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중간쯤에 '남해도'라는 꽤 큰 섬이 있다.
그 한 가운데 '금산'이라는 자그만 산이 있는데, 그곳에 처음 올랐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몇 차례 더 찾았다.
'보리암'이라는 암자가 있는 정상에서 사방으로 기적처럼 펼쳐져 있는 바다를 볼 수 있다.
'파노라마'가 뭔지를 보여준다.
그때의 감동을 글로 써 남겼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나중에라도 찾고 싶다.)
그 후 '이성복' 시인의 아래 글을 접했는데 참 아름답다고 느꼈다. 슬픔의 빛나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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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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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인터넷에서 따온 남해금산 안내글이다.
이성복과 남해 금산
꿈결처럼 가늘고 길게 걸쳐 있는 남해 대교를 건너 2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남해 금산은 문인들 사이에선 ‘시인 이성복이 반한 산’으로도 유명하다. 시인은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라고 읊고 있는데 금산의 한자 이름은 비단 금(錦), 멧산(山)이다. 보타산, 보광산, 금산으로 차례차례 이름이 바뀌었는데 보광산은 원효가, 금산은 이성계가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계가 산 중턱의 보리암에서 백일 기도를 올린 후 조선을 건국하게 되자 기도 중의 약속대로 모든 산을 비단으로 덮으라는 영을 내렸는데 신하들이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름을 바꾸자는 상소문을 내어 금산이 된 것이다.
한때는 보리암으로 오르는 길목에 이성복 시인의 시를 리어커에 붙이고 다니는 행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의 행방을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금산의 중턱, 다도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보리암에는 지금도 이성계가 기도를 했다는 터가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특히 쪽빛 바다를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 아스라한 해무(海霧) 속에 갇혀 있노라면 꿈결에 젖어드는 느낌이 든다. 시인이 <남해 금산>이란 시에서 ‘푸른 하늘가’와 ‘푸른 바닷물’을 동시에 언급한 것은 보리암에서의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금산은 해발 6백81m로 보리암 밑까지는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어 다도해를 감상하는 데는 다리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금산 여행길의 즐거움이다.
금산 밑에는 미조리 해수욕장, 상주 해수욕장 등이 펼쳐져 있어 산과 바다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기도 하다. 게다가 소량마을, 대량마을 식으로 붙여진 마을과 군데군데의 포구는 산행과 해수욕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이들에게 별스런 낭만을 안겨 준다.
건설될 당시 숱한 화제를 뿌렸던 남해 대교는 여전히 아름다우니 먼 발치에서 남해 대교와의 교감을 나누는 것도 즐겁다. 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의 노량포 언덕에 충무공의 넋을 기리는 충열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충무공의 유해를 처음 안치했던 기묘도 이곳에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을 기점으로 남해까지는 4백80여km, 6시간 이상 소요되는 장거리 여행길이다. 호남고속도로-광주-순천-광양-노량 인터체인지 코스를 택하거나 경부고속도로 금호 분기점-구마고속도로-마산-진교 인터체인지-남해대교 코스를 선택하면 되고 대중교통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숙박과 맛집
남해는 유자, 치자, 비자 등 3자의 도시로도 불리는데 남해대교 근처의 설천면 유자가 일품. 미조항과 노량포어항에서는 싱싱한 횟감을 만날 수 있다. 금산 입구의 제일여관, 남해읍의 망운모텔(0594-62-1501) 등 소규모 숙박 시설이 다수 자리잡고 있어 며칠 묵기에도 괜찮다.