 진나라 간첩들의 암약으로 위무기가 실각한 후에 합종책이 깨지고 말았지만 그나마 약소국이 택할 방법은 약소국이 연합하는 합종책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미국이 위선적일지라도 겉으로는 정의의 국가라는 명분을 지키려고 했었는데, 트럼프의 미국은 이를 내팽개치고 몰염치한 침략자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동맹국의 의리를 지키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할 때 과연 중국을 버리고 미국편만 드는 것이 옳은지 잘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연설에서 <중견국가의 연합>을 주창했는데, 이것이 해결책인 것 같습니다. 미국도 중국도 아닌 중견국가 연합을 만들어서 이 두 거대한 나라에 대항해야만 주권국가로서 존속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년 동안 범저가 객경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소왕과의 신뢰가 쌓이게 되자, 드디어 범저는 선태후와 양후 위염의 전횡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소왕에게 왕권을 되찾아 오라고 진언하게 됩니다. 이제나 저제나 자신의 권력을 온전히 행사하고 싶어했던 소왕은 결단을 내려 선태후와 위염을 물러나게 하고 위염과 나머지 화양군, 경양군, 고릉군에게 함양을 떠나게 합니다. 양후 위염이 자기의 봉지인 도 땅으로 떠날 때, 자신의 재물을 옮기는데 수레를 천대나 동원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위염이 범저의 한 번 유세로 실각하고 함양을 떠났던 것입니다. 선태후는 소왕에 대한 배신감 때문인지 권력을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이지 얼마 안 있어 죽었습니다. 소왕은 범저를 재상으로 임명하고 국정 전반을 맡기게 되자, 범저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범저가 진나라의 재상이 된 후에도 진나라 사람들에게 범저는 장록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위나라에서는 범저가 장록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범저가 오래전에 이미 죽었다고 여기게 됩니다. 진나라에 새로 임명된 재상 장록이 장차 한나라와 위나라를 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위나라는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수고를 진나라에 사자로 파견합니다.
범저는 위나라의 수고가 진나라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허름한 옷을 입고 혼자 걸어서 수고의 숙소에 가서 수고를 만납니다. 수고는 깜짝 놀라서 범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예전에 자기의 고자질 때문에 범저가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이 미안해서인지 술과 음식을 내주고 "진나라에서 유세를 하러 오셨소?"하고 물어보자 범저는 "위나라에서 죄를 짓고 도망쳐 왔는데 무슨 유세를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수고가 "그럼 무슨 일을 하고 있소?"라고 물어보니 범저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어 품을 팔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수고는 범저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한창 추운데 범숙(숙은 범저의 자)이 이런 꼴이라니!"라고 하면서 두꺼운 비단 솜옷을 범저에게 내주게 됩니다.
수고가 "진나라에서 새로 장록을 재상으로 임명했다는데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소? 내가 듣기에 진왕의 총애를 받아 국사를 모두 재상이 결정한다고 합디다. 혹시 장록 선생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어디 없을까?"라고 범저에게 물어봅니다. 범저는 "제 주인이 그를 잘 압니다. 저도 미천하지만 만나뵐 수 있습니다. 귀하를 만나도록 장록 선생께 청해보겠습니다."라고 하니, 수고는 "내가 탈 말이 병들었고 수레도 축이 부러진데다 작은 것이어서 나갈 수가 없소."라고 말하니 범저는 "제 주인께 네마리 말이 끄는 큰 수레를 빌려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한 후에 돌아가서 큰 마차를 구해 가지고 수고에게 갑니다.
수고를 수레에 태운 후에 범저가 직접 마차를 몰아 재상의 관저로 들어가니 관저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몸을 피하여 숨게됩니다. 수고가 이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재상이 머무는 집앞에 도착해서 범저는 수고에게 "기다리시면 제가 재상에게 귀하가 오셨다고 알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에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범저가 나오지 않자 수고는 문지기에게 "범숙이 나오지 않는데, 어찌 된 일이오?"라고 묻게 됩니다. 문지기는 "범숙이라는 분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수고가 "조금 전에 나와 같이 수레를 타고 왔다가 안에 들어간 사람 말이오."라고 하니 문지기는 "그 분이 우리나라 재상 장록선생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수고는 자기가 속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랬고 자기의 목숨이 범저의 처분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시 웃통을 벗고 무릎으로 기어서, 문지기를 통해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범저는 큰 장막을 치고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수고를 불러들입니다. 수고는 "저는 귀하가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를 줄 몰랐으니, 이런 안목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책도 읽지 않고 천하의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지만 먼 오랑캐 땅에서 숨어살게 해주기를 청하옵니다."라고 범저에게 간청했습니다. 범저는 수고에게 "너는 위제에게 나를 무고했고, 위제가 나를 죽이려고 할 때 말리지 않았다. 너는 죽어 마땅하지만 네가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까닭은, 이번에 만났을 때 두꺼운 비단 솜옷을 나에게 주고 애뜻한 정을 보이는 등 아직 옛정이 남아 있어서이다. 너를 풀어주겠다."라고 합니다. 범저는 입궐하여 소양왕에게 보고하니, 소양왕은 수고를 접견하지 않고 위나라에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위제가 작별 인사를 하러 범저에게 찾아가니, 범저는 크게 연회석을 마련하여 여러 제후들의 사자들을 청하여 당상에서 술과 음식을 먹게 하고, 수고는 당하에 앉히고 좌우에 죄수를 배치시켜 말의 여물을 먹이게 합니다. 범저가 꾸짖으며 "나를 대신해 위나라 왕에게 전하라. 당장 위제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 그렇지 않으면 대량(위나라의 수도)을 도륙할 것이다."라고 하니, 수고는 반은 넋이 나가서 위나라 왕과 위제에게 보고했을 것 같습니다.
이 범저와 수고의 에피소드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폐포파립(敝袍破笠)의 거지꼴로 나타났다가 나중에 암행어사 출도를 하는 장면처럼 통쾌함을 줍니다.
위나라의 재상이었던 위제는 겁을 먹고 조나라로 도망하여 평원군의 집에 숨어 들었다가, 조나라 재상인 우경과 함께 신릉군 위무기를 찾아가서 위무기의 주선으로 초나라에 망명하려고 했지만 위무기가 처음에 만나기를 주저했다는 말을 듣고 자살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평원군 우경 열전에도 나옵니다.
범저와 위제, 우경, 평원군, 그리고 위무기가 얽혀있는 이 일화는 재미있지만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위나라 재상이었던 위제는 범저가 비밀을 제나라에 누설했다는 수고의 보고를 듣고 불같이 화를 내고 범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제나라 왕이나 왕계, 정안평, 진나라 소왕등은 범저와 대화한 후에는 모두 범저가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됩니다. 그러나 위제는 범저가 어떤 인물인지 관심이 없었고, 진위를 가리지도 않고 범저를 죽이려고 했으니 성격이 포악하고 지혜도 부족하고 경솔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런데 위제가 위급해서 도움을 요청하자 평원군은 자신이 진나라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위제를 보호하려 했고, 우경은 재상과 만호후의 자리를 내려놓고 위제와 동행하여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우경과 위제가 신릉군 위무기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하자 위무기는 아마도 숙부였을 위제를 처음에는 도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후영이 우경의 인품이 고결하고 의리가 깊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위무기는 위제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의협을 중시하는 위무기가 망설였다는 것은 위제의 인성이 별로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원군과 우경은 모든 고난을 무릅쓰고 왜 위제를 구하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위제가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사귈 때는 진심을 다 했고 신뢰를 얻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성과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존심이 엄청 센 사람이었습니다. 위무기가 자기를 받아들이는데 조금 망설였다는 이유로 자살했으니 말입니다.
범저가 재상이 된 후에 범저를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데려와서 진의 소왕에게 소개시켜 줬던 왕계가 범저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하니 범저는 소왕에게 청하여 왕계에게 하동군의 군수 벼슬을 내리게 하고, 위나라에서 자기를 숨겨주고 자기를 왕계에게 소개시켰 줬던 정안평은 장군으로 임명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전 재산을 풀어서 일찍이 곤궁하고 불행했을 때의 일들을 모두 되갚아 주었습니다. 밥을 한 번이라도 먹여 준 사람까지 반드시 상을 내렸고, 눈을 한 번 흘긴 사람에게도 반드시 보복하였다고 합니다.
범저는 성격이 꼼꼼하고 집요하며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략을 세워도 어디 하나 빠진 것 없이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고, 책략의 성공을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양후 위염이 제대로 반격 한 번 못하고 실각한 것은 범저가 사전에 꼼꼼하게 대비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나라를 공격하여 거의 부용국 수준으로 만든 것도 범저의 원교근공책이었고, 조나라와의 장평대전 때 염파를 해임케 하고 조괄을 조나라의 장군으로 임명하게 뒷공작을 한 것도 범저였습니다. 백기가 진나라 소왕의 명을 거스리고 출정하지 않자 소왕으로 하여금 백기를 죽게 한 것도 범저였습니다.
그러나 범저에게 정말 곤란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조나라와의 장평대전 후에 백기가 출정하지 않은 진나라 군대의 한단 포위 작전에 범저가 천거한 정안평도 장군으로 참전했지만, 위, 초, 조나라의 연합군에 포위당하자 정안평이 조나라 군대에 항복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진의 법률에 의하면 추천을 받은 사람이 잘하지 못하면 추천한 사람도 같은 벌을 받게 되있었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법에 의하면 정안평이 적에게 항복했으므로 범저는 삼족이 멸하는 죄에 해당되었습니다. 거기에 범저가 천거해서 하동군수로 있던 왕계가 제후들과 내통하다가 발각되어 주살당하게 됩니다.
정안평이 조나라에 항복했을 때, 범저는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아 진나라 소왕에게 죄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왕은 범저를 아직까지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범저의 마음이 상할까 염려되어, 나라에 영을 내리기를 "감히 정안평의 일을 입 밖에 내는 자는, 그 죄를 물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이어 왕계가 법을 어겨 주살당하게 되자 범저는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더구나 백기가 죽은 후에 진나라의 군대가 계속해서 패배하자 소왕은 "나라 안에 좋은 장군이 없는데, 외부에 적대시 하는 나라가 많으니 걱정이오."라고 한탄하니 범저로서는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범저가 정안평과 왕계의 일로 참담해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연나라 출신의 유세객인 채택이 범저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채택은 여러 제후들을 찾아 다니면서 유세하여 관직을 얻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취사용 도구를 도둑맞기도 하였습니다. 채택이 범저에게 한 유세의 내용은 한마디로 "공을 이루었을 때, 현명하게 은퇴해서 여생을 편히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채택에게 설득당한 범저는 소왕에게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면서 채택을 추천하였고, 소왕도 채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만족해서 채택을 객경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런 후에 범저는 병을 핑계로 재상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소왕에게 청하게 됩니다. 소왕은 억지로 범저를 병석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범저는 끝끝내 병이 깊다고 핑계를 대면서 재상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할 수 없이 소왕은 채택을 재상으로 삼아 채택의 계책대로 주나라 왕실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병합시키게 됩니다. 채택이 진나라의 재상이 된 지 몇 달 후에, 사람들 중에 채택을 헐뜯는 자가 있자, 채택은 깨끗하게 재상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채택은 소왕이 죽은 후에도 진나라에서 계속 살게되고 나중에 진시황까지 섬기게 됩니다.
이번 범저채택열전은 범저의 단독 열전으로 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천이 범저와 채택, 두사람의 합전으로 한 이유는 두 사람이 모두 진나라 사람이 아니었지만 유세에 성공하여 진나라의 재상에 올랐고, 재상 자리에서 두사람 모두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에 두사람의 역정이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적이나 고난을 겪은 정도를 비교하면 채택은 범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채택이 겪은 고난이라고 해봤자 취사용 솥을 도둑맞은 정도이고, 그 공적이라고 할만한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어떻든 범저 채택열전은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처럼 보였습니다. 범저는 재상을 사퇴한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더 이상의 기록은 없지만, 사기열전의 독자들 모두 범저가 여생을 편안하게 마쳤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수호지진간은 진시황때 연이라는 지방관리가 법률, 재판, 역사등을 기록한 일종의 보고서인데, 1975년에 중국 호북성의 수호지라는데서 발견된 죽간입니다. 이 죽간 중에 범저에 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이 죽간에 <소왕 52년 장록과 왕계가 죽다.>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장록은 범저가 진나라에서 사용한 이름이고, 왕계가 제후들과 내통해서 주살당하였다고 했고, 그 후에 범저가 재상자리에서 물러나서 왕계와의 연좌제에는 걸리지는 않은 것으로 범저채택 열전에는 나와 있었는데, 수호지진간의 죽간에는 범저와 왕계가 같은 해 죽은 것으로 나온 것입니다.
범저가 왕계의 죄에 연좌되어 같이 주살되었는지, 아니면 정말 병이 깊어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열전처럼 진행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재상에서 사퇴한 것도 자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퇴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춘추전국이야기>의 저자 공원국씨는 "범저는 선악과 호오를 떠나 불세출의 전략가였다. 세치 혀로 천하를 주름잡던 양후 위염을 떨어뜨려 왕권을 부동의 위치로 올렸고, 원교근공으로 한나라를 거의 부용국으로 만들었으며, 휼계로 장평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고, 조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갔으며, 또한 과감하게 서주를 쳐서 진의 무자비함을 과시했다. 그는 죽었지만 진나라는 앞으로 그가 제시한 길을 따라서 다시 동쪽을 도모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