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37·나이키골프)의 별명은 ‘탱크’다. 한때 국내 모 전자제품 회사에서 ‘탱크주의’를 강조한 적이 있다. 탱크는 어떤 장해물도 모두 뛰어넘으며 끝없이 전진하는 강건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최경주가 9일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내셔널에서 우승하며 시즌 2승, 통산 6승째를 기록했다. 올 시즌 2승을 거둔 최경주는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 잭 니클로스가 주최한 메모리얼 토너먼트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마련한 AT&T내셔널에서 우승하며 ‘황제의 남자’로 등극했다. 특히 최경주가 올 시즌 달성한 2승은 모두 세계 톱 프로들이 참가한 특급 이벤트 대회였고, 모두 역전 우승으로 탱크다운 ‘뚝심’을 보여줬다.
최경주는 시즌 상금 300만 달러를 돌파하며 상금 랭킹 4위에 올라 세계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골프는 기업 경영과 비슷하다. 다양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며 정확한 매니지먼트로 코스를 공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고경영자(CEO)는 골퍼라 할 수 있다. 모든 결정은 골퍼 스스로가 내리고, 골퍼의 결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을 현실로 이뤄낸 최경주의 우승 원동력과 비결, 그 과정을 통해 ‘최경주식 경영법’을 살펴봤다.
‘탱크 경영학' |
불굴의 도전 정신 · 쉬운 길은 안 간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환경 탓은 비겁하다
변화만이 살 길 · 이제 됐다는 ‘NO’ · 아직 부족하다는 ‘YES’ · 카멜레온이 되자
비장의 무기 · ‘벙커 샷’ 두렵지 않다 · 남과 같아선 안 된다 · 서두르지 않아야 이긴다 | | 국내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며 안정된 생활을 하던 최경주는 어느 날 ‘더 큰 무대에서 성공하고 싶다’며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주위에서는 미국 진출은 시기상조며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에 진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일본과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최경주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경주는 자신감 하나 믿고 더 큰 무대로 뛰어들었다.
미국 진출 첫해인 2000년 최경주는 죽도록 고생했다. 30개 대회에 나가 14차례나 컷오프 되는 고통을 겪었다. 돈도 넉넉지 않았고 언어와 지리, 음식, 문화 등 모든 게 낯설었다. 99년 일본투어 기린오픈과 우베고산오픈에서 받은 우승 상금을 종자돈 삼아 미국행을 결행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최경주는 상금 랭킹 134위를 기록하며 다시 ‘지옥의 Q스쿨’을 거쳐야 했다. 다행히 공동 31위로 이듬해 PGA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었고 2002년 컴팩클래식과 탬파베이클래식에서 우승했다. 2000년 시즌 상금 30만 달러에 머물렀던 최경주는 7년 만에 시즌 도중 320만 달러를 넘기며 자신의 가치를 10배 이상 키웠다.
최경주는 아시아인이 PGA투어에서 기록한 5승을 뛰어넘어 6승으로 아시아의 자존심으로 떠올랐다. 세계 랭킹 13위까지 오르며 동양인의 불가능한 선이라고 믿었던 세계 랭킹 10위 진입도 눈앞에 두고 있다.
성공한 기업인과 그렇지 못한 기업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패한 기업인들은 항상 주위 환경을 탓한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인들은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즐긴다.
최경주는 항상 변화를 시도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오늘날 최경주가 있기까지 그의 철저한 자기절제와 혹독한 연습, 그리고 부단한 탐구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 최경주는 성적이 좋건 나쁘건 한결같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만약 그가 우승을 하고 나서 “이제는 됐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졌더라면 어쩌면 PGA 투어서 6승은커녕 단 1승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최경주는 지난 시즌 4승을 달성하는 등 모두들 성공한 골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완도에서 맨주먹으로 골프를 시작한 이래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최경주는 지난 시즌 도중 스윙에 칼을 들이댔다. 시즌이 끝난 뒤 스윙에 변화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최경주는 지난 8월부터 호주 출신의 스티브 밴 코치와 스윙 교정에 들어가는 모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주위의 우려 속에도 지난해 10월 크라이슬러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그는 우승 뒤에도 만족하지 않고 올 시즌까지 스윙 교정 작업을 계속했다.
최경주는 “정상급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스윙 변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부드러우면서도 콤팩트한 스윙이 필요하다”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72cm인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프로들이 사용하는 스틸 샤프트 대신 몇 년 전에는 오렌지색 그라파이트 샤프트를 사용해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지난해 크라이슬러 챔피언십에서는 사각 드라이버로 우승한 데 이어 이번에는 두툼한 사각 퍼터 그립으로 정상에 올랐다.
최경주는 “PGA투어 선수 가운데 나보다 키가 작은 선수는 거의 없다.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준다면 5cm만 더 컸으면 좋겠다. 키는 어쩔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변화만이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지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오늘은 좋을지 모르지만 내일은 아무도 기약할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 발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고유가 시대,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 환율 인하 등 급변하는 환경을 걱정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맞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기업 세계도 승부의 세계 못지않게 냉정하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이 오기도 전 몇 시간 만에 적이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카멜레온처럼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최경주는 올 시즌 거둔 2승에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위기를 맞는다. 위기를 기회로 연결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우승컵의 주인공이 갈린다. 최경주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와 AT&T내셔널에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기에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출 수 있었다.
최경주는 PGA투어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벙커 샷의 귀재’다. 그는 메모리얼 토너먼트 16번홀(파3)에서 벙커 샷을 홀 옆 2.1m에 붙였고, 18번홀(파4)에서는 벙커 샷을 홀 옆 1.5m에 붙이며 한 타 차 우승을 이뤄냈다.
AT&T내셔널에서는 17번홀(파4)에서 벙커 샷을 곧바로 버디로 연결하며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우즈는 경기가 끝난 뒤 최경주에게 “벙커 샷 좀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였다.
골프 대회 마지막 라운드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또한 핀 위치도 가장 어려운 곳에 놓인
뚝심 세고 변화에도 부드럽다 [조인스]
CEO는 모든 것 혼자 결정하는 ‘골퍼’와 같아 … 경영에도 ‘벙커 샷’ 많아 최경주의 ‘탱크 경영학’ 다. 최경주가 이러한 중압감 속에서도 과감하게 핀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벙커 샷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완도 출신인 최경주는 골프에 입문하면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많은 연습을 했다. 그만큼 벙커 샷이 편안하다. 최경주는 “벙커에 들어가면 남들은 위기라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고 밝혔다.
무한경쟁 시대에서는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 하나씩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은 비장의 무기밖에 없다. 남들과 똑같아서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뭔가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당장은 효과를 보지 못해도 언젠가 위기가 왔을 때 비장의 무기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문승진 JES·일간스포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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