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둥굴레 차, 연한 누룽지 빛깔의 둥굴레 차, 아침 햇살이 드는 창가 책상에 말린 둥굴레 뿌리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찻잔 위로 연기마냥 하얀 증기가 피어오른다. 적당하게 우러났을 때, 한 모금 몸에 모시면 온 몸에 은은한 다향(茶香)이 퍼진다.
몸이 따스하다. 찻잔 위로 잔잔히 피어오르는 하얀 온기를 보노라면, 제주도에서 목회할 적에 둥굴레 뿌리를 정성껏 말려 선물로 준 노 권사님이 떠오른다.
종달교회 신영보 권사님이 그 주인공이다.
고사리를 꺾을 무렵이면 둥굴레 꽃도 피어난다. 탐스러운 이파리와 아래를 향해 총총히 달린 연한 아이보리 빛깔의 꽃, 꽃 끝은 녹색 빛으로 단장하고 일렬로 피어있다. 줄기는 꽃이 무거워서인지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둥굴레라는 식물은 겸손의 도를 아는 꽃이리라.
권사님과 함께 고사리를 꺾으러 간 길에 야산에서 둥굴레가 무성하게 피어난 둥굴레 밭을 만났다. '둥굴레 차'를 떠올렸고, 뿌리를 캐어 둥굴레 차를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고사리 꺾기를 멈추고 골갱이로 둥굴레를 캤다. 그러나 제주의 화산석 틈으로 뿌리를 내린 둥굴레 뿌리를 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른 손가락 굵기의 실한 것들이었지만, 문득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해서 마트에서 팩으로 만들어 파는 둥굴레 차로 만족하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저건 신 포도일거야!'. 그렇게 둥굴레 뿌리를 직접 캐서 둥굴레 차를 마시려는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가을이었을 것이다.
신영보 권사님이 비닐 팩에 한 가득 둥굴레 차로 드시라며 잘 말린 둥굴레 뿌리를 가져오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며 "어디서 이렇게 많은 둥굴레 뿌리를 구하셨어요?"했더니 "그때, 목사님하고 같이 갔던 거기서 캤수다!"하시는 것이었다.
아, 권사님은 그때 목사의 행동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잊지 않고 그곳을 다시 찾으신 것이다. 그리고 목사에게 주려고 힘들여 화산석 바위틈에 뿌리박은 둥굴레 뿌리를 채취하셨을 것이다. 그냥 그런 줄만 알았다. 궁금증에 '둥굴레 차 만드는 법'을 검색해 보았더니 과정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쪄서 말리기를 아홉 번을 해야 하는데, 보름에 한 번씩 쪄서 말리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를 사서 권사님 댁을 방문했다.
농협에서 나온 숫자 커다란 달력에 붉은 색연필로 몇몇 날짜들에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고, 그 밑에는 삐뚤빼뚤 숫자가 적혀 있었다. 뜯겨져 나간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내가 둥굴레 뿌리를 받기 보름 전에 선명하게 '9'자가 쓰여 있다. 짐작되는 바가 있어 물었더니 "저거, 목사님 둥굴레 차 만들어 드리려고 달력에 표시한 것이우다. 보름에 한 번씩 쪄서 말리기를 아홉 번 해야 한다는데, 깜빡깜빡 하니 달력에 표시를 해놨수다게." 하신다.
생각해 보니 4달 반 동안 찌고 말리기를 반복해서 가져오신 것이다. 권사님께 너무 미안했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이렇게 큰 수고를 끼치게 했으니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종달교회에 부임을 한 후, 신영보 권사님 첫 가정 심방 때 간식으로 '복숭아 통조림'이 나왔다. 그냥 무심결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고 "저 이거 엄청 좋아해요."했는데, 보름에 한번 꼴로 "목사님, 복숭아 간소매(정확하게는 '缶詰(かんづめ)', '칸즈메') 사왔수다게."하시는 것이다. 그때, 목사가 함부로 뭐 좋아한다는 것을 교인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스승의 말씀을 떠올렸다. 사실, 복숭아 통조림을 간혹 먹기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종달교회를 사임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복숭아 통조림이 떨어진 날이 없었다.
신영보 권사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그렇게 목사를 대했다.
심방을 한 후에 음식이 나오면 '평소에 먹지 못하던 것도 맛있게 먹어줘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심지어는 말고기(나중엔 좋아도 했지만)도 먹었다. 나는 지금도 부족한 목사를 사랑을 주었던 교인들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름을 기억하면, 선한 얼굴이 기억나고, 그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음이 늘 마음에 걸린다.
신영보, 이복생, 진옥림, 고만형, 김완선, 강태선, 박순희, 장정심, 한재민, 박선영, 이희성, 김삼순, 임선대, 장정심, 박종화, 부국환, 천미화, 부옥심, 강원규, 조호점, 김용주, 강안숙, 김순덕, 강혜련, 조휘헌, 김나래, 김나나, 문수임, 고만형, 홍경토, 홍용석, 강수연, 강길숙, 송희정, 고혜련....(혹시, 벌써 떠난지 14년이 되었으니 기억하지 못한 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을 전한다.)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아이들의 이름은 생략했지만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마태복음에 지루하게 열거되는 예수의 족보에 올라온 이름들의 의미를 되새긴다.
둥굴레 차만 그럴까?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림자 노동으로 수고하는 모든 손길들이 있어 나는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숨진 38명의 일용직 노동자들 역시도 나를 그림자노동으로 돕던 분들이었으며, 지금 책상 앞에 놓인 모든 문구류들과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과 내 소유로 여기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그림자노동으로부터 온 것이니 어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감사할 뿐 아니라, 그래서 삶은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 살 일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일인 것이다.
지금은 신영보 권사님이 정성껏 말려주신 둥굴레 뿌리가 아니라 오일장에서 사온 국적불명의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국내산) 둥굴레 차를 마시고 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동안 차갑게 식은 둥굴레 차의 색은 더욱 진해졌고, 여전히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